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오테아로아의 꿈 (9)
뜰 안에 가득한 행복
낙원과 유토피아는 현실세계에 존재하지 않는 개념이다.
끝없는 욕망의 노예로부터 해방되어 안분지족하는 마음으로
뉴질랜드 생활을 즐긴다면……
어느 여인이 천국에 가서 살아보는 것을 평생소원으로 여기고 갈망하며 지냈다. 그런데 어느 날 아침 일어나보니 궁궐 같은 집의 침대에 누워있었는데 바로 옆에는 하녀가 대기하고 있었다. 하녀는 명령만 내리면 무엇이든 금방 해결해주는 것이었다. 금은보화, 진수성찬, 화려한 장식, 멋진 의상 등 원하는 것은 무엇이든 이루어지니 이곳이 바로 천국이구나 하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그런데 일주일 쯤 지나니 심심하다는 생각이 들어 하녀한테 무슨 일거리 좀 가져오라고 일렀다. 하녀는 그것만큼은 안 된다고 대답했다. 여인이 되 묻기를 무슨 천국이 일거리도 없느냐고 따졌다. 그랬더니 하녀가 정색을 하고 대들기를 이곳은 천국이 아니라 지옥이라고 일갈했다는 얘기이다.
낙원(樂園, Paradise)이나 이상향(理想鄕, Utopia)는 원래 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 개념이다. 아무런 걱정이나 부족함이 없이 살 수 있는, 인간이 생각 할 수 있는 최선의 상태를 갖춘 완벽한 사회는 인류 역사상 존재하지 않았다. 그러한 세상이 온다고 하더라도 인간은 그런 환경에 싫증을 느끼고 다른 것을 원할 것이기에 그것이 낙원이나 이상향이 될 수도 없다.
현실의 인간 사회는 항상 긴장의 연속이고 갈등이 내재하고 있으며 모순과 부조리가 판치고 있게 마련이다. ‘유토피아’라는 말은 원래 토마스 모어(Thomas More, 1478-1535)의 정치적 공상 소설 이름에서 유래한 말인데 그리스어의 ‘없는(ou) 장소(toppos) 즉 u(no)+topia(place)=utopia’라는 합성어이다. 토마스 모어는 1516년에 당시 영국 사회의 현상을 비판하면서 이상 사회를 기술하는 내용의 소설 ‘유토피아’를 발표한 것이다. 유토피아는 실제로는 아무데도 존재하지 않는 이상의 나라이나 토마스 모어의 작품을 계기로 ‘이상향’ 이라는 뜻으로 여겨지게 되었다. 유토피아에서는 하루 6시간 노동을 하며 나머지 시간은 교양 시간으로 활용하고 사유재산이 필요 없으며 원하는 물품은 마음대로 창고에서 꺼내 쓸 수 있다.
고대 그리스 시대부터 남태평양에 ‘테라 아우스트렐리스’라는 전설의 땅이 있다고 알려져 왔었다. 아벨 태즈먼(Abel Tasman)은 이 전설을 확인하기 위해 1642년에 오스트레일리아 대륙의 동남쪽을 거쳐 항해를 계속하다 남태평양 끄트머리의 아름다운 섬, 뉴질랜드를 발견하고 돌아갔다. 그러나 이 땅이 테라 아우스트렐리스 인지는 확인하지 못하고 떠났다. 그로부터 127년이 흐르고 영국의 제임스 쿡(James Cook)이 뉴질랜드가 테라 아우스트렐리스의 일부인가 아닌가를 확인하기 위한 극비 임무를 띠고 이 땅에 상륙했다. 제임스 쿡은 6개월에 걸쳐서 뉴질랜드의 해안을 답사하고 마오리와의 교역을 성사시켰는가 하면 해안선 지도를 그려 나갔다. 쿡의 뉴질랜드 여행기가 출판되면서 유럽인들에게 널리 아려지기 시작했다.
뉴질랜드에 가면 정원이 딸린 단독 주택에서 넓은 농토를 할당 받고 온화한 기후와 아름다운 자연을 즐기며 살 수 있다고 홍보되었다. 이민 초기에는 영국인을 중심으로 사회가 형성되었는데 좁은 국토에서 못 말리는 음습하고 짜증나는 날씨에 시달리던 영국인들에게 뉴질랜드는 이상향의 땅이었다. 이민 선조들은 이 땅을 이상향으로 가꾸기 위하여 피나는 노력을 했고 와이탕이 조약이 체결 된 이래 170여 년 동안 뉴질랜드는 이 지구상에서 가장 낙원에 가까운 나라로 가꾸어져 왔다.
이장수 감독 영화 ‘낙원-파라 다이스’ 에는 교도소에서 막 나온 주인공 미경의 이야기가 전개된다. 무작정 따뜻한 남쪽으로 가는 기차를 타고 종착역을 행해 가는데 우연히 광고 전단과 마주친다. ‘햇살이 가득한 초원과 울창한 나무가 펼쳐져 있는, 지상 최고의 낙원 하나도……’ 그러나 실제로 당도한 하나도는 낙원과는 거리가 만 쓸쓸하기만 한 풍경이 전개되는…….
뉴질랜드에 가면 아름다운 해안을 끼고 푸른 초원위에 그림 같은 집에서 밤하늘의 별과 비온 뒤의 쌍무지개를 감상하며 자연과 벗 삼아 여생을 즐기리라 마음먹었다. 또한 자녀 교육 걱정 없이 꿈같은 삶을 살 거라고 한인들도 여기에 몰려들었다. 맞기도 하고 틀리기도 한 말이다. 항상 불만스러운 삶 속에서 이상향을 찾아가고 싶은 마음은 시간과 공간을 넘어 인간 누구나의 꿈일 것이다.
끝없는 욕망의 노예로부터 해방되어 안분지족(安分知足)하는 마음으로 뉴질랜드 생활을 즐긴다면 여기가 유토피아가 될 수도 있다. 지구상에서 그래도 공평성이 높고 사고나 질병에 대한 국가 대책이 마련되어 있으며 교육을 받을 기본적인 권리가 보장되어 있다. 누구나 취향에 따라 적은 돈으로 스포츠나 여가를 즐길 수 있다.
토마스 모어의 소설에 유토피아 섬에 있는 집들은 길을 향한 문을 가지고, 뜰에 이르는 뒷문을 가지고 있다고 나온다. 또한 주민들은 옷이나 보석, 돈에 대한 욕망이 없고 남녀관계에 엄격한 도덕을 지키며 건강과 자연감상, 및 학문에서 즐거움을 찾는다고 나온다. 300여 평의 택지에 지어진 도시 주택에서 앞마당과 뒷마당을 거느리고 텃밭을 일구며 각종 무공해 채소, 과일을 길러 먹을 수 있는 처지가 행복을 가져다준다. 앞마당은 공개된 공간이지만 뒷마당은 외부와 단절된 개인 공간이다. 차 한 잔을 마시면서 앞마당에 펼쳐지는 꽃이 피어 있는 모습, 나무에 잎이 나고 채소가 자라나는 모습을 바라보는 것도 행복한 일이다.
한 일 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