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임스의 세상이야기 : 오클랜드에서 오랜 이민생활을 통해서 우리의 헛된 삶과 참된 길을 배웠습니다.
오래 전 학창시절에 강의실에서 어느 국문학교수가 들려 주었던 인생의 헛된 삶과 참된 길을 들은 적이 생각이 났습니다. 우리가 원래 어디에서 왔다가 어디로 가고 있는 것인가? 또 무엇 때문에 사는 것이며 세상에 태워났으나 살 때 까지는 죽지 못해 살아가고 있는 것인가? 고달픈 이민생활의 삶에 쫓기다 보면 이런 문제들을 생각할 겨를도 없이 살아가고 있는 것이 우리의 각박한 오클랜드의 현실이 아닌가?
그러나 우리는 이런 문제들을 생각하며, 삶 속에 잘 사는 문제를 거론한다면, 농장을 경영하는 사람이나, 장사하는 사람이나, 공장 직공 또는 정치인, 교수, 종교인일지라도, 잘 살려는 마음만은 똑같이 갖고 생각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면 어떻게 사는 것을 잘 산다고 할 수 있는가. 우리가 누구나 잘 살려는 이 마음으로 잘 살 수 있는 어떤 법칙이 필요할 것은 틀림없는 사실일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잘 사는 법을 말하려면, 어떤 것이 잘 사는 것인가를 우리는 자신에게 묻고 있는 것입니다.
경제를 통해 돈 많은 재벌이나, 한 나라를 다스릴 수 있는 지도자가 되거나, 또는 세상의 독자를 붓 하나로 놀라게 하는 큰 문호가 된다면, 이것을 말해 잘 사는 것이라고 할 것인가? 부귀와 명예를 던져버리고 구름처럼 흐르는 물로 벗을 삼아 세상에 유아독존으로 사는 사람이 있다면 이 사람을 말해 잘 사는 사람이라 할 것인가? 이 모두가 겉치레의 잘 사는 방법이 될는지는 몰라도, 참된 의미에서 말하는 잘 사는 방법은 아니라는 것을 동감하고 있는 것입니다.
과연 어떤 것이 잘 사는 것일까? 부족이 없는 것이 잘 사는 것이요, 구할 것이 없는 것이 잘 사는 것이요, 원망이 없는 것이 잘 사는 것이요, 성냄이 없는 것이 잘 사는 것이요, 공포와 불안이 없는 것이 잘 사는 것이요, 강제와 속박이 없는 것이 잘 사는 것이요, 자유가 있는 것이 잘 사는 것이요, 늙지 않고 병들지 않고 죽지 않고 오래 사는 것이 잘 사는 것이요, 마음에 흡족한 것이 잘 사는 것이라는 것을, 많이 듣고 배웠습니다.
우리의 생애를 백년이라 하고 이 삶을 살아간다고 소문을 내며 살아 가더라도, 이 소중한 생애를 무엇을 위해서 살아야 하고 또 누구를 위해서 살고 있는 것일까? 우리는 이런 문제들을 전혀 생각하지 못한 이민생활 동안에 흰 머리가 쌓였고 얼굴에는 주름살이 잡히는 수가 많아졌습니다. 만일 우리가 이유를 모르고 먹고 자고 성생활만을 지탱해 나간다면 동물들의 생활과 다른 것이 무엇인가. 오클랜드에 사는 어떤 사람들은 흔히 그저 이민생활을 좇아 가며 살아간다고 들려 주곤 했습니다.
우리가 그저 살아간다는 것은 아무런 내용이 없는 것이며, 우리가 백년의 삶의 권리를 갖고 하루 살았다는 것은 하루 죽었다는 것이외에 무슨 다른 뜻이 있는 것인가? 일년을 살았다는 것은 일년을 죽였다는 것과 같으며, 그렇다면 세상적으로 살아간다는 것은 죽어간다는 것과 같다는 것이 아닌가?
우리가 농장을 경영하고, 장사하고, 정치하고, 경제하는 것은 오래 잘 살려고 하는 것인데, 그래도 죽어야만 하는 것이 우리의 삶이 아닌가? 또 권력이나 재력으로도 해결할 수 없는 일이며, 참으로 비정한 사실인 것입니다. 우리의 삶을 보면, 죽음이라고 하는 큰 뱀에 물린 개구리는 뱀의 뱃속에 완전히 들어 가기까지, 오직 뱀의 자신이 결정할 것이지 개구리에게는 아무런 자유도 없어 보이는 것입니다. 세상의 영웅과 명예와, 권력과 재력도 죽음 앞에서는 아무런 반항도 못하고 순종해야 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이런 현실에 직면해 있으면서도, 마치 다른 사람의 일처럼 새까맣게 잊고 살아가고 있으며 죽음이라는 세월 앞에 다가 가고 있는 것이 아닌가? 오클랜드에서 오랜 생활을 통해서 우리의 헛된 삶과 참된 길을 또 배우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는 건강하게 살아 갈 것입니다. 우리는 사랑을 배풀며 살아 갈 것입니다. 우리는 풍족하진 않아도 마음을 나누며, 조금이지만 먹을 것도 함께 나누는 오클랜드의 삶이 더욱 아름다운 것입니다.
수채화아티스트/기도에세이스트/칼럼니스트
제임스로부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