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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연복 /  한국기독교연구소 편집위원


어느 안식일에 예수와 함께 밀밭 사이를 지나가던 제자들이 밀 이삭을 잘랐다.
무척 배고팠던 모양이다.

그러자 바리새인들이
“보십시오, 왜 저 사람들이 안식일에 해서는 안 될 일을 하고 있습니까?”
하고 예수에게 화난 목소리로 대든다.

이에 예수는 먹을 것이 없어 굶주린 다윗의 일행이 하나님의 집에 들어가서 제사장들만 먹을 수 있었던 제단의 빵을 나눠 먹은 옛날이야기를 끌어들이며
“안식일이 사람을 위하여 있는 것이지, 사람이 안식일을 위하여 있는 것은 아니다”
라고 폭탄선언을 한다.

안식일에 겨우 밀 이삭을 자른 것을 놓고 바리새인들과 예수(운동) 사이에 벌어진 저 옛날의 이 숨 가쁜 한판 승부의 핵심은 뭘까?
왜 바리새인들과 예수는 만나기만 하면 거의 예외 없이 한바탕 입씨름을 할까?
오늘 본문의 행간(行間)에 담긴 메시지는 뭘까?


먼저 바리새인들을 생각해보자.
그들은 당시 무려 39가지나 되었던 안식일 금지조항들 중 하나인 추수 금지조항을 들어 예수의 제자들의 행동을 즉각 문제 삼는다.

어떻게 신성한 율법을 어기고 안식일에 밀 이삭을 자를 수 있느냐고 대드는 그들의 눈에는 사람보다 종교, 즉 굶주림이라는 인간의 절박한 상황보다는 종교 계율의 준수가 더없이 소중해보인다.
바리새인들. 그들은 종교 때문에 인간다움을 상실했다.


그들은 까다로운 율법 규정들을 지키는 데 혈안이 된 나머지 그 규정들로 말미암아 고통받는 이 세상의 가난하고 병들고 소외된 이들의 딱한 처지를 전혀 헤아릴 줄 모른다.
정(淨)-부정(不淨)의 흑백도식 이분법에 기초한 숨막히는 율법주의의 신봉자인 그들은 율법을 철두철미 준수하는 자신들만 의인이고 그렇지 못한 사람들은 구원받지 못할 죄인이라는 교만에 사로잡혀 있다.   


다음으로 예수의 태도를 살펴보자.
사람이 안식일보다 소중하다는 게 예수의 입장이다.
예수의 눈에는 종교 계율보다 사람이 훨씬 더 귀하게 보인다.
배고프면 어쩔 수 없이 밀 이삭이라도 잘라먹는 것은 인간의 당연한 생존적 몸부림이다.

인간의 그 타고난 권리를 인정하지 않는 종교는 어떤 이유로도 정당화될 수 없다.
인간의 인간다운 삶에 이바지하지 못하는 종교는 나쁜 종교라고밖에 달리 말할 수 없다.
사람을 피곤하게 만드는 종교, 사람의 기본적인 욕구를 깔보는 종교는 폐기되어야 한다는 것이 예수의 단호한 입장이다.


그렇다면 과연 우리는 사람은 안중에도 없고 종교 계율에만 매달리는 바리새인들을 참으로 어리석다고 손쉽게 흉볼 수 있을까?
오늘 이 땅의 기독교에는 안식일보다 사람이 소중하다는 예수의 인간 존엄의 정신이 살아 숨 쉬고 있다고 자신 있게 말할 수 있을까?

서글프게도 그렇지 못하다.

오늘 이 땅의 목회자들 중에 바리새인들처럼 종교에 눈멀어 사람을 우습게 아는 사람들이 적지 않다.
교인들 한 사람 한 사람이 안고 있는 삶의 고민들에 대한 깊은 관심보다는 어떻게 하면 성공적인 목회를 해서 교회를 부흥시킬 수 있을까 하는 것이 그들의 최대 관심사다.

그래서 그들은 주일성수·기도생활·십일조·전도·교회봉사 등은 강조하면서도 인간의 인간다운 삶 곧 인간 구원의 문제와 직결되는 사회와 역사의 문제에는 별로 관심이 없다.
또 성경의 글자 하나하나를 의심 없이 그대로 믿어야 한다는 유치한 바리새적 문자주의에 빠져 있는 목회자들도 많다.


일반 신자들의 삶에서도 바리새적 율법주의는 정말 위력적이다.
모름지기 사람이 율법보다 중요하다는 그 뻔한 사실을 까맣게 잊고 종교의 노예로 전락했으면서도 자신이 훌륭한 종교인이라고 착각하는 신자들이 많다.
그들은 흡연과 음주 따위의 어쩌면 자질구레한 일에는 꽤나 조심스러우면서도 기독교의 핵심인 인간사랑·민중사랑의 실천에는 게으르다. 


종교를 위한 사람과 사람을 위한 종교. 당신은 이 둘 중에 어느 편에 서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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