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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본주의 신앙에서 벗어나면서 하나님에 대한 인식도 서서히 변하기 시작했습니다. 하지만 이미 삶의 방향을 정하고 신학을 전공하는 길로 들어섰을 때 본격적으로 찾아온 그 변화는 저 스스로 보금자리를 깨고 무엇이 기다리고 있을지 모르는 험한 세계로 나가는 것을 의미했기에 선뜻 받아들이기는 쉽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그동안 제가 몸담고 있던 보금자리 또한 더 이상 견디기 어려운 것은 마찬가지였기에 저는 결국 오랜 두려움과 망설임 끝에 한 걸음 한 걸음씩 다음 세계로 옮겨갈 수밖에 없었습니다. 아래 문장은 근본주의 신앙교육을 받던 대학시절에 만난 성경말씀으로 저에게 말할 수 없는 번민과 아픔을 안겨주었던 말씀입니다.

 

“한밤중에 야훼께서 이집트 땅에 있는 모든 맏아들을 모조리 쳐죽이셨다. 왕위에 오를 파라오의 맏아들을 비롯하여 땅굴에 갇힌 포로의 맏아들과 짐승의 맏배에 이르기까지 다 쳐죽이셨다.” (출애굽기 12:29, 공동번역).

 

“그 때 파라오가 우리를 내보내지 않으려고 고집을 부렸으므로 야훼께서는 이집트 땅에 있는 처음 난 것을 모조리 죽이실 수밖에 없었다. 사람뿐 아니라 짐승까지도 처음 난 것은 모조리 죽이셨다.” (출애굽기 13:15).

 

이 본문을 처음 만났을 때의 저는 ‘사실의 언어’와 ‘고백의 언어’가 갖는 차이를 이해하지 못했습니다. 마치 신문기사처럼 객관화되어 기술된 성서본문은 저의 머리와 가슴을 혼란과 당혹감으로 가득 채웠습니다. 자신이 택한 백성을 구원하기 위해서라지만, 파라오 한 사람의 고집을 꺾기 위해서 이집트의 모든 맏아들을 죽이는 신을 어떻게 이해해야 할지 도무지 알 수가 없었습니다.

 

“야훼께서는 파라오로 하여금 또 고집을 부리게 하시었다.”(출애굽기 10:27)는 말씀이 가슴을 더욱 아프게 파고들었습니다. 이 말씀에 의하면, 파라오의 마음을 강퍅하게 만든 주체는 파라오 자신이 아니라 바로 하나님이셨습니다. 그렇다면 “파라오의 행위에 대한 책임은 누가 져야 하는 것일까?”라는 의문이 저를 집요하게 따라다니며 괴롭혔습니다.

 

저에게 기쁨을 주었던 기독교 신앙은 이제 고통으로 바뀌었습니다. 예수님께서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라고 부르도록 가르쳐주신 ‘따뜻한 나의 하나님’도 저의 마음에서 사라졌습니다.
대신 파라오의 마음을 그렇게 조종해놓고는 당신의 섭리에 거역할 능력이 없는 불쌍한 그에게 책임을 묻고 벌을 주는 ‘구약성서의 하나님’이 제 마음을 가득 채운 채, 혼란과 두려움으로 아파하는 저에게 “하나님의 전지전능하심과 정의로우심을 의심해선 안 된다.”고 위협하고 있었습니다.

 

당시 성서를 차례로 통독해가던 저는, 모세가 레위지파 사람들에게 살인면허를 주어 자기 동족 삼천 명을 몰살시켰다고 기록된 본문도 만날 수밖에 없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자기 백성을 죽이라고 모세에게 명령한 이유는 금송아지 우상을 만들고 섬겼기 때문이라고 성서본문은 말하고 있었습니다.

 

이렇게 당신의 명령에 절대순종하지 않으면 이방민족 뿐 아니라 자기 백성들까지도 몰살시키는 ‘성서의 하나님’을 넘어, 처음 만났을 때 저에게 희망과 빛을 주셨던 ‘저의 하나님’을 다시 찾기까지는 적지 않은 시간이 필요했습니다.

 

성서에 등장하는 사납고 반인륜적인 하나님에 대한 기록들은, 당시 사람들과 기록자가 하나님을 어떻게 인식했는지, 즉 고대인의 ‘신인식의 한계’를 정직하게 반영합니다.
출애굽기의 기록 또한 당시 사람들과 기록자가 하나님을 그런 분으로 믿고 해석했음을 반영하는 것일 뿐 그 기록 자체가 객관적 사실임을 나타내는 것이 아닙니다.

 

성서가 기록된 시대는 이삼천 년 전입니다. 그때 거기에 살았던 사람들은 정직하게 자신들의 신앙으로 그렇게 고백했을 것입니다.
피해자로서 신음하고 있던 이스라엘 공동체의 입장에서 볼 때, 하나님의 징계는 철저하고 가혹할수록 정의롭고 기쁜 일이었습니다.
자신과 동족의 생명을 위협하는 강대국 지도자 파라오는 절대악일 수밖에 없었고, 그를 가혹하게 징계하는 것이 그들에게는 선이었습니다.

 

하지만 삼천 년 세월이 흐른 지금까지도 그런 원시 유일신 신앙과 (지금의 기준으로 볼 때는) 편협하고 반인륜적인 기록들을 ‘오류 없는 하나님의 말씀’으로 믿는 슬픈 현실이 우리 한국 교회 교우님들의 자유로운 신앙과 삶을 방해하고 있습니다.

 

뿐만 아니라, 성서무오설이라는 오래된 교리에 매여 이웃종교와 문화를 부정함으로써 동시대를 살아가는 이웃들의 가슴에 못을 박을 뿐 아니라, 그분들의 삶의 자리를 실제로 파괴하기까지 하는 무례한 행동은, 그것이 비록 일부 극단적 성향을 가진 근본주의자들에 의해 저질러지는 것이라 하더라도 우리 예수사람들이 함께 책임을 지고 반드시 극복해내야 할 우리 한국 교회의 중요한 과제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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