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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현대인들이 성경을 읽고 이해할 때, 필요로 하는 이해의 준비단계로서 조명등 
                                                                                                                                     

                                                                                                                                김경재   한신대  명예교수



1) 계몽주의(17~18세기) 시대정신의 ‘이성의 빛’에 근거한 합리적 비판정신의 조명등

보수적 기독교 전통은 인류정신사 속에 일어난 계몽주의 시대정신(17~18세기)에 대하여 매우 부정적 시각을 갖고 있지만, 이것은 정당하지 못한 태도이다.

이성만능주의에로 치달은 일부 계몽주의 운동이 반종교적-무신론적-유물론적 경향으로 기울어졌지만, 계몽정신의 근본정신은 인간 내면의 이성의 빛을 통하여, 허위적 권위로 치장한 비진리를 비판적으로 연구함으로서 ‘진실’에 접근하자는 성숙한 인간의 비판정신이다.

‘성경’이 비록 계시적 영감으로 저술되고 편집되고 전승되었을지라도, “하늘에서 완성시켜 땅 위로 던져준 경전”이 아니다. 적어도 1200년 동안의 장구한 역사적 과정에서 형성된 책이다.

그러므로, 각종 사본들을 비교 연구하여 원본에 가장 접근한 성경을 찾아내려고 목적하는 문헌비평연구, 성경이 쓰여지고 유포된 시대역사적 배경을 연구하는 역사비평연구, 구전으로 전해오던 이야기와 담론이 후대에 전승해가면서 편집되고 해석되어지는 전승비평 및 편집비평 등 다양한 측면을 연구하는 것은, 성경이 전하려는 ‘복음적 참 진리’에 도달하기 위한 준비단계로서 필요한 이해의 조명등이다.

보수적 기독교의 ‘문자주의적 성경절대주의’는 기초단계의 연구자체를 ‘계시적 경전’에 대한 파괴적 태도라고 단정하면서, 성경을 신성의 보자기로 쌓아 놓고, 성경에 대한 학문적 비평 연구자체를 인본주의, 자유주의, 신신학이라고 단정을 하면서 비평적 연구자체를 용납하지 않는다.

이러한 태도는 ‘신적 계시’를 빙자하여 교리적 독단주의를 낳고, 현대인들의 상호대화적 진리탐구를 첫걸음부터 단절시키고 만다. 인류는 계몽주의를 넘어서야 하지만, 그 이전단계로 되돌아 갈수 없다.


2) 자연과학의 등불이 밝혀가는 ‘자연이라는 경전’ 문법에 경청하는 자세의 필요성

계몽주의 시대정신은 근대과학의 놀라운 탄생과, 연이은 현대과학의 업적을 이루었다. ‘성경’이 양피지나 종이 위에 써놓은 창조주의 계시서라면, 우주나 지구사는 자연이라는 종이 위에 써놓은 창조 이야기이자, 지금도 창조되어가는 이야기 담론이다.
 
천문학, 물리화학, 지질학, 고생물학, 생물학, 의학, 유전학, 생태학 등등은 창조세계를 비록 한정적이나마 놀랄 만큼 자상하게 그 내면적 메카니즘을 밝혀놓았다.

보수적 기독교의 ‘성서적 문자주의’는 성경의 모든 내용이 문자적으로 계시된 진리라고 믿는 도그마 때문에, 현대과학과 불필요한 충돌과 대립을 자초해 왔다.

성경은 우주생성과정이나, 지구생물의 출현과정을 알려주는 자연과학 교과서가 아니라, 본래적 인간모습을 잃어버리고 죄와 죽음의 권세에 노예가 되어버린 인간을 다시 자유롭고 사랑하는 사람들로 재창조시키는 구원의 길에 관한 이야기 곧 종교적 진리를 가르치는 책이다.
 
미국에서 19세기 말과 20세기 초에 걸쳐 발생한 소위 ‘근본주의 신학’운동은 그 본질이 계몽주의 여파로
일어난 성서비평학 연구방법과 다윈 진화론의 여파로 일어난 성경문자주의 신성불가침 교리 즉 ‘성경무오류설’의 붕괴위협을 막아보려는 ‘공격적 방어신학 체계’였다.

진화론을 부정하거나, 지구사를 1만년 이내로 계산하는 성경문자주의자들의 기독교 경전해석은 ‘신앙의 신실성’이 아니라 ‘지성의 침묵과 왜곡을 강요하는 정신적 테러’인 것이다. 그들은 진화론을 인정하면 곧바로 유물론이요 무신론이 된다고 등식화하는 단순정위의 오류를 범한다.

근본주의적 성경문자주의자들은, 진화론을 수용하면서도 경건한 하나님 신앙으로 살아가는 수많은 과학자들과 지성인들이 있음을 이해하지 못하고 용납하지 못한다.

참된 지성적 신앙인들은 생명이 진화한다는 사실자체를 의심하지 않고, 다만 진화가 이뤄지는 과정과 현실을 설명하는 보다 과학적인 섬세함과 치밀한 연구를 기다린다.

다시말하면, 하나님이 대자연의 자기조직화와 진화과정을 통해서 일으키시는 새로움․창조성․아름다움 형성에 대한 자연과학자들의 설명이 매우 단조롭고 거치른 기초단계이며 설명 안 되는 점이 너무나 많기 때문에, 성숙한 종교인은 보다 섬세한 ‘과학의 진화’를 기다리는 것이다.


3) 19세기 역사주의는 ‘역사이성의 등불’을 밝혔고, 성숙한 현대인들은 시간과 공간 안에서 발생한 모든 일들은 역사적으로 상대적인 것임을 안다.

서구 정신사 과정에서, 17~18세기 계몽정신은 19세기에 이르러 ‘역사주의’라는 시대사조에 도달하게 되었다. ‘역사주의’란 역사에 관한 관심만이 아니라, 인간의 모든 정신적 삶의 형성과정과 그 결과물은 역사적 영향과 제약을 받는다는 깊은 깨달음인 것이다.
 
‘역사적 깨달음’의 본질내용은 인간적 삶과 모든 문화현상은 상대적인 것이고, 생성된 것이고, 변화해 가면서 질적으로 자란다는 깨달음이다.

인류역사를 뒤돌아보면, 위대한 문명․국가․이념․제국․종교․경전․민족은 언제나 자기들의 절대성․영원성을 주장해 왔다.

로마 가톨릭교회의 교황권의 절대주의 또는 개신교의 성경절대주의와 역사적 종교형태로서의 그리스도교라는 종교 그 자체가 ‘절대적’이라고 주장한다면 ‘역사이성’의 빛에서 볼 때 ‘우상숭배적’이다. 절대를 말한다면 오직 하나님에게만 해당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종교개혁자들의 모토 중에서 ‘오직 성경만’의 주장은 16세기 당시 교황권과 주교들의 회의결정이 진리를 담보한다는 성직자들의 절대권위에 대한 비판이다. ‘ 성서적 복음신앙에로 돌아가자! ’는 표어로서 그 의미를 재해석해야 한다.


4) 이해 현상학으로서 ‘해석학적 맥락구조’(interpretive context) 가운데서 밝혀지는 진리등불

20세기에 들어와서 ‘정신과학의 꽃’이라고 일컫는 해석학(Hermeneutics) 담론이 크게 발전하게 되었다. 해석학이란 쉽게 말해서, 나와 떨어진 타자의 정신과 심령 안에서 체험되고 기록되거나 표현된 것을 어떻게, 내가 이해 할 수 있는 것인가를 밝혀내는 작업이다.
 
우리가 성경을 읽고 은혜 받고 감동감화 받는 것은 ‘해석학적 이해의 과정 결과’이다. 이해란 무엇인가“ 아무 전제 없는 이해가 가능한가? 아무 문제의식 없이 성경을 뒤적이는 무관심한 사람과 자신의 죄와 고통 속에서 고민하는 사람이 읽는 성경의 감동이 왜 다른가?

성경진리는 객관적으로 보면 헬라어나 히브리어 원문으로, 또는 각 나라의 언어로 번역되어 문자로서 고정되어 있다. 모두 동일한 성경을 읽는다.

그러나, 읽는 독자가 처한 ‘삶의 정황’과 ‘인생체험’, 실존적 물음과 진리구도의 자세 등에 따라 성경은 보여주는(계시되는) 구원의 능력의 높이와 깊이와 넓이가 다르게 다가온다. 성경의 진리말씀과 나의 실존적 내면의 영혼은 일방적 관계가 아니라 쌍방적 관계를 갖는다.
 
‘말씀’은 나의 해석을 기다리는 피동적 성경문장이 아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살아있고, 활력이 있어, 죄우에 날선 어떤 검보다도 예리하여, 혼과 영과 및 관절과 골수를 쪼개기까지 하며 또 마음의 생각과 뜻을 판단한다”(히4:12).

엄밀하게 말하면, 성경말씀의 바른 이해의 불꽃 스파크가 일어나려면, 성경말씀 자체․시대상황․실존영혼의 갈망, 그 삼각구도의 한복판에서 발생하는 영적불꽃 이다. 하나님/하나님의 나라/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의미를 말할 때, 사람들은 백지와 같은 맘 상태에서 생각하고 말하지 않는다.

사람은 성경을 대할 때, 이미 사회적, 문화적, 역사적 존재로서 폭넓은 요인들의 영향을 받는 특정한 시각을 갖고있다는 깨달음이 중요한데, 이러한 해석학적 시각을 ‘해석학적 전이해’, ‘해석학적 컨텍스트’라고 부른다.

이러한 ‘해석학적 전이해’들은 비록 고의성이 없이 무의식적이거나 잠재의식적으로 작동하지만 ‘하나님의 말씀 그 자체’를 바르게 이해하는데 방해가 되는 굴절, 편견, 억측, 오해, 아전인수격 해석을 발생시키는 원인제공이 된다.
 
그러나 동시에, ‘하나님의 말씀 그 자체’를 이해하도록 접근하고 연결시키는 단초를 제공한다. 성숙한 현대인들은 이러한 ‘해석학적 관점’이 담지하는 유한성, 상대성, 다양성을 절감하게 되었다.

그러한 깨달음은 인간이 하나님에 대하여 그리고 하나님나라에 대하여 말하는 모든 종교적 언어행위는 상징, 은유, 비유, 이야기 등의 형태로서 표현 할 수밖에 없음을 안다. 은유(metaphor)는 “…이면서 동시에…이 아닌”이라는 특성을 지닌 언어표현 형태이다. 성경언어표현은 ‘사랑의 고백적 언어’ 이다.

성경문자주의적 해석입장이 위험한 것은 “인간의 언어적 표현과 영적 진리나 초월적 하나님을 곧바로 동일화함으로서, 하나님과 진리자체를 소유하고 지배관리하는 특권을 소유한 것처럼 영적교만과 우성숭배적 허위의식의 덫에 빠지기 때문이다.

성경말씀이 지닌 진리의 위대성에 감동한 것은 옳지만, 문자적으로 오류가 없다고 문자적 구절에 절대적 무오류성을 강조하는 순간, “의문(儀文)은 죽이고 영(靈)은 살린다”(고후3:6)는 저 유명한 바울의 경고를 무시한 셈이 된다.

여기에서 말하는 ‘의문’은 구약종교에서 강조하는 종교의례와 율법의 문자적 해석을 말하며, ‘영’은 성령이 성경을 읽는 사람의 심령 안에서 함께 일하시는 ‘내적 진리조명’을 말한다.


5) ‘성령의 내적증거’(inner testimony of Holy Spirit)로서 말씀을 통하여 ‘말씀사건’을 일으키시는 성령의 은사

‘성령의 내적 조명‘이라는 신학적 중요개념은 종교개혁자 특히 칼빈 선생의 강조하는 바이다.

그 뜻은, 사람이 성경을 읽을 때, 그 성경이 말하려는 진실한 복음적 구원진리를 올바르게 이해할 수 있는 것은, 성경을 쓴 사람들의 심령 속에서 진리의 영으로 그들의 심령을 밝히시고 도우셨던 보혜사 ‘진리의 영’이, 동일한 성경을 읽는 신자의 맘 속에서 구원의 진리를 깨닫도록 그 심령을 진리의 빛으로 조명하여 주신다는 뜻이다.

‘성령의 내적조명’이라는 신학적 진리는 근현대시기에 발달한 모든 성경관에 대한 계몽주의적 이성비판․역사적 이성․분석적인 성서비평학을 궁극적인 것이라고 판단하지 않고 성경의 진정한 진리의 깊음과 높음을 이해하도록 돕는 ‘성서이해의 예비적 단계들’이라고 보도록 우리들의 이해지평(理解地坪)을 넓혀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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