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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예수를 믿되 예수처럼 살지 않으려는 기독교인 
                                       
                                                                                                                        한인철    연세대 교목실장

‘역사적 예수 세미나’ 가 내게 준 가장 큰 영향은 나의 신학적 패러다임을 근본적으로 바꾸게 만들었다는 것이다. 지금까지 조직신학의 기본적인 패러다임은, 케리그마의 그리스도가 항상 상수
(常數)이고, 우리가 살고 있는 상황은 변수(變數)라고 생각을 했다. 그에 따라 변하지 않는 케리그마의 그리스도를 오늘의 한국 사람들에게 어떻게 여전히 그리스도가 될 수 있는지를 규명하는 것이 신학의 근본 과제였다.

그러나 '역사적 예수 세미나’의 결과물들을 읽으면서, 나의 생각이 자연스럽게 바뀌게 되었다. 신학에 있어 변하지 않는 상수는 역사적 예수이고, 시대에 따라 변하는 것은 케리그마의 그리스도라는 것이다. 이 말은 역사적 예수 연구 결과가 하나의 동일한 것이 되어야 한다는 뜻이 아니다.

그 연구 결과는 다양할 수 있지만, 역사적 예수라는 인물 자체는 항상 기독교 신학의 변하지 않는 상수가 되어야 한다는 말이다. 그리고 이 예수를 오늘의 시대 속에서 어떻게 소개하고 선포하고 고백하느냐 하는 것은 상황에 따라 달라질 수 있고, 달라져야만 한다는 것이다.

이렇게 볼 때, 우리가 알고 있는 이른바 ‘케리그마의 그리스도’는 역사적 예수에 대한 과거 한 때에 유의미했던 하나의 소개, 하나의 선포, 하나의 고백일 수 있을 것이다. 앞으로는 또 다른 케리그마 형태로 예수를 달리 선포할 수 있을 것이고, 이 가능성을 탐구하는 것이 바로 신학의 새로운 과제가 되어야 한다는 생각에 이른 것이다.


나는 케리그마의 그리스도에 기초를 둔 이른바 케리그마 신학은 니케아 신조에 그 뿌리를 두고 있고, 한국에서는 사영리(四靈理)라는 형태로 열매를 맺었다고 생각한다. 니케아 신조(기원후 327년)
는 예수를 하나님으로까지 높였고, 사영리는 하나님인 예수가 어떻게 인간을 구원했는지를 교리적으로 설명한다.

사영리는 원래 CCC에서 만들었지만, 오늘날 한국 교회 대부분에서 받아들이고 있다.

                                   사영리의 내용을 간단히 요약하면 이렇다:

하나님은 인간을 구원하기를 원한다.
그런데 인간은 죽어 마땅한 죄인이다.
그래서 하나님이 예수라는 인간이 되어 인간의 죄를 대신 지고 십자가에서 죽었다.
그러므로 인간은 예수를 믿어야 구원을 받는다.


한국에서 사영리로 구체화된 케리그마 신학은 나름대로 한국에서 공헌을 했다고 본다.
그것은 크게 두 가지로 요약된다.
 하나는 인간을 죄의식으로부터 해방했다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인간을 죽음의 공포로부터 해방했다는 것이다.

 사영리는 인간이 살아있는 동안에는 죄의식 때문에 생긴 불안에서 해방시켜주고, 죽어서는 내세신앙을 통해 죽음에 대한 공포를 극복하게 해준다. 실제로 한국갤럽조사연구소에서 1997년에 조사하고 1998년에 펴낸 『한국인의 종교와 종교의식』이라는 보고서에 보면, 한국 개신교인의 66.7%는 마음의 평안을 얻기 위해 교회에 나간다고 대답하고 있다.


그러나 다른 한편 사영리 중심의 케리그마 신학은 위의 큰 공헌에도 불구하고, 한국에서 교회 안팎으로 심각한 문제점들을 노출시키고 있다.
 
나는 ‘기독교의 이해’라는 이름으로 매학기 열리는 연세대학교 기독교개론 과목에서 학생들에게 기독교의 가장 큰 문제점이 무엇이냐고 물었던 적이 있다. 크게 두 가지를 지적했다.
하나는 배타주의이고,
다른 하나는 삶의 결핍이다.
 
나는 이 두 가지가 모두 사영리 중심의 케리그마 신학에서부터 비롯된다고 믿고 있다.

배타주의의 근원은 이 우주 안에 인간을 구원할 수 있는 분은 오직 예수 한 분뿐이라는 신앙에서 비롯되지만, 이러한 배타주의는 기독교인의 삶 전반 속에 깊이 스며들어 있다. 그래서 한국의 수많은 기독교인은 자기와 다른 것은, 그것이 무엇이든, 틀렸다고 생각하고, 틀린 것은 자기와 동일하게 만들거나, 여의치 않으면 배척하려 한다.


다른 하나는 삶의 결핍의 문제인데, 이는 보다 정확히 말하면, 기독교인들은 예수를 믿기는 하지만, 예수를 살려고 하지는 않는다는 것이다. 나는 이것이 기독교인에게 삶이 결핍된 가장 근원적인 이유이고, 이것이 바로 내가 역사적 예수에 관심을 기울이는 가장 중요한 이유이다.

달리 말하면, 사영리의 틀 속에 들어있는 예수를 믿게 되면, 예수가 살았던 것처럼 그렇게 살 수 있는 가능성이 원천적으로 막힌다는 것이다. 이 말은 어폐가 있는 듯 들리지만, 이것이 사영리 기독교의 비밀이다.

왜 사영리의 틀 속에 있는 예수를 믿게 되면 예수가 살았던 것처럼 그렇게 살 수 있는 가능성이 원천적으로 막힌다는 것인가?
여기에는 크게 세 가지 교리적인 이유가 있다고 생각한다.

첫째로, 예수는 하나님이기 때문에 하나님의 뜻에 맞는 삶을 살 수 있었지만, 인간은 완전히 타락한 죄인이기 때문에 그렇게 살 수 없다는 것이다. 예수가 예수의 삶을 살 수 있었던 것은 본질이 하나님이기 때문에 가능한 것이고, 우리는 태어나면서부터 원죄를 가진 죄인이라, 예수처럼 못 사는 것은 당연하다고 보는 것이다.

둘째로, 우리가 그렇게 못 살기 때문에, 하나님이 예수라는 인간이 되어 우리를 구원해 주려고 십자가를 지고 죽었고, 그 예수를 믿어 우리가 구원을 받았는데, 왜 이미 구원을 얻은 마당에 우리가 굳이 예수처럼 살아야 되느냐 하는 것이다. 우리가 오죽하면 예수를 믿겠느냐 하는 것이다.
 
마지막으로는, 죄인인 우리가 예수처럼 살려고 하는 것은 우리가 하나님이 될 수 있기라도 한 듯이 믿는 교만한 생각이고, 더 나아가서는 예수처럼 우리가 살려고 하는 것은 율법신앙에 해당된다는 것이다.
특히 바울은 구원은 믿음으로 얻는 것이지 행함으로 얻는 것이 아니라고 했는데, 예수처럼 살려는 것은 바로 행함으로 구원을 받으려고 하는 것과 같다는 것이다. 그래서 예수 믿고 구원 받았으면 그것으로 끝이지, 예수처럼 살려고 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물론 일반 기독교인이 지금 말한 이러한 세 가지 이유를 드러내놓고 말하지는 않는다. 그러나 적어도 내가 신학교에 들어간 1973년 이후 기독교 안에서 경험한 바에 따르면, 한국 안에 사영리를 따르는 대부분의 교인들은 바로 이러한 세 가지 이유에 근거해서, 예수는 믿되 예수를 살지는 않는 기현상을 보이고 있다.

그런데 기독교인이 예수처럼 살지 않는 데에는 이러한 세 가지 교리적인 이유 말고도 더 심각한 문제가 하나 있는데, 그것은 매우 인간적인 이유라고 할 수 있다.
설사 예수를 믿는다는 것은 예수를 믿고 그분이 가르치시고 앞서 살아내셨던 그 삶을 따라 사는 것이라는 점을 내가 받아들인다고 하더라도, 솔직히 예수처럼 살고 싶지는 않다고 하는 것이다.

예수처럼 살지 않고 세상의 생존 논리를 좇아 살아도 살아남기가 힘들고, 인생이 충분히 피곤하고 힘든데, 이 시대에 예수처럼 살라고 하는 말은 저주나 악담에 가깝다고 보는 것이다. 더러 거짓말도 하고 사기도 치고 부정부패도 저지르고 이렇게 하면서 살아도 생존하기가 힘든 판국에, 이 세상에 예수처럼 살라! 이것은 너무 힘들다.
 
이렇게까지 하면서 예수를 믿어야 한다?
솔직히 그것이 길이라 하더라도, 그 길은 가고 싶지 않은 길이다.

나는 이러한 인간적인 이유가 예수를 믿되 예수처럼 살지 않으려는 기독교인들의 근원적인 이유이고, 앞서 말한 세 가지 교리적인 이유들은 바로 이러한 인간적인 이유를 합리화하고 정당화하는 교리적인 빌미를 제공한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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