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임스의 세상이야기 : 우리가 경건한 어린이들처럼 정의로운 아버지들의 역할이 되기를 원하고 있습니다.
영국의 계관시인(A Poet Laureate)인 윌리암 워즈워드(William Wordsworth, 1770-1850)의 “무지개”라는 시를 배운 기억이 새롭게 다가오는 순간이었습니다. 지금은 낮은 자의 목소리로 무지개를 상상해보는 시간이 되었습니다. 중학교 2학년 시절 영어시간에 외워 두었던 이 한 편의 시가 지금 갑자기 떠오른 것은 왜이었을까?
The Rainbow : (무지개)
My heart leaps up I behold a rainbow in the sky ; 하늘의 무지개를 보면 내 가슴은 뛰노라.
So was it when my life began 내 인생 시작되던 어릴 때도 그러했고
So is it now I am a man 어른이 된 지금도 그러하고
So be it when I shall grow old 늙을 때 또한 그러하리라.
Or let me die. 그러지 않다면 차라리 죽는게 나으리라.
The child is father of the man ; 어린이는 어른의 아버지와 같노라.
And I could wish my days to be 내 하루 하루가
Bound each to each by natural piety. 순수한 “경건함”으로 묶여지기를 바라겠노라.
아마 그 시구(詩句) 끝에 있는 꾸밈이 없는 “경건함(Piety)”이라는 단어 때문이었습니다. 오클랜드에서 우리 한인들 간에 작은 소통이라도 할 수 있으면 좋겠다는 기대감은 있었지만, 그러나 어떤 한인들에게 어떤 심적 부담이라도 안겨 주게 되지 않을까 하는 염려가 있기 때문이었습니다.
오클랜드의 한인들 간에 작은 갈등의 이야기가 조금이라도 들리는 심정이 있다면, 얼마나 알아 줄까 하는 우리의 아픈 마음 속에서, 떠올랐던 시 한 편이 바로 “무지개”이었습니다. 윌리암 워즈워드의 시의 끝부분 행은 이렇게 전하고 있습니다. “Bound each to each by natural piety. (순수한 경건함으로 묶여지기를 바라겠노라.)” 왜 갈등이 있는 것일까? 우리 한인들이 스스로 설명을 해야 될 것 같았습니다.
우리 한인들이 모두 추구해야 할 덕목이 있다면, 그것은 “경건함(Piety)”일 것이며, 그것을 잃게 되면 대충 살아가며 우리의 역할과 직분과 노릇을 할 수는 있겠지만, “떳떳하고 자랑스러운 한인들의 길과 모습”은 어렵지 않을까요? 우리의 표어를 “경건함과 미덕을 세우는 한인들”이라고 정해놓고, 경건함의 회복을 삶의 방향으로 제시해 보는 것도 어떨까요?
그 시인이 전하는 경건함(Piety)은 하늘에 그려진 무지개를 보고 대자연의 창조주를 향한 가슴이 뛰는 어린이 같은 경외심이었으며, 고로 “어린이는 어른의 아버지”라고 선언했습니다. 대자연의 현상인 무지개를 보고 마음이 뛰도록 창조주에 대한 경외심을 가진 사람들이라면, 이 세상의 모든 “어른”이라고 말하고 있는 한인들을 지금 가르치고 훈계하고 있는, 어린이들은 우리의 정신적인 “아버지”가 될 수 있다는 뜻일 것이며 “겅건함”을 깨우치고 있는 것입니다.
순수한 경건함을 가진 어린이 같은 “어른 한인들”이라면, 오클랜드의 세상에 비록 작은 것일지라도, 불의로 얼룩지고 망가진 시대에서, “아버지 역할”을 잘 해야 한다는 뜻인 것입니다. 그 시의 중간부분은 극단적으로 이렇게 전하고 있습니다. “Or let me die. (그렇지 않으면 차라리 죽는 것이 나으니라.)
이 시로 인해, 절대적인 선언임을 깨달으며 우리의 마음을 찡하게 만들었습니다. 현재에도 귀로 듣게된 아픈 마음은, 이렇게 죽음을 각오하고 경건함을 회복하려는 한인들이 많아질 때, 어느새 기쁜 마음으로 바뀌어 질 것으로 기대하고 있기때문에, 분명히 한인들에게 정의로운 “아버지들의 역할”을 해 줄 것을 요구하고 있는 것은 오직 그리고 꼭 이루어 질 것 같았습니다.
수채화아티스트/기도에세이스트/칼럼니스트
제임스로부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