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의 이정표
‘이정표 없는 거리, 헤매 도는 삼거리 길, 이리 갈까 저리 갈까 차라리 돌아갈까 … 와도 그만 가도 그만 반겨줄 사람 없고 세 갈레 길 삼거리에 해가 저문다.’ 한국에서 한 때 유행하던 유행가의 가사이다.
이정표(理程標)는 원래 육로(陸路)에서 여러 곳 사이의 방향과 거리를 보기 편리하게 표시해 놓은 도로 표지판이다. 그러나 이정표의 영어 표기 ‘Milestone’이 의미하듯이 이정표란 인생, 역사 따위의 중대 시점에 선택을 해야 되는 결정 지침을 말한다. 즉 발전 과정에 있어서, 획기적인 계기나 지침이 될 만한 사건을 비유적으로 일컫는 것이다.
2011년 tvN 오디션 코리아 갓 텔런트 프로그램에서 자기의 살아 온 과거를 소개하고 성악곡 ‘Nella Fantasia’를 불러 심사위원과 청중들이 감동의 눈물을 짓도록 한 최성봉 씨- 그는 세 살 때 고아가 되어 고아원에 맡겨져 있다가 얻어맞는 게 지겨워 다섯 살에 고아원을 뛰쳐나왔다. 어린 나이에 혼자 노숙을 하며 끼니를 이어나가야 했던 소년은 오직 생명을 부지하는 것 외에는 희망이나 목표 따위는 사치스러운 넋두리 일 뿐이었다. 그렇게 10년을 지내다 껌팔이를 하는 중에 우연히 부딪힌 어느 음악회에서 성악가의 노래를 듣고 자신의 이정표를 설계하게 된다. 앞으로 성악가가 되어보겠다는 꿈을 품게 된다. 그리고 그 꿈을 실현하기 위하여 야학당에 발을 딛고 독학으로 초, 중 검정고시를 합격하여 예술고등학교에 들어가고, 틈틈이 노래 실력을 쌓아가고…….
폭행, 납치, 강간, 생매장 등 온갖 범죄가 판치는 지하세계에서 소년은 맞아 죽지 않고, 얼어 죽지 않고, 굶어죽지 않고, 파묻혀 죽지 않고 살아와서 성악가로 다시 태어났다. 최성봉 스토리는 YouTube로 전 세계에 전파되어 5천만이 넘는 조회 수를 기록했다. 드디어 헐리우드에서도 엘비스 프레슬리의 미망인이 개입하여 영화와 드라마로 제작하는 판권계약을 마친 상태이다. 그동안『무조건 살아, 단 한 번의 삶이니까』라는 책도 저술하여 자기 삶의 이정표를 다른 사람한테 전파하고 있다. 현재 22세인 그는 강연과 공연 등으로 바쁜 그리고 희망찬 일상생활을 영위하고 있다. Nella Fantasia (1986년 개봉된 영화 Misssion 의 주제곡, ‘내 환상 속으로’라는 뜻)의 가사 내용대로 그는 자유로운 영혼을 추구하며 살아가고 있는 지도 모른다.
‘자기 인생의 주인공이 되어라’. 어차피 한 번 가버리면 다시 못 돌아올 인생길인데 남의 흉내나 내고 남의 눈치 보며 남이 공연하는 연극의 구경꾼으로 살다가 죽을 수는 없지 않은가? 여행 목적지로 가는 길은 주어진 이정표를 따라가면 된다. 그러나 자기 인생의 이정표는 자신이 작성해나가야 된다. 추구하는 삶의 목표가 뭔지, 이루고자 하는 가치가 뭔지를 먼저 설정하고 그것들을 달성해나가는 로드 맾 (Road map)을 작성해서 차근차근히 실천해 나가는 것이다.
‘사람은 만남으로 자란다’. 사람을 만나든 작품을 만나든 인생 설계의 지침이 될 만 한 내용들을 탐색한다. 남강 이승훈(1864-1930) 선생은 도산 안창호 선생의 연설을 듣고 인생관이 바뀌었다. 1907년 을사보호조약이 체결된 이후 조선의 운명이 경각에 달려 있을 즈음 안창호 선생은 전국을 돌며 ‘교육진흥론’을 설파하며 다녔다. 그 연설을 들은 기업인 이승훈 선생은 당장 상투를 자르고 술, 담배를 끊은 후 교육 사업에 뛰어들어 오산학교를 설립하고 독립운동에 헌신하였다. 이승훈 선생은 자기보다 14세 연하인 안창호 선생(당시 29세)를 스승으로 모시고 받들었다.
우리는 어찌하다 남태평양 끝자락에 위치한 뉴질랜드까지 와서 살고 있다. 이민을 결심할 때에는 누구나 나름대로 이정표를 세웠을 것이다. 한국에서의 삶이 제1 인생이라면 이곳에서 제2의 인생을 살고 있는 셈인데 이리 갈까 저리 갈까 망설이다가 해가 저물어 버리도록 놔둘 수는 없는 일이다. 특히 이민 1세대로서는 할 일이 많다고 볼 수 있다. 1세대들이 허송세월을 보내버린다면 앞으로의 차세대들의 희망도 무너져버리는 것이다.
‘다른 사람한테 좋은 영향을 끼치는 사람이 되어라’. 물질적이 아니더라도 좋은 정보 제공이나 상담 등을 통해서 다른 사람에게 베풀 수 있는 것이다. 뉴질랜드 한인 사회는 다민족 다문화가 어우러져 융화되고 있는 뉴질랜드에서 특수 공동체라 할 수 있다. 우선 우리 공동체 안에서 융화를 이루고 다문화사회에 동참해야 할 일이다.
한 일 수 (경영학 박사/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