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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산들바람


1. 사랑의 하나님은 또한 무서운 심판의 하나님?

 한국의 많은 교회에서 “태초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셨다.”는 창세기 1장 1절을 낭독하며, 창조주 하나님께 감사하는 설교를 나누었으리라 생각됩니다.
모든 생명이 하나님께로부터 왔기에 그분께 온전히 순종하는 삶을 살자는 결단으로 자연스럽게 이어졌겠지요.
에덴동산의 모든 실과를 먹어도 좋지만 선과 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열매만은 먹지 말라는 하나님의 엄한 명령도 많은 교회에서 언급되었을 것 같습니다.


우리는 창조주를 사랑의 하나님으로 고백하지만 동시에 순종하지 않는 자에게 무서운 진노를 내리시는 분으로 생각합니다.
교회의 오랜 가르침 때문인데, 성경의 기록을 문자 그대로 읽노라면 누구나 그렇게 동의할 수밖에 없을 것입니다.
창세기는 힘찬 희망으로 시작하지만 곧바로 첫 사람 아담과 하와의 타락과 그들을 동산에서 내쫓으시는 하나님, 이어지는 죄악상과 큰 홍수로 인류를 쓸어버리시는 무서운 심판의 하나님을 그리고 있기 때문입니다.

사랑의 하나님을 수없이 찬양하고 경배함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하나님에 대한 두려움을 완전히 내려놓지 못하는 이유는, 이렇게 성경의 서두에서부터 하나님의 엄중한 심판이 선포되고 있기 때문이며, 이런 ‘무서운 하나님’은 ‘사랑의 하나님’과 함께 성경 전반을 흐르는 두 개의 큰 물줄기를 이루고 있습니다.

2. 창세기를 문자 그대로 읽어서는 안됩니다.


하지만 대부분의 성서학자들은 창세기를 그렇게 문자 그대로 읽어서는 안된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창세기 1~11장은 역사가 아니라 신화이기 때문입니다.
역사는 사실을 전달하기 위해 기록한 것이지만 신화는 중요한 의미를 전달하기 위해 만들어진 이야기입니다.
그러므로 역사는 역사로, 신화는 신화로 이해해야 합니다.
역사를 신화로 해석하거나 신화를 역사로 해석하는 것 모두 진실로부터 멀어지기 때문입니다.


대부분의 성서학자들이 생각하는 대로 창세기 앞부분이 역사가 아니라 신화라면, 우리는 많은 자유를 얻게 될 것입니다.
진화론과 창조론을 대립적인 관점에서 볼 필요가 없으며, 진화를 우리 하나님께서 천지를 창조하시는 방법으로, 또한 과정으로 보는 여유를 갖게 될 것입니다.


또한 인류의 역사, 심지어 세상의 역사가 일만 년도 채 되지 않는다는 비합리적인 생각도 할 필요가 없고, 홍수 이전 사람들은 몇 백 년씩 살았는데 타락 이후 인류의 수명이 현격하게 줄어들었다는 상식에 맞지 않는 생각에서도 벗어날 수 있습니다.
무엇보다 우리 기독교와 과학이 친구가 될 수 있을 것이며, 지구마을의 수많은 아름다운 이웃종교 이웃문화와도 사이좋은 벗이 될 수 있을 것입니다.


3. 창세기는 ‘사실의 기록’이 아니라 ‘진실의 기록’입니다.


“그러면 성경의 기록이 거짓이란 말인가?”하고 우려하는 교우님이 계실 것 같습니다.
하지만 창세기 앞부분이 신화의 기록이라 하여 거짓이라고 생각해선 안됩니다.
오히려 사실 이상의 중요한 의미를 담고 있다는 점에서 ‘사실의 기록’은 아니지만 ‘진실의 기록’이라고 이해해야 합니다.


사실과 진실의 차이는 객관적인 것과 주관적인 것의 차이입니다.
마치 줄리엣을 향해 “이보다 더 아름다운 여인은 세상에 없다.”고 고백하는 로미오의 찬사가 객관적인 사실이라기보다는 로미오에게 있어서는 진실로 그렇다는 뜻으로 이해해야 하는 것과 같습니다.
즉 로미오의 고백을 사실의 언어로 이해해서 그의 말이 맞다 틀리다 논할 필요가 없으며, 그의 주관적인 진실을 이해해야 하는 것과 같은 이치입니다.


창세신화는 우리 믿음의 선조들이 ‘창조주 하나님과 우리의 관계가 어떠한 것이며, 그 분 앞에서 우리가 어떤 삶을 살아야 하는 것인가?’라는 물음에 대해 진지하게 내린 답입니다.
그분은 우주만물을 지으신 위대한 분이며, 우리는 그분으로부터 생명과 삶을 부여받았기에 자식이 부모에게 효도하는 것이 당연한 것처럼 우리도 그 분을 경외하며 그 분의 뜻을 따라 살아야 한다는 교훈을 후손들에게 가르쳐주기 위해 기록한 (사실의 이야기가 아니라) ‘진실의 이야기’인 것입니다.


그러니까 하나님은 실제로 아담과 하와를 에덴동산에서 내쫒지 않으셨으며 홍수로 인류를 쓸어버리는 무서운 일도 하시지 않았습니다.
이 기록은 단지 삼천년 전의 옛 사람들이, 자신들이 알고 있는 세계관 아래에서, 하나님을 후손들에게 효율적으로 소개하게 위해 도입한 신화의 기록일 뿐입니다.
다시 말씀드리지만, 신화를 역사처럼 이해하면 우리는 객관적 사실 뿐 아니라 신앙의 진실로부터도 멀어질 수밖에 없습니다.


4. 생산적인 의심은 우리를 참다운 신앙으로 인도합니다.


우리 한국 교회는 미국 근본주의 신학의 영향으로 대부분의 교회들이 보수적인 성향을 띠고 있습니다. 하여 제가 교우님들께 소개하는 열린 신학을 위험하게 생각하고 받아들이지 않으려는 경향이 많습니다.
마치 아직도 많은 북한 주민들이 당국자들의 말만 믿고 열린 세계에 대해 듣기를 두려워하듯이, 우리 교우님들도 열린 신학을 두려워하고 있는 것입니다.


진실을 알기 위해서는 용기를 내어 “내가 지금까지 알고 있던 것이 혹시 잘못 알았던 건 아닐까?”라고 의심해 보아야 합니다.
만일 북한 주민들이 “내가 지금까지 듣고 알아왔던 것이 잘못된 것은 아닐까?”하고 의심하며 열린 세계에 대해 알고자 노력한다면 북한은 훨씬 빨리 열린사회로 진입할 수 있을 것이며, 우리 민족의 화해와 통일도 그만큼 가까워질 것입니다.


한국 교회 교우 여러분, 교우님들이 지금까지 알고 계셨던 신앙에 대해 의심해 주십시오.
우리의 신앙을 훼손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바른 신앙으로 하나님을 바로 알고 바로 섬기기 위해 의심해 달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의심하는 신앙을 싫어하신다.”는 생각이야말로 하나님께 큰 결례가 되는 것입니다. 우리 하나님을 그렇게 옹졸한 분으로 생각해서는 안됩니다.


생산적인 의심은 모든 분야에서 발전을 가져옵니다.
기존의 것을 의심하지 않고는 창조적인 발견도 발명도 불가능합니다.
하나님을 의심하라는 것이 아니라 교우님 자신을 의심해 달라는 것입니다.
우리의 신앙이 바로 서 있는지, 혹시 잘못 알고 있는 것은 아닌지 그것을 의심해달라는 것입니다.


세상이 많이 변하고 있습니다.
이제 우리 한국 교회도 변해야 합니다. 세상과 소통하고 아름다운 이웃문화, 이웃종교와도 어깨동무하며 동행할 수 있어야 합니다.
그 날이 속히 오기를 고대하며, 우리 하나님께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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