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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인수
2011.09.22 19:13

‘후천성 배앓이 증후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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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천성 배앓이 증후군’



우선 이 병은 아시아 인종, 그 중에서도 특히 중국인과 한국인에게 많이 퍼져 있지만 일본인에게는 증상을 극히 찾아볼 수 없다고 한다. 그래서 의사들도 이 병의 병명을 어떻게 불러야할지 왈가왈부하고 있는 중이다. 그러나 중국인의 경우 지금 이 병을 앓고 있는 환자는 그리 많지 않다. 중국인들도 과거에는 이 병의 중증환자였지만 그 원인을 찾아내 고치는데 장장 140여 년(1840-1979)의 장구한 세월이 흘렀다.


전염병 같기도 하고 전염병이 아닌 것 같기도 하고, 세균성 바이러스에 의한 것 같기도 하다가 아닌 것 같기도 하고, 구체적으로 무슨 바이러스 인지 규명할 수가 없으니 의사들로서도 골머리를 싸매고 답답해 할 노릇이다.


중국인의 경우 서유럽 전체를 합친 것 보다 더 넓은, 세계에서 제일 큰 땅덩어리를 가지고 전쟁에서 한 번도 패한 적이 없던 나라였는데, 그만 아편전쟁(1840-1842)에서 섬나라 영국에 대패하여 홍콩을 빼앗기고 나서부터 전국적으로 확 퍼졌던 병이다. 20세기 초중반에 모택동이라는 명의가 나타나 고치려고 했으나 의사의 주관적 판단으로 인해 환자의 증세를 오진하는 바람에 환자를 고치지도 못하고 바이러스가 전국적으로 퍼졌다.


그가 사망(1976)한 후, 또 한 사람 명의가 나타나서 오늘에 이르기까지 가까스로 이 병을 고쳤다. ‘장병(長病)에는 구약(久藥)이라’는 말이 실감나게 하는 그 명의의 이름을 사람들은 화타(華陀)도 아니고, 편작(扁鵲)도 아니요, ‘동아병부(東亞病夫)’ 또는 ‘종이호랑이(紙老虎)’라고 서양인들로부터 줄창 놀림을 받던 중국호(中國號) 선박의 방향타를 잡은 등소평(鄧小平) 이라는 ‘오뚝이 영감’(不倒翁) 이었다.


근세 이래로 지도자 복(福)이라고는 지지리도 없는 한국에서도 한때 이 병을 고치는 명의가 나타났으나 의과대학을 나왔느니 아니니, 의사자격증이 있느니 없느니, 사이비 의사니 아니니 온갖 소리 온갖 욕 다먹어가면서, 송곳 끝을 연상케 하는 집중된 눈썹미간 심볼을 하고 18년 간 행의(行醫) 하여 병자의 몸이 어느 정도 회복단계에 접어드는 시점에서 조수로 부리던 한 수하가 그만 배신하는 바람에 명의는 비명횡사 하고 말았다. 그 후로 ‘이 병 고치는 일는 내가 최고의 명의니라’ 하고 나타난 몇몇 의사가 있었지만 지나놓고 보니 모두가 돌팔이였음이 드러났다.


아참, 마음이 급해서 거두절미하고 말하느라 내가 이 병의 증상에 대하여 먼저 얘기하는 것을 잊었다. 사람이 이 병에 걸리게 되면 겉으로 보기에는 멀쩡하다. 초기 증세는 감기와 비슷하여 바이러스를 찾지 못하기는 매일반이고, 간혹 기침을 하기도 하고 미열이 나기도 하지만 그 정도로 생명에 지장을 주지는 않는다. 주장 배앓이가 심한데 가끔씩 배알이 하다가 심하게 도져 위로 치밀어 오르고, 가슴이 답답해지다가 전신으로 퍼지면 숨이 가빠서 죽을 지경에 이르기도 하는데 이때가 가장 큰 고비이다. 그럴 때면 옆 사람조차 기운을 다 빠지게 하는 특징이 있다.


환자의 행동으로는 일단 바이러스가 침투하면 시각장애를 일으켜 사물이 ‘삐딱하게’ 보이는 증상이 나타난다. 분명 똑바로 서있는 물건이 기울게 서있는 것처럼 보이고, 둥근 물건이 모나게 보이기도 한다. 그 다음 외형증상으로는 언어장애를 일으켜 입에서 나오는 말이 어눌해진다. 그래서 입을 통해 나오는 것이 말인지 소리인지 구분하기 힘들고, 소리(phonetic)만 있고 의미(semantic)가 없는, 즉 개념이 있는 언어(language)인지 아닌지를 구분하지 못하는 현상이 나타나서, 사람의 소리인지 짐승의 소리인지 신경을 쓰고 듣지 않으면 구분하기가 힘이 든다. 그래서 어른에게 ‘해라체’를 쓰고 자식에게 존대어를 쓰거나, 물건이나 짐승에게 ‘하시고체나’ ‘께서’라고 존칭어를 쓰는 경우도 있다.


이런 중증환자가 가끔 컴퓨터 앞에 앉아 자판기를 두드릴 때면 남의 글에 주어· 동사· 목적어도 구분하지 못하고, 자신이 글을 쓸 때면 낱말이 형용사인지 명사인지도 구분 못하다보니 일단 저속한 비어로 시작하는 댓글이나 시궁창 글만 쓸 수밖에 없는 것이다.


이 병을 그대로 방치하면 치사율이 29.99%에 이르는 무서운 병이라고 하는데, 30%가 넘으면 의학적으로 불치병으로 분류된다고 하니 조기진단과 치료가 매우 중요한 병임에는 틀림이 없고, 계속 방치하면 집단폐사 할 가능성마저도 보인다.


이 병이 같은 아시안 중에서도 일본인은 선천적으로 거의 걸리지 않고, 중국인은 전에 지독하게 걸렸다가 거의 치료하여 이제는 몸에 면역성 항체가 생겨 별문제가 없다고 한다. 그러나 어쩐 일인지 유독 한국인에게만 고질적으로 치료되지 않고, 정보화시대의 문명의 이기를 타고 바이러스가 오히려 극성을 부려 확산되는 현상이므로 병명도 붙이기가 쉽지 않고, 선천성인지 후천성인지도 분명하게 구별하기 힘이 든다.


예전에는 한국에만 있는 지역적 풍토병인 것 같기도 했지만, 한국인이 세계도처에 골고루 퍼져 사는 지금 어디가나 퍼진다니, 조국을 잃은 20세기 초 태평양상의 절해고도 미국 땅 하와이에서도 이승만과 박용만이 이 병에 걸려 집단으로 나눠 싸운 이래 그 후유증이 아직도 남아있다. 역시 나라를 잃고 헤매던 중국 땅에 망명하면서 ‘대한민국임시정부’라는 병원 안에서 병을 치료해야할 의사들끼리 민족주의계열이니 사회주의계열이니 하며 8개 파로 나눠 싸운 결과, 퇴원한 후 환자의 몸을 기어코 두 동강으로 양단 내어 버렸다. 가깝게는 이웃한 호주(오스트레일리아)에서도 한국인들끼리 ‘구포’니 ‘신포’니 하면서 나뉘어 물과 기름처럼 섞이지 못하고 반목한다는 말이 들린다.


뉴질랜드에서도 이 병을 피할 수 없이 한국인 이민이 급증하던 1990년대 중반, 뉴질랜드에서 한인2세 교육의 모토를 내걸고 한국학교 창설당시, 개인적 사심으로 인해 교장선출 투표를 두 번이나 하고도 결국 한국학교가 쪼개진 역사를 알고 있는 교민이 아직도 수두룩 눈을 뜨고 있다. 첫 투표에서 패한 측에서 절차상의 문제를 제기하여 승복할 수 없다고 물고 늘어지는 바람에 두 번째 투표를 하였고, 두 번째 투표도 패하자 결국 분열해서 나가지 않았던가! 한국학교와 한민족학교가 그렇게 갈라서지 않았던가.


학교가 나뉜 그 자체를 말하자는 것이 아니다. 어차피 오클랜드 지역이 넓으니까 배우는 장소는 분산되어야 하겠지만, 당시 고국의 오클랜드 병원 ‘파견의’ 이셨던 김상훈(오클랜드 분관 초대 총영사로 이제는 고인이 되신)님과 양식이 있는 교민들에게 아직도 여한으로 남은 일이 아닌가. 어떻게 하던 분열하지 말고 하나로 합쳐 기금을 마련하여 부지를 정하면 한국정부에 요청해서 총영사임기 내에 학교건물을 짓게 하겠노라고 교민에게 호소하시던 그 말씀.......


땅값도 지금보다 훨씬 헐하던 그때 당사자들이 ‘대아를 위하여 소아를 버리는’ 선택을 했더라면 한인회장이 11대에 이른 지금, 한인회관 문제로 이렇게 소란을 피우지 않아도 되었을 것이고 지금쯤은 오클랜드뿐만 아니라 뉴질랜드 전국에 한인들이 사는 큰 도시에 ‘코리안가든’을 몇 개나 세우지 않았을까? 아둔한 나머지 그렇게 하지 못한 결과, 지금 학교는 학교대로 힘들고, 한인회는 한인회대로 힘들고........ 우리는 왜 이럴까? 왜 이렇게 밖에 할 수 없는가? 우리의 의식수준이 과연 이 정도 밖에는 안 되는가?


만연하는 한국인의 고질병을 고치기 위해 의료기술이 21세기 목하(目下) 세계최고라고 자타가 공인하는 대한민국 장안의 내노라하는 양의사 한의사들이 제각각 역학조사를 하고, 발병지역 환자를 격리하고, 표본을 추출하고, 샘플을 만들고, 임상실험을 하고, 별별 일 다 해보지만 현재로서는 양방 한방 불문하고 별 뾰족한 수가 없다는데 문제의 심각성이 있다.


이 증세의 병리현상으로는 환자개인에게 우선 정신적· 육체적으로 무기력증이 나타난다. 집단적 현상으로는 사회적 비관주의, 소극주의, 해보지도 않고 무조건 ‘안된다주의‘와, 타인이 하는 일에는 냉소적이고, 비판적이고, 무슨 일이든지 남이 잘 하면 배를 아파하다가, 약점을 찾아 도베르만 견(犬)처럼 물고 늘어져 방해하거나, 남이하면 안되고 무조건 내가 해야 된다는 지독한 자기 아집증이 나타나는, 그래야만 직성이 풀리는 병으로 ’사이코쎄라피(심리적 동반치료)‘를 요하는 중증이라고 본다.


자라나는 후세들을 위하여 계속 이렇게 할 수는 없다는 각오로 이제 뜻있는 이들이 합심하여 원인을 찾아 병명을 붙이고자 노력하여, 차마 남들이 알까 부끄럽지만 한국인에 만연한 ‘후천성 집단배앓이 증후군’(Achieved Collective Tummy-ache Syndrome)으로 일단 명명하는데, 이것은 ‘사촌이 논사면 배가 아프다’라는 하루속히 버려야 할 한국 속담에서 유래한 유전인자에서 연유한 까닭이기도 하다. 이제 병명이 밝혀졌고 증세가 분명하므로 고치기는 시간문제이다. 우리 모두 그 바이러스 퇴치에 함께 힘을 보태기를 간구(懇求)하는 바이다.


길거리에서나, 골프장에서나, 산에서나, 바닷가에서나 마주치는 한국인들은 모두 착하고, 점잖고, 똑똑한데 엄폐성과 익명성이 보장되기만 하면 도진다는 점을 경계해야 한다. 똑똑하다보니 세계 어디가도 혼자서 잘 살아갈 수 있지만, 모래알처럼 쉬 잘 흩어져 뭉치지 못하는 취약성이 있다. 개인적으로는 일본인 보다 우수한 한국인들이 모이기만 하면 매번 일본인들한테 뒤쳐지는 이유가 그 때문이다.


본인은 직업이 의사가 아니지만, 평소 한국인의 집단적 사회병리학(social pathology) 적인 현상에 관심이 많은 오클랜드에 사는 오박자(奧朴子)라는 필명을 쓰는 한 포의(布衣)일 뿐이다. 나의 별호에는 숨은 뜻이 있기도 하지만, ‘인생의 박자를 잘못짚은(誤拍子)’ 얼간이로도 통하는 자호이기도 하다. 혹 갈홍(葛洪)의 저술 <포박자(抱朴子)>를 떠올리는 유식하신 독자도 계실 것이다.


세상살이에 리듬박자를 잘 맞추지 못하는 내가 어느 날 무릎을 탁 치는 일이 있었다. 양방과 한방의 심리학을 통해 한국인 특유의 증세와 유사한 증후군을 찾기 위해 책을 뒤지다가, 19세기 말 어느 중국인이 쓴 약방문(藥房文)을 발견하였다. 천하에 병이 있으면 고치는 약도 반드시 있게 마련이라 했다.


그 약방문은 19세기말 일본으로 유학가서 의학을 공부하던 도중, 당시 중국인들의 망국적인 집단적 증후를 어떻게 고칠까 고민하던 의과대학생 출신 루쉰(魯迅)이라는 중국인이 쓴 것이었다. 그는 당시 중국인들이 지독하게 걸린 집단적 무기력증과 소아병적인 증후군을 고치기 위하여 일본유학을 때려치우고, 중국으로 돌아와 평생 집필에 전념하였다. 그는 ‘아큐정전(阿Q正傳)’ ‘광인일기(狂人日記)’등과 같은 많은 작품을 써서 ‘돼지우리 속에서 뒹굴고 있던’ 중국인들의 보편적 심리저변에 잠복한 무기력증과 패배주의 심리에 메스를 댄 작가였다.


현재 중국 상하이에는 그의 이름을 딴 공원이 있다. 1932년 4월 29일, 매헌(梅軒) 윤봉길 의사의 쾌거로 일본의 조선· 만주 침략의 원흉이자 상하이 침략의 주범을 현장에서 폭사시킴으로서, 당시 일제의 압제하에 신음하던 한국인뿐만 아니라 모든 중국인들의 폐부를 시원하게 한 의거장소인 상하이의 홍구공원(虹口公園)이 지금은 ‘루쉰공원(魯迅公園)’으로 불린다. 그의 ‘분필(憤筆)’의 힘으로 말미암아 4억 중국인들이 마음속의 병을 자각하기 시작하였던 것이다.


나는 루쉰의 발가락에조차도 비교할 수 없는 사람이지만, 루쉰의 작품에 나오는 ‘남의 산 돌(他山之石)’ 처방전을 빌려서라도 한국인들의 마음속에 남아있는 소극적 냉소주의, 무익한 방해주의, 건전한 비판이 아닌 패배적 비판주의, 뭉쳐야 할 때 뭉칠 줄 모르는 패거리 분열주의, 남의 좋은 점을 좋게 보아줄 줄 모르고 허물을 찾아내 헐뜯기 좋아하는 소아병적 증후군이 꼭 고쳐져서, 고국을 떠나 해외에서 생존해 나아갈 후세들에게 더 이상 추한 모습으로 전해지지 않기를 바란다.


그리하여 우리의 후세들은 밝고 건전한 마음으로 우리 한민족의 우수한 정신적 전통을 이어받아 웅지를 품은 젊은이로 세계 방방곡곡에서 개인적으로나 국가적으로 밝은 미래를 개척해 나가기를 바라마지 않는다. 자랑할 것은 못 되지만 전 세계 한인사회에서 ‘가방끈이 가장 긴’ 교양있는 한국인들이 모여 산다는 뉴질랜드에서 한국적 고질병이 완전히 퇴치되기를 간절히 바란다.


박 인 수

(2011. 9.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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