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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12.23 23:05

학이시습지(學而時習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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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이시습지(學而時習之)

<논어(論語)>의 첫 편, 첫 머리에 ‘학이시습지 불역열호!(學而時習之, 不亦說乎!)’란 구절이 나오는 것을 모르는 이는 없을 것이다. 일반적인 해석은 ‘배우고 때때로 익히면 또한 즐겁지 아니한가!’라는 말이다. 공자가 제자들에게 배움을 게을리 하지 말고, 또한 배운 바에서 그치지 말고, 시간이 나면 자주 몸소 익히고 실천할 것을 강조한 말이다. 또한 그런 생활가운데 즐거움이 있음을 깨달아야 함을 이른 말이다. 우리 인생은 삶을 다할 때까지 배움의 연속이고, 배운 바를 반복하여 실천하는 과정이다.


‘학습’이란 단어는 한자(중국어)에서 ‘동사 +목적어’의 구조이므로 ‘습’(習)한 바를 ‘학’(學)하는 것으로 해석해야 한다. 습(習)이라는 글자를 살펴보면, 병아리 몸에서 깃(羽)이 돋아나는 모습을 하고 있다. 이것은 병아리가 알에서 깨어나 날개가 돋아나고 날개 짓을 하는 동작에서 유래한다고 <설문해자(說文解字)>에서는 풀이한다.


하늘을 나는 새라고 해서 태어나자마자 바로 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수많은 동작을 반복하여 되풀이하고 난 후에야 가능한 일이다. 처음 병아리가 알에서 깨어나 자라면서 점차 양 날개가 나오고, 깃털이 자라서 성장한 후, 날개 짓을 하기 시작하여 공기의 부력을 모아 하늘을 날 수 있게 되는 과정은 한 두 번이 아닌, 수 백 수 천만 번의 연습을 필요로 한 후에야 비로소 가능한 일이다.


그래서 아무리 높고 빠르게 하늘을 잘 나는 새라도 태어나서 나는 것을 배워 연습을 하지 않고서는 날 수가 없다. 독수리 새끼라도 나는 연습을 하다가 떨어질 수가 있고, 떨어져 다른 짐승의 먹이가 될 수도 있다. 그래서 ‘독수리도 나는 법을 배워야만 한다.’(鷹乃學習) 라는 말이 있다.


지금으로부터 약 2천 5백 년 전, 공자(孔子) 당시는 아직 종이가 없었고 글씨를 써서 전달하는 서물(書物)이 귀중하던 시대였으며, 배움은 일반에게 보급되어 있지도 않았다. ‘학이시습지 불역열호........’에서 공자는 학문을 배우는 것이 힘들고 대단한 노력이 필요한 것임을 일깨운 것이다. 반복하여 배우고 배운 바를 익히는 가운데 즐거움이 그 안에 있음을 깨닫게 된다면 또한 기쁘지 아니한가.


그런데 새로운 무엇인가를 배운다는 것은 힘들고 고생스런 것이지 그것을 어떻게 기쁘게 여길 수 있을까? 흔히 타고난 좋은 머리는 열심히 하는 것만 못하고, 열심히 하는 것은 즐기는 것만 못하다고 말한다. 즐길 수 있을 정도로 배움을 행할 수 있다면 그건 더 이상 고생이 아니라 낙(樂)일 것이다. 어차피 인생은 희·노·애·낙의 연속적인 반복일진데, 이왕이면 고생을 고생으로만 생각하지 말고 낙으로 바꿀 수 있는 것이라면 바꾸는 편이 좋다.


개인의 유한한 생애에서 노여움과 슬픔은 자주 연속이 되면 안 되겠지만, 희와 낙은 자주 연속될수록 좋은 것이다. 희는 마음속의 희열(喜悅)을 말함이고, 낙은 육체적인 쾌락(快樂)이다. 희는 꼭 밖으로 드러나지 않아도 좋지만, 낙은 밖으로 드러나도 괜찮다. 누구나 오랫동안 소망하던 바를 이루거나, 자식이 대학에 수석으로 합격하거나, 대학을 졸업하고 원하는 직장에 들어가거나, 자녀가 성장하여 알맞은 짝을 얻어 가정을 이루거나, 부모형제가 건강하게 장수하고 가족이 화목하면 대단한 기쁨이다.


희는 마음속의 기쁨으로 영어의 'Pleasure'에 해당하고, 낙은 영어의 ‘Entertainment'에 해당하며, 우리 몸이 느끼는 기쁨이다. 우리 몸이 느끼는 기쁨이라고 해서 엔터테인먼트는 휘황찬란하게 차려놓고 미인을 옆에 앉혀두고 먹고 마시고 흔들고 하는 것만이 아니다.


공자의 ‘학이시습지 불역열호’ 라는 코멘트는 어디까지나 배움을 즐기는 단계로 끌어올려 일생동안 갈고 나갈 기쁨으로 제자들에게, 모르는 것을 배워 하나씩 깨우쳐 나가면서 습관이 되도록 반복하는데서 인생의 즐거움을 찾아야 한다는 규범적인 명제이다. 공자가 제자들에게 일생을 통하여 잠시도 게을리 하지 말고 배우고 익히라는 것은 ‘시·서·예·악’ 등 고전(6예) 이었다.


다른 한편으로, 중국고전이나 그리스로마 고전 등은 고리타분하여 싫다고 여기는 기독교 신앙을 가지는 사람이라면 신앙생활의 바탕이 되는 성경을 떠나서는 일생의 기쁨을 말하기 어렵다. 성경을 자주 접하고 성경말씀대로 살아가는 과정이 성경공부를 통해 하나의 기쁨으로 느껴져야 되는 것이다. 성경구절도 한번 읽고 마는 것이 아니다. 읽고 또 읽고, 마음에 와 닿는 구절은 반복하여 읽고, 읽은 바를 생활가운에서 묵상하고 그러는 가운데 신앙심은 흔들림이 없이 지속될 것이다.


‘주 날개 밑 나의 즐거움 있네. 내 거기서 살기를 바라노라.’하는 성가 가사처럼 그런 생활이 일생동안 지속되면 좋은 것이다. 그러한 태도가 바로 공자가 말한 ‘학이시습지, 불역열호’의 올바른 이해가 된다. 배우고 익히는 것이 몸에 베인 것을 생활 속에 습관화함으로써 즐거움을 느낄 수 있어야 한다.


인생은 흔히들 괴로움의 연속이라고 말한다. 석가모니는 인생을 고해(苦海)라고 설파하였다. 공자도 인생을 괴로움이라고 보았고, 구약에서도 인생은 고역이라고 말한다. “인생은 땅위에서 고역이요, 그 나날은 날품팔이의 나날과 같지 않은가. 그늘을 애타게 바라는 종, 삯을 고대하는 품팔이꾼과 같지 않은가?”(욥기7, 1-2)


사실 우리 인생은 기쁨과 즐거움 보다 슬픔과 괴로움이 더 많이 차지한다. 그렇다면 인생에 즐거움을 가져다 줄 수 있는 것은 없을까? 즐거움은 하늘에서 거저 주어지는 것이 아니다. 스스로 찾아야 한다. 이왕이면 인생은 괴로운 것보다는 즐거운 것이 되어야 하고, 나날이 고행 속에서라도 쉼 없이 배우고 익힘의 연속에서 ‘즐거움은 그 가운데 있는 것’(樂在其中矣)임을 발견해야 한다.


어느덧 또 한해가 다 가고 새로운 한 해를 맞이할 시기가 되었다. 세월의 흐름은 강물과 같아서 잠시도 멈추지 않는다. 공자는 강가에서 흘러가는 강물을 보고 ‘간다는 것이 바로 이와 같음이랴!(逝者如斯呼!)........’ 라고 인생을 비유하였다.


어떻게 갈 것인가? 강물은 깊은 데서는 고요하고 잠잠하게 흐르다가도 돌부리를 만나면 소리를 내기도 하고, 웅덩이를 만나면 웅덩이를 다 채워주고 난 다음에 흐르며, 섬이 가로막으면 돌아가기도 한다. 강물은 여하튼 ‘감’을 멈추지 않는다는 점에서 우리 인생과 닮은 점이 있다. 노자(老子)도 ‘인생살이 지혜는 물과 같아야 한다(上善若水)’ 라고 설파하였다.


흐르는 강물은 우리들 눈에 보이지 않는 시간의 흐름을 시각적으로 보여주는 것이다. 흘러가는 강물에서 인생의 흐름을 보고 삶의 깨달음을 새기는 현자의 지혜에서 우리도 새해에는 더욱 더 ‘잘 가는 법(善逝)’을 깨달았으면 좋겠다.


박 인 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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