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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인수
2011.09.05 20:10

부전자전(父傳子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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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전자전(父傳子傳)



‘따르릉.......’ 울리는 전화를 20대 초반의 큰 아들이 받았다. “여보세요.” “응 난데. 오늘 오후에 시간 있으면........” “아, 잠시만요. 아빠 바꿔드릴게요.” 전화를 받으니 내가 잘 아는 분의 전화였다.


“아들 목소리가 아빠 목소리하고 완전히 똑 같네........”


“그거야, 제 아들이니까 제목소리를 닮는 것이 당연하겠죠.” 요즈음은 근년에 들어 훌쩍 커버린 둘째 녀석의 전화에서도 나의 목소리와 구별하지 못하는 지인들이 많다. 여자분 중에는 내가 전화를 받으면 “응, 엄마 바꿔줘.......”라고 해서 당황스러울 때도 자주 있다. 나만 아니고 누구나가 한 두 번 쯤 겪어 본 일일 것이다.


그렇다. 자녀가 자라 성인이 되어 가면서 부모의 목소리를 많이 닮는다. 자녀가 성장하면서 부모를 닮아가는 것은 무엇들일까? 생물학적으로 볼 때 유전인자가 닮을 것은 당연하므로, 외형적인 신체도 닮을 것이고, 얼굴모습도 닮을 것이고, 질병인자도 닮을 것이다. 그래서 부모와 자식 간에는 신체, 성격, 언어, 습관, 얼굴생김새, 수명, 질병........ 등에서, 부전자전이라는 말은 아주 자연스런 것이다. ‘자연적’이라는 말은 천성적이라는 말이고, 그것은 곧 태생적이라는 말과도 통한다.


‘부모와 자식의 관계는 하늘이 정해준 것이라, 천지지간에서 벗어나래야 벗어날 수 없다(父子命也, 無所逃於天地之間)’라고 고대중국의 철학자 장자(莊子)가 말했다. 하늘로부터 타고난 명(命)은 바꿀 수가 없다는 것이 고대 동양인들의 일반적인 관념이었다. 사주명리에서도 명(命)은 불가변하지만, 운(運)은 자기가 마음먹고 생각하고 행동하기에 따라 바꿀 수가 있다고 한다.


물론 부모자식간이라 해도 안 닮은 경우도 있어서 ‘다리 밑에서 주워왔느니’ 라는 말을 하는 경우도 종종 있다. 나의 목소리를 빼닮았다는 큰 아들도 어릴 적 성장기에는 나를 안 닮아서 사사건건 의견이 대립하고 충돌하여, 중간에서 부자지간을 중재하느라 아내가 애를 먹는 경우가 많았다. 이 경우에 아내는 일방적으로 자식의 편을 들어주는 경우가 대부분이었고, 아버지는 자식이 성장하는 과정에서 점차로 외로워져 가는 것임을 티비 다큐멘터리 ‘동물의 세계’에서 이미 몇 번 본 터라, 비록 동물세계의 ‘늙은 수컷사자’ 일이지만 남의 일 같지 않다는 생각이 들었는데, 이게 점점 내 인생과정에도 들어맞는 것 같아 슬프다.


자식이 성장하여 점점 어른이 되어가면서 부모를 닮는 과정을, 비록 자세히는 아니지만 그래도 신경을 쓰고 주위를 관찰해본 바에 의하면, 목소리를 제일 먼저 닮고, 얼굴모습에서 심지어 걸음걸이도 닮는 것이다. 한국인이 많이 모이는 장소에서 어떤 아이가 걸어가는데 뒷모습이 너무도 내가 아는 누구를 닮아 있었다. 앞모습을 보니 역시 내가 걸음걸이에서 연상한 잘 아는 사람의 자식이 아닌가. 아들이 아닌 딸인데도 영판 아버지 걸음걸이 그대로였다. 성격, 신체, 얼굴, 음식성향, 목소리에서 부터 닮을게 없으면 하다못해 발가락까지도 자식은 부모를 닮게 되어 있는 것이다.


자식은 부모의 무엇을 가장 많이 닮을까? 이 질문에 대한 대답은 여러 가지 이겠지만, 나에게 묻는다면, 20대에서는 목소리, 30대가 되면 걸음걸이, 40이 넘게 되면 성격이라고 나는 대답할 것이다. 50이 넘으면 그동안 자기가 살아온 바에 따라, 자아인격도 형성되고 사회적 경험도 축적되어 나름대로 행위패턴이 형성되어 있을 것이지만, 가만히 보면 역시 부모로부터 물려받은 유전적 인자가 중요하고, 성격은 그 중 가장 큰 것이 아닌가 생각된다. 50이 넘으면 더 이상 새로이 형성될 것도 별로 없이 이제까지 만들어진 성격대로 살아간다. 목소리와 걸음걸이는 그다지 별로 중요하지 않지만, 성격은 사회생활을 하는데 대인관계에서 아주 중요하다. 성격이 안 좋으면 일단 좋은 친구를 많이 사귀기가 어렵고 나아가서 출세하기가 어렵다.


‘사람이 태어날 때 하늘로부터 품부(稟賦)되는 것을 본성’(天命之謂性)이라고 하고, ‘천성에 따라 성품을 잘 키우는 것을 도’(率性之爲道)라 하고, ‘부단한 계발로 인간의 도리를 닦아나가는 것을 교육’(修道之謂敎)이라고 동양고전 중용(中庸)에서는 말하고 있다. 타고난 본성보다는 후천적 교육이 인격형성에 중요함을 역설한다. 그래서 성선설을 주장하는 맹자나 성악설을 주장한 순자도 공통적으로 ‘사람은 누구나 다 성인이 될 수 있다’(人皆可以爲堯舜)라든가, ‘길거리의 아무개도 모두 우임금이 될 수 있다(途之人可以爲禹)’라고 말 한 바 있다. 이 말은 후천적 성취에 따라 사람은 모두 완전한 인격체가 될 수 있다는 말이다. 타고난 바탕이야 선하든 악하던 관계없이 후천적으로 가꾸기 나름이라는 말이다.


어떻게 가꾸어야 할 것인가? 이 점에서 기독교 신앙인이라면 기독교에 뿌리가 깊은 청교도적인 경건주의 신앙을 되돌아보면 좋을 것이고, 동양에서는 중용의 신독(愼獨) 사상을 생각해 보아도 좋을 것이다. 사람은 누구나 남의 이목이 있는 곳에서는 조심하기 마련이지만, 남이 보지 않는 곳에서는 자만하여 행동이 개차반이 될 수도 있다. 경건주의나 신독사상이나 모두 남의 이목이 없더라도 혼자 있을 때에 더욱 가다듬어야할 태도를 잘 밝혀 일깨워 준다.


후천적인 반복훈련에 의해 성격이 습관화되면 제2의 천성이 된다. 습관이 자연이 된다.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저절로 그렇게 되는 것’이 바로 자연(自然)이다. 그래서 중용(中庸)에서는 ‘남의 눈에 보이지 않은 바를 삼가하고(戒愼乎其所不睹), 귀에 들리지 않는 바를 조심하고 두려워한다(恐懼乎其所不聞)’ 라고 하였다. 왜냐하면 천성이 되어버린 습관은 ‘숨기려고 해도 숨어있지 않고 드러나며’(莫見乎隱) ‘미미한 것이라 할지라도 두드러지게 되는 것(莫顯乎微)’인데 이것이 바로 본인의 성격이 된다.


홀로 있을 때라 하더라도 남의 이목이 나에게 집중되고 있는 것같이 행동하라는 것이 신독이다. ‘강산은 바꿀 수 있어도, 본성은 바꾸기가 어렵다(江山易改, 本性難移)는 속담을 중국인들은 만들어 냈다. 타고난 본성을 잘 가꾸어야 한다는 말일 것이다.


그래서 나이 40이 넘은 사람이 하는 행동과 성격을 보면, 생전에 그의 부모를 알지 못했다하더라도 돌아가신 그의 부모를 알 수 있는 것이다. 옛말에도 지엽을 보고 근본을 헤아린다 했고, 성경에서도 ‘열매를 보면 나무를 안다’(마태 7, 20)고 했다. 자식을 낳아 기르는 사람들에게는 실로 무서운 말이 아닐 수 없다.
 

성격이란 세대를 거쳐 자식에게 전해지고 ‘부전자전’의 인자는 유구하게 후손에로 이어져 나갈 것이다. 어릴 때는 성격적으로 나를 전혀 닮지 않은 것 같던 자식이 대학을 들어가고 나이가 들수록 행동하는 점이 점점 나를 닮아간다. 대쪽 같은 성격도 그렇고, 매사에 융통성 있게 대처하지 못하는 것도 그렇고, 저 녀석의 인생이 앞으로 어떻게 되려나....... 생각하면 지금부터 걱정이 앞선다.


자, 그러면 이제 나의 자식을 위해 우리가 어떻게 해야 할 것인지 자명해진다. 잘못된 것은 오늘부터라도 당장 고쳐 나가도록 해야 할 것이다. 자녀가 커 가면서 부모를 보고 배운다는 것을 명심하고 지금부터라도 생각과 행동 하나하나에 신경을 써야 할 것이다. 그러고 보니 자녀가 어릴 때 보다 더 사려깊이 신경을 기울이지 못한 것이 하나 둘이 아니다. 지나간 과거를 되돌아보면 후회스러운 것이 많지만 지금부터라도 고쳐 나가야 하겠다. 어린자녀를 키우는 부모들은 마음으로 한번쯤 새겨 보아야 할 것이다. 인생의 가치는 어릴 적부터 형성되고 부모는 자녀의 첫 번째 스승임을 명심해야 할 것이다. 부전자전의 유전은 인류역사가 지속되는 한 계속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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