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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일수
2015.01.15 15:47

이 찬란한 을미의 아침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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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오테아로아의 꿈 (14)

이 찬란한 을미의 아침에

양은 서두르지 않고 꾸준히 자기 직분을 수행하여

인간에게 털과 가죽과 고기를 제공한다. 을미년

양의 해에 ……

“인생은 문틈으로 백마가 지나가는 것을 보는 것 같이 짧다(人生如白馬過隙)”라고 어느 시인은 말했다. 과연 그렇다. 뉴질랜드에 와서 현지 생활에 취미를 붙이면서 이제 남은 인생이 너무 짧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짧은 인생을 허튼 일로 고민하고 다투기에는 너무 너무 시간이 아깝다.

“인생은 생각하는 이에게는 희극, 느끼는 자에게는 비극, 행동하는 자에게는 하나의 발견이요 자기창조이다”라고 월폴(Walpole)은 말했다. 희극적인 인생을 살 것인가, 비극적인 인생을 살 것인가, 창조적인 인생을 살 것인가는 개인의 자유의지에 달려 있다고 본다. 물론 천재지변이나 개인이 처한 국가 사회의 운명, 숙명적인 처지에 따라서 개인이 자기의 인생을 선택할 수 없는 경우도 있기는 하다.

뉴질랜드에서는 어떤가? 상당한 부문에서 개인의 의지에 따른 인생의 선택이 가능하다고 본다. 천재지변이나 외부로부터의 침략 위험, 민족 간의 분쟁이나 갈등, 종교 분쟁 같은 개인이 통제할 수 없는 국가 사회적인 요소가 거의 없기 때문이다. 여기에 깨끗한 자연과 합리적인 국가 사회 제도는 기본적으로 삶의 질을 보장해주고 있다.

뉴질랜드에 처음 오는 외국인들은 누구나 놀랄 일이 있다. 어쩌면 전국의 산과 들이 잔디밭으로 뒤덮여 있을 까? 그리고 그 넓은 잔디밭 풀이 어떻게 평탄하게 잘 모우잉(Mowing)이 되어 있을까? 이다. 뉴질랜드에 와서 처음 7월 휴가철을 맞아 뉴질랜드 북쪽 끝인 케이프 레잉아(Cape Rainga)까지 여행 한 일이 있었는데 그 때처럼 뉴질랜드의 자연에 매료된 적이 없다. 전국이 한 폭의 그림이었다. 겨울철이니 풀밭은 얼마나 푸르던가? 초록의 카펫을 대지 위에 깔아놨더라도 그렇게 푸르고 생동감이 넘치지는 못했으리라. 마치 저쪽에서 목동들의 피리 소리가 들려오는 듯하였다.

뉴질랜드의 목초지가 태초부터 푸르게 조성되어 있었던 것은 아니다. 가시덤불과 돌멩이로 덥힌 황무지를 지금의 목초지로 바꾸는데 이민 선조들의 피눈물 나는 노력과 희생이 낳은 결과이다. 그들은 잡목과 잡초로 뒤덮힌 황무지에 불을 지르고 땅을 고르게 조성한 후 목초를 재배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양과 소를 방목하여 길러왔다. 뉴질랜드의 기후는 가축을 움막도 필요 없이 관리할 수 있었다. 가축들은 비가 오면 비를 맞고 새끼를 배고 스스로 다시 풀밭에서 새끼를 낳으며 이빨로 탯줄을 끊어 키운다. 가축의 배설물은 빗물에 의해 분해되고 분해된 배설물은 자연스럽게 천연 거름이 되어 목초를 잘 자라게 한다. 구제역(口蹄疫, Foot-and-mouth disease)이니 광우병(狂牛病, BSE- Bovine Sponge-form Encephalopathy)이니 하는 북반구 가축들의 병이 존재할 이유가 없다.

금년 2015년은 을미년(乙未年) 양(羊)의 해이다. 양은 뉴질랜드를 상징하고 평화를 상징한다. 들에서 한가로이 풀을 뜯고 있는 양떼를 보고 인간 사회에서 저질러지고 있는 전쟁이나 갈등, 탐욕과 분노, 집착이나 욕심 등을 떠올리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대신 평화스러움과 여유, 중용과 온유, 결코 서두르지 않으면서도 꾸준히 자기 갈 길을 향하여 정진하고 있는 모습을 연상할 수 있다. 우리는 양의 모습을 통해서 ‘서두르지 않고 그러나 꾸준히( Slow but steady)’ 정신을 받아드릴 수 있다.

1997년 5월 당시 오클랜드 무역관의 주선으로 교민들이 기스본(Gisborne)으로 산업시찰을 다녀 온 일이 있다. 그 때 윌리엄스(Williams) 농장을 방문했는데 600만평의 농장에서 양과 소를 목축하고 있었다. 우리에게 양몰이 시범을 보여주는데 피리를 부르니 저 멀리 산꼭대기에서부터 수 천 마리의 양들이 순식간에 우리로 모여드는 것을 보고 감탄했다. 피리 소리를 듣고 양몰이 개가 양을 몰기 시작하면 양들은 길을 따라 질서 정연하게 행진을 한다. 중간에 갈림길 같은 데서 워치 독(Watch dog)지켜 서 있으며 양들은 아무 저항 없이 한 길로 모여드는 것이다. 남한보다 2.6배 넓은 땅에서 인구는 남한의 11분의 1에 불과한데 넓은 뉴질랜드 국토가 초원으로 관리되는 원리를 알 수 있을 것 같았다.

양은 한-뉴 관계와도 밀접한 인연이 있다. 1950년 한국전쟁이 발발하자 뉴질랜드 병사들은 유엔군의 일원으로 참전하게 되었다. 1950년 12월 31일에 부산항에 도착한 병사들은 바로 경기도 가평 전투에 투입되었는데 그들은 적군과의 싸움 이전에 영하 20도를 오르내리는 혹독한 추위와의 싸움이 더 고통스러웠다. 한국전쟁은 양모 가격의 폭등을 가져왔고 뉴질랜드는 이에 힘 입어 경제기반을 확고히 다지는 계기를 마련했다. 이후 뉴질랜드 경제는 승승장구하여 1973년 제1차 오일쇼크가 발생할 때 까지 1인당 국민소득 전 세계 2위의 경제 강국이 되었다.

매년 연초가 되면 새로운 각오로 출발하고 있다. 양은 ‘Slow but steady’ 정신으로 자기 직분을 수행하여 인간에게 털과 가죽, 그리고 고기를 제공하고 인간 생활을 윤택하게 해주고 있다. 우리도 이런 양의 모습을 닮아 을미년을 설계해볼 일이다. 금년 한 해를 건강하고 아름답게, 즐겁고 가치 있게, 신나고 살맛나는 세상으로 살아 보자고 다짐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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