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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슬퍼하고 고민할 줄 알아야 한다
                                  
                                                                                                               산들바람


1. 긍정의 힘’에 담긴 함정에 대하여


우리 한국 교회 강단에서는, 매사에 긍정적으로 생각하며 항상 기뻐하라고 강조하는 설교가 자주 선포됩니다. 하지만 슬퍼하고 고민하는 신앙과 삶을 더불어 강조하시는 목사님은 매우 드문 것 같습니다.

심지어 "기독교인이 슬퍼한다면 그것은 믿음이 없는 것"이라고 설교하시는 목사님이나 그렇게 생각하시는 교우님들도 가끔 만납니다.

물론 기쁨과 감사는 우리 기독교 신앙의 중요한 요소입니다. 우리가 예수님을 만나고 진리 안에서 자유를 누리게 되면 감사와 기쁨이 절로 우러납니다. 하지만 그 기쁨과 감사가 왜곡된 현실로부터의 도피가 되어서는 안되겠습니다.

우리 기독교인들은 기쁨과 슬픔을 함께 안고 살아갈 수밖에 없는 사람들입니다. 세상과 자신 안에 여전히 존재하는 악과 모순 때문입니다. 자기 안에, 그리고 세상에 악과 모순이 존재하는데도 슬퍼할 줄 모르고 오직 기뻐하기만 한다면, 그건 믿음이 성숙하지 못했거나 병들었기 때문입니다.

교우님들께서 잘 아시는 바와 같이 빌립보서의 주제는 “기뻐하라”는 것입니다. 그 편지를 쓸 때 사도 바울은 감옥에 있었습니다. 하지만 어둡고 칙칙한 감옥이 바울이 누리는 영적 기쁨을 빼앗을 수 없었습니다. 우리 주님께서 주시는 ‘환경을 초월한 기쁨’이 바울의 마음 안에서 끊임없이 솟구쳤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감옥 안에서도 영적인 기쁨을 누렸던 사도 바울은
기뻐하는 사람이 있으면 함께 기뻐해 주고 우는 사람이 있으면 함께 울어주십시오.”(로마서 12:15, 공동번역)라고 권했습니다.
 
우리 주님도 “슬퍼하는 사람은 행복하다. 그들은 위로를 받을 것이다.”(마태복음 5:4. 개역성경에는 “애통해 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저희가 위로를 받을 것임이요.”)라고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의 은혜에 늘 감사하면서도 세상의 불의와 모순에 대해 슬퍼하며, 또한 즐거워하는 사람들과 함께 즐거워하면서도 고통으로 울부짖는 이웃들과 함께 울며 애통해하는 사람이 진정 하나님의 사람들이라고 성경은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하지만 우리 사회에는, 특히 우리 한국 교회 안에는, ‘무책임한 낙천주의자들’이 너무 많은 것 같습니다.
우리가 사는 세상에 존재하는 모순이나 갈등, 아픔에 대해 같이 아파하고 그 모순이나 갈등을 극복해서 다 같이 살기 좋은 세상을 만들려 애쓰기보다, 그것을 피해가거나 외면하고, 또는 그 점을 이용하여 자신의 편리한 삶만을 추구하는 무책임한 낙천주의자들이 너무 많은 것입니다.


2. 슬픔과 고뇌가 없는 신앙은 죽은 신앙입니다

우리가 주목해야 할 사실이 있습니다. 성경에는 우리 주님께서 웃으셨다는 기록이 존재하지 않습니다. 반면에 고민하고 슬퍼하셨으며, 우셨다는 기록들이 있습니다. 우리 주님은 예루살렘을 바라보시며 눈물을 흘리셨고, 겟세마네 동산에서는 밤을 새고 기도하며 고민하셨다고 성경은 말하고 있습니다.

우리 주님께서 평생 웃지 않고 사시지는 않았을 것입니다. 아마도 가난하고 억눌린 이웃들과 어울려 그들을 일으켜 세워주시고 함께 웃으시며 먹고 마시기를 즐겨 하셨을 것입니다.


그런데 그렇게 기뻐하며 즐거워하시는 모습이 성경에 자주 등장하지 않는 이유가 무엇일까요?
왜 성서기자들과 편집자들은 그런 듣기 좋고 보기 좋은 모습보다 오히려 주님께서 고민하고 슬퍼하시는 장면들을 더 많이 기록으로 남겼을까요?


그것은 우리 기독교 신앙의 진정한 의미가 슬픔과 고난에서 출발한다고 판단했기 때문이 아닐까요?
기뻐하고 감사하는 신앙과 삶도 중요하지만, 어둠의 세력이 여전히 뿜어내는 모순과 불의를 극복하고 만 백성이 함께 누리는 정의롭고 평화로운 하나님의 나라를 이루어가는 것이 더욱 중요한 복음의 정신이라고 생각했기에, 우리 주님의 고난의 삶에 초점을 맞춘 것이 아닐까요?


그러므로 우리도 주님을 본받아 그렇게 고뇌하며 슬퍼할 줄 알아야 하겠습니다.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자녀답게 살지 못하는 못난 자신을 발견할 때마다 우리는 가슴을 치고 회개해야 하며, 어둠의 세력과 싸워 이기고 세상에 평화를 이루기 위해 눈물 흘리신 우리 주님처럼 우리도 그렇게 고뇌하며 울 줄도 알아야 하겠습니다.
우리보다 앞서 믿음의 길을 걸어가신 선각자들도 예외 없이 하나님의 사람이기에 받아야 하는 그런 고통과 슬픔에 직면했습니다.


‘눈물의 선지자’라는 별명을 가진 예레미야는 자기 민족의 멸망을 예고한 선지자였습니다.
하나님을 떠나 방탕한 삶을 사는 동족을 향해 이방족속인 바벨론에 의해 멸망당할 것이라고 예언할 수밖에 없었던 이 고독하고 슬픈 예언자를 향해 당시 종교지도자들과 백성들은 한 목소리로 매국노라고 욕하며 거짓선지자라고 저주를 퍼부었습니다.


부딪쳐오는 핍박과 고통에 눈물로 세월을 보내던 예레미야는 차라리 예언자직을 내려놓고 평범한 삶을 살고 싶다며 하나님께 투정을 부리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결국 예레미야는 고난의 길을 포기하지 않았고 오히려 그 고난과 핍박을 적극적으로 껴안으며 하나님의 말씀을 담대히 선포했습니다.
하여 위대한 선지자의 반열에 올라 지금까지 우리들의 존경을 받고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런 생산적인 고민, 하나님에 대한 갈망과 이웃에 대한 짙은 사랑에서 우러나오는 그런 슬픔이, 오늘날 우리 한국 교회에는 너무 결여되어 있는 것 같습니다.
민중교회를 비롯하여 일부 열린 교회들이 생명평화 운동에 적극 나서고 있지만, 대부분의 한국 교회들은 세상에 평화를 심으며 헐벗고 고난당하는 이웃들과 함께 울고 아파하는 그 아름다운 교회들을 외면할 뿐 아니라 오히려 불편해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3. 우리 한국 교회가 사회로부터 존경받지 못하는 이유가 무엇인지 깊이 고민해 주십시오.

요즘 우리 기독교인과 한국 교회가 사회로부터 별로 존경을 받지 못하고 있습니다.
아니, 존경은커녕 비난을 사는 일도 적지 않습니다.
인터넷에는 많은 안티기독교 사이트가 존재합니다. 이처럼 우리 교회가 사회로부터 존경받지 못하는 이유가 어디에 있는지에 대해서도 깊이 고민하고 슬퍼해야 합니다.


교회를 비난하는 분들이 내세우는 가장 큰 이유는, 한국 교회가 사회를 밝고 아름답게 하기는커녕 오히려 해를 끼치는 일이 비일비재하며, 자기 신념에 대한 지나친 확신으로 다른 생각을 가진 사람들을 이해하지 못하고 끊임없이 사회 갈등을 일으킨다는 것입니다.
이런 비난은 오해에서 비롯된 것도 있지만, 우리가 잘 새겨듣고 뼈저리게 반성할 부분도 적지 않다고 저는 생각합니다.


우리 주님의 십자가와 부활은 결코 분리할 수 없는 동전의 양면과 같습니다.
십자가가 있었기에 영광의 부활이 있는 것이며, 부활의 영광이 없었다면 십자가의 의미도 사라질 수밖에 없었을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우리 하나님의 자녀들도 고난과 영광, 슬픔과 기쁨을 동시에 안고 살아가야 합니다. 고난과 기쁨, 고뇌와 감사, 이 두 요소가 우리의 삶 가운데 조화를 이루어야 우리의 신앙이 더욱 깊어질 수 있습니다.


교우님들은 어떠십니까?
우리 주님의 은총과 사랑에 늘 감사하며 살아가고 계십니까?
동시에, 본래 선하고 아름답게 창조된 이 세상의 질서가 하나님을 떠나 제 멋대로 움직이고 있는 현실에 대해서, 그리고 하늘 아버지의 자녀답게 온전한 모습으로 성화되어가지 못하는 우리 자신에 대해서, 끊임없이 고뇌하며 아파하고 계십니까?


한국 교회와 교우님들께 간절히 부탁드립니다.
기뻐하고 감사하는 삶 못지않게, 고민하고 슬퍼하는 삶도 살아주십시오. 생산적인 고민은 반드시 필요합니다.
세상에 생명을 주는 고민이기 때문입니다.
교회는 의를 위하여 받는 고난을 두려워하거나 회피하지 말아야 합니다.
우리가 진정 하나님의 자녀라면 마땅히 그런 고난을 받아들일 수 있어야 합니다.

그런데 그런 생산적인 고민은 전혀 하지 않고 오로지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만 생각하고 기뻐하며 찬양한다면, 그것이 전부라면, 우리는 균형과 조화가 무너진 왜곡된 신앙생활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것은 또한 “너희는 세상의 소금과 빛”이라고 하신 우리 주님의 말씀을 저버리는 것입니다.

교회 열심히 다니고 기도 열심히 하시는 교우님들께 부탁드립니다.
교우님들로 인해 우리 사회가 따뜻해 질 수 있도록 힘써 노력해 주십시오.


하나님의 은총을 생각하면서 기뻐하고 감사하며 찬양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우리 주위에 여전히 남아있는 모순과 불의에 대해 분노할 줄도 알고, 우는 이웃들과 함께 울 줄도 아는 진정한 예수사람이 되어주십시오.

그리하여, 지금은 우리 한국 교회가 사회로부터 비난을 받기도 하지만, 앞으로는 사회로부터 존경받는 교회가 될 수 있도록 힘써 노력해달라고 간절히 부탁드립니다.

우리 주님께서 받으신 고난에 동참하며, 우리의 신앙 이대로 좋은지 함께 고민하며 돌아보시는 뜻깊은 기간이 되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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