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2013.08.22 03:35

나눔과 베풂 / 정연복

조회 수 1018 추천 수 0 댓글 0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정연복/ 한국기독교연구소 편집위원



“밭에서 곡식을 거둘 때에 이삭을 밭에 남긴 채 잊고 왔거든 그 이삭을 집으러 되돌아가지 말라.…
올리브나무 열매를 떨 때, 한 번 지나간 다음 되돌아가서 가지들을 샅샅이 뒤지지 말라.…
포도를 딸 때에도, 한 번 지나간 다음 되돌아가서 다시 뒤지지 말라.
그것은 떠돌이나 고아나 과부에게 돌아갈 몫이다.”(신 24:19~21)

그렇다. ‘과부 사정은 과부가 안다’고, 가난이 뭔지를 몸소 체험하는 민중들이야말로 나눔과 베풂의 소박한 삶의 지혜를 안다. 그들에게 나눔은 고상한 이론이 아니라 고단한 살림살이에도 사람과 사람을 잇는 인정(人情)의 끈이요, 삶의 희망을 지켜 가는 원동력이다. 

자유를 찾아 이집트에서 탈출하여 절박한 생존의 위기 속에 광야를 유랑하던 히브리 민중들에게 요긴한 음식이 되었을 ‘만나와 메추라기’ 이야기를 보도하면서, 성서 기자는

“모세는 그들에게 먹고 남은 것을 그 다음날을 위하여 남겨 두지 말라고 당부하였다.
그런데 모세의 말을 듣지 않은 사람들이 더러 있었다.
이튿날 아침, 그들이 남겨 둔 것에서는 구더기가 끓고 썩는 냄새가 났다.
모세는 그들에게 몹시 화를 냈다”

는 해설을 살짝 덧붙인다(출 16:19~20).

한치 앞을 내다볼 수 없는 죽음의 땅 광야에서 변변치 않은 음식이나마 내일의 양식으로 챙기는 것은 당연지사일 텐데, 신명기 기자는 왜 그런 행동을 신랄하게 비판하는가?

그것은 앞으로 히브리 민중들이 건설해야 할 새 세상에서는 물질의 축적이나 독점은 단호히 거부되고, 공평한 나눔이 새 세상의 일상적 삶의 질서가 되어야 한다는 준엄한 가르침이 아닌가.   

예수는 어린 시절부터 히브리 민중들의 마음을 이야기로 듣고 또 생활 주변에서 목격했을 것이다.

‘일용할 양식’(마 6:11, 눅 11:3)이 절박한 문제로 대두되는 절대빈곤의 갈릴리 사람들이었지만, 그러면서도 밥 한 그릇, 떡 한 조각, 밀가루 부침개 한 장이라도 이웃과 나눠 먹을 줄 아는 그들의 인정 어린 삶의 모습을 보면서, 예수는 나눔이야말로 인간의 삶을 지탱하는 참으로 소중한 인간적 가치임을 가슴 한 구석에 남몰래 새겼을 것이다.


예수가 세리와 죄인들의 친구요, 먹고 마시기를 탐하는 자라는 손가락질을 받으면서도 이 세상의 가난하고 소외된 이들과 거리낌 없이 밥상 공동체를 이룬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니다(마 9:11, 막 2:16, 눅 5:30).

밑바닥 민중의 아들인 예수는 어려서부터 늘 그렇게 살아왔고, 그래서 운동의 길에 들어서서도 자연스레 민중들과 개방적인 식탁 친교를 가질 수 있었다.


그리고 율법과 사회적 차별의식 때문에 죄의식과 열등감과 소외감에 짓눌려 살던 민중들은 예수와의 이런 친밀한 인간적 교제를 통해 ‘아, 나도 하나의 소중한 인격체구나’ 하는 인간으로서의 자존심과 삶의 희망을 회복할 수 있었을 것이다.


우리는 ‘오병이어의 기적’(막 6:35~44) 이야기도 같은 맥락에서 읽을 수 있다.
그것은 적은 음식이 기적적으로 불어난 ‘증식’ 기적이 아니라, 적은 분량의 보잘것없는 음식이나마 많은 사람이 사이좋게 나눠 먹은 나눔의 기적이었을 것이다.


요한복음에서는
“웬 아이가 보리빵 다섯 개와 작은 물고기 두 마리를 가지고 있었다”(요 6:9)
고 말하는데, 아마도 자기 음식을 아낌없이 내놓은 아이의 행동에 자극을 받아 다른 사람들도 부끄러운 나머지 꿍쳐 두었던 음식을 다 내놓아 많은 사람들이 조금씩이라도 골고루 나눠 먹은 나눔의 기적이 일어났던 게 아닐까.

“모두 배불리 먹었다”는 성서의 보도는 새빨간 거짓말이 아니다.  왜?
예수를 좇아 다니느라 저녁 이미 늦은 시각까지(막 6:35) 쫄쫄 굶었을 많은 사람들의 배를 채우기에는 음식이 턱없이 부족했지만, 그 대신 그들은 나눔의 기적을 통해 음식보다 더 귀한 사랑으로 배불렀을 테니까.


예수운동은 독점이 일상화된 현실에 대한 비판적 대안으로 나눔을 조직적으로 실천하는 운동이다.

따라서 예수운동의 주체는 모름지기 나눔의 소중한 인간적 가치를 몸으로 느끼는 풀뿌리 민중들일 수밖에 없으니,
“가난한 사람들아, 너희는 행복하다. 하느님 나라가 너희의 것이다”(묵 6:20)
라는 예수의 말씀의 행간에 담긴 뜻이 바로 그것이리라.


List of Articles
번호 제목 글쓴이 날짜 조회 수
344 예수그리스도께서 부활하셨습니다. Jesus Christ Is Risen. : 제임스앤제임스 2016.03.24 183
343 예수님 스타일과 강남 스타일을 생각해보게 되었습니다. 제임스앤제임스 2012.11.02 1395
342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내가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하지 않고 아버지께로 올자가 없느니라를 항상 기억하게 하여 주옵소서. 제임스앤제임스 2016.05.14 240
341 예수님은 우리의 해답이었습니다. Jesus Is The Answer. 제임스앤제임스 2015.10.09 232
340 예수님은 죽음으로 죽음을 이기셨습니다. 제임스앤제임스 2013.03.19 968
339 예수님은 평화가 아니라 칼을 주러 오셨다 ? / 산들바람 나누리 2013.04.29 1102
338 예수님을 믿는 엘림크리스챤 친구들이 사는 생활을 보고 싶었습니다. 1 제임스앤제임스 2016.02.17 150
337 예수님이라면 이럴 때 어떻게 하셨을까 ? / 산들바람 나누리 2013.08.17 896
336 예수를 믿되 예수처럼 살지 않으려는 기독교인 / 한인철 교수 나누리 2013.06.11 1067
335 예수를 예수답게 하라 / 정연복 나누리 2013.08.13 645
334 옛 습관을 고치지 못하는 저희를 용서하여 주소서. 제임스앤제임스 2011.11.21 1133
333 오늘 아침엔 주님의 사랑을 생각했습니다. 제임스앤제임스 2012.06.10 1261
332 오늘 우리는 가난하고 방치된 사람을 위해 기도합니다. Today We Pray For the Poor and Neglected. 제임스앤제임스 2014.12.19 689
331 오늘 우리는 그리스도 안에서 평화를 갖고 있습니다. 제임스앤제임스 2012.12.13 1868
330 오늘 우리의 지친 영혼을 축복하여 주소서. 제임스앤제임스 2011.12.01 1026
329 오늘도 새벽기도를 할 수 있습니다. 제임스앤제임스 2012.02.24 933
328 오늘도 예수님께 울부짖는 우리의 마음들이 있습니다. 제임스앤제임스 2013.07.23 780
327 오늘도 창조주 하나님의 손길을 깨닫게 하소서. 제임스앤제임스 2012.10.27 1180
326 오늘도 한인의 삶이 행복했으면 하고 기도합니다. 1 제임스앤제임스 2013.05.24 1001
325 오클랜드 보타니 언덕에서 우리의 기도를 드립니다. : There Is Our Prayer At Botany Hill In Auckland. 제임스앤제임스 2014.12.10 650
Board Pagination Prev 1 ... 15 16 17 18 19 20 21 22 23 24 ... 37 Next
/ 37

X