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오테아로아의 꿈 (6)
디지털 시대의 아날로그 감성
아날로그 세대는 기다릴 줄 안다. 기다림은 그리움으로
연결된다. 디지털의 실용과 편리를 추구하되 아날로그를
향해야……
‘우는 아이 젖 준다’는 말을 요새 디지털 시대의 아이들이 이해할까 싶다. 젖 먹이가 아닌 어린 애가 울 때는 호랑이가 온다고 겁을 주어 달래기도 했고 곶감을 준다고 꼬드겨 달래기도 했다. 그러나 현대에는 다른 더 기막힌 방법이 구사되고 있다. 엄마가 집안일로 바쁘게 움직이고 있는데 두 살짜리 젖먹이 아이가 울면서 칭얼대면 스마트 폰을 쥐어 준다. 젖먹이는 말할 필요도 없고 글 쓸 필요도 없이 손가락 끝으로 스마트 폰 화면에 전개되는 희한한 장면 변화에 시간 가는 줄 모르고 탐닉하게 마련이다.
디지털((Digital)이란 원래 손가락이란 뜻의 라틴어 디지트(Digit)에서 나온 말이다. 이는 모양으로 표시되는 아날로그(Analog)에 비해 분명하게 1 2 3을 셀 수 있다는 뜻에서 붙인 말이다. 예컨대 디지털시계는 몇 시 몇 분이 숫자로 표시돼 얼른 시간을 확인할 수 있지만 아날로그시계는 시침과 분침, 초침이 연속적으로 움직여 시간을 알아맞히기가 더디다.
디지털이 신호를 0 또는 1이라는 인위적인 신호로 바꾸어 표현하는데 비해, 아날로그는 자연에서 생성된 파(波)를 가능한 그대로 재현하고 있다. 따라서 아날로그 방식의 레코드나 테이프에는 잡음도 많이 들어가지만 디지털 방식의 전자 오디오가 제대로 구현해 내지 못하는 미묘한 소리까지 재생하기에 오디오 메니어(Mania)는 아날로그의 소리에 매달리는 것이다.
디지털 문화는 광범위하고 새로운 정보 기술 활용 능력을 길러준다. 디지털 세대는 나이와 관계없이 네트워크로 연결되어 그들끼리 자신의 생각을 함께 나누고 공유하는 집단을 형성한다. 그 집단의 구성원은 그 집단으로부터 소외에 짓눌리지 않기 위해 그 문화에 열중하게 된다. 학생들이 컴퓨터 게임에 매몰되는 현상도 마찬가지이다.
디지털 기술들은 채 팅 및 인터넷에의 중독, 사이버 섹스, 폭력, 음란물에의 노출, 가상과 현실세계간의 혼돈, 권위나 기존 제도의 부정에 이르기 까지 청소년에 미치는 부정적인 영향이 심각하다는 견해가 지배적이다. 성인들이 이들의 성향을 악용해 청소년을 현혹하는 상품들을 내놓고 있고 청소년들이 이러한 상품의 공간 속에 빠져버리면 자신의 문화 생산성을 잃어버릴 가능성이 커져 문제가 삼각해지고 있다.
사랑도 디지털로 계량화 할 수 있을까? 당신의 사랑을 100달러 가치만큼 나에게 베풀어 주세요. 100달러 가치의 사랑을 받은 사람은 나중에 이자 붙여 110달러 정도 사랑을 되돌려 주면 그만이라고 생각한다. 결혼과 이혼도 모두 계산적이다. 모든 것이 숫자로 표시되는 디지털 문화에 젖어 있기 때문에 숫자가 많은 대상자가 나타나면 사랑도 우정도 미련 없이 떨쳐버릴 수 있다.
아날로그 세대는 기다릴 줄 안다. 기다림은 그리움으로 연결된다. 새댁이 신랑 퇴근 시간에 맞춰 된장찌개를 끓이면서 그 찌개에 사랑을 담는다. 그리움에는 진솔한 정과 소박한 마음이 깃든다. 디지털 세대는 찌개 끓는 시간을 기다릴 수 없다. 라면 삶는 시간도 못 기다려 컵라면을 더운물로 부어 먹는다. 국이나 찌개 대신 수프 가루를 더운 물에 타 먹는다. 먹는 것도 모두가 즉석 식품, 이미 조리된 간편 식품이다. 사랑이 깃들지 않은 인스턴트식품의 남용으로 소아비만, 소아당뇨, 소아 고혈압, 백혈병 등의 확산은 크나큰 사회문제로 대두되고 있다. 마음은 조급하고 항상 바쁘기만 하다. 청소년 자살이 증가하는 이유도 디지털 문화와 연관이 크다. 손가락 하나로 모든 정보를 얻고 모든 의사소통이 이루어지는 디지털 문화에 젖은 청소년들은 조그만 어려움이나 기다림에도 견디지 못하고 쉽게 삶을 포기하고 만다.
친필 편지가 없어진지는 이미 오래된 일이고 앞으로 볼펜과 노트도 없어질지 모르는 현 세태에서 붓글씨를 논하는 것은 시대착오적인 발상일까? 찰나의 행위에서 느림과 빠름의 조화로 예술작품을 탄생시켜나가는 서예 부흥운동을 일으키면 어떨까? 디지털 시대의 감성을 자극하는 켈리그라피(Caligraphy)의 탄생은 단순한 과거로의 회귀가 아니라 디지털과 아날로그를 접목하는 시도가 될 수 있다. 먼 나라에 와서 살면서도 조상의 얼을 지키며 새로운 시대에 한국적인 문화를 뉴질랜드에서 접목시킬 수는 없는 일일까?
디지털은 항상 아날로그를 향해야 한다. 겨울 밤, 친구와 함께 또는 연인과 함께 밤길을 걸으며 군고구마, 군밤을 나눠먹던 추억을 되살려 본다. 비바람과 함께 폭풍이 휘몰아치더니 어느새 파란 하늘이 비치고 쌍무지개가 우리레게 웃음 짓던 그 순간의 기쁨을 생각해 보라. 우리의 가치관과 학습방법과 삶의 방식에 비해서 현재 우리 삶의 방식에 파고드는 디지털혁명은 너무 속도가 빠르다. 그러나 이러한 속도 변화가 당장 우리 삶의 모든 것을 바꾸어 놓지는 못할 것이다. 강원도 산골 자연으로 돌아가 선(禪)마을을 운영하고 있는 이시형 박사는 ‘디지털은 아날로그와 함께 가지 않을 때 제대로 된 기능을 할 수 없다. 한국 젊은이들의 사고가 굉장히 단편적인 조각난 사고(Fragmental thought)를 지니고 있다.’라고 경고하고 있다.
현대인은 디지털이라는 문명의 이기에 실용과 편리를 구가하고 있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인간의 따뜻한 체온을 그리워하고 있다. 우리는 이 복된 세상을 좀 더 즐기며 행복하게 살아 갈 일이다.
한 일 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