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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인수
2012.06.18 20:00

아! 장진호(長津湖)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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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장진호(長津湖)

 


미국의 전쟁기록 사진 100()에는 남북전쟁부터 제1, 2차 세계대전, 한국전쟁, 베트남 전쟁에서 이라크(걸프) 전쟁에 이르기까지 종군기자들이 찍은 사진이 100장 들어 있다. 거기에는 한국전쟁(Korean War) 관련 사진도 다섯 장이 들어 있고, 지명을 영어로 ‘Chosin’이라고 적은 두 장의 사진이 있다. 그 사진은 무릎이 잠기도록 쌓인 눈 속에서 미군 병사들이 지친 모습으로 부상병을 둘러엎고 후퇴하는 처절한 모습이다.


 

또한 미국의 해군 군함 중에는 ‘USS Chosin’이라고 명명한 순양함이 있다. 도대체 초신이 어디일까? 오랫동안 의문이 가시지 않다가 최근에야 나는 그 의문이 풀렸다. 1950년 동족상잔의 6.25 전쟁 당시 미군이 사용하던 전투지도는 한국지명을 일본어 발음으로 표기하고 있었고, Chosin은 장진(長津)의 일본어 발음이었던 것이다. 우리에게는 점차 잊혀져간 한국전쟁 중 최악으로 처참하고 혹독했던 전투를 미국인들은 기록사진과 순양함의 이름에 새겨서 잊지 않고 있는 것이다.


 

장진호는 우리나라의 지붕이라고 일컫는 함경남도 개마고원 근처에 위치한 호수라고 한다. 그 해 915일 인천 상륙작전을 감행한 미군과 유엔군은 928일에 서울을 탈환 수복한 후, 국군과 함께 101일에 38선을 넘어 북진하였고, 그날을 기념하기 위하여 101일은 지금 국군의 날로 정해졌다. 유엔군과 국군은 우세한 화력으로 거침없이 북진하여 11월 중순에 개마고원에 도달하였다.

 


19501126일 밤, 장진호 주변에서 야영을 하던 미군은 잔뜩 흐린 하늘에 분위기가 너무나 고요하여 이상한 느낌이 들었다고 한다. 영하 40도를 넘는 추위에 잠을 이루지 못하는데 멀리서 꽹과리 소리와 피리 부는 소리가 가늘게 들리기 시작하였다. 이상하리만치 적과 조우도 하지 않고 거침없이 북진하던 미군 7사단은 그날 밤 중공군 8개 사단 15만 병력이 자루처럼 길게 파놓은 매복에 깊숙이 걸려든 것이다.

 


이윽고 꽹과리 소리와 피리소리가 멈추고 따 닥, 따다닥.......’ 하는 총소리가 가까이서 들리기 시작하고 전투는 야간 근접전으로 변했다. 꽹과리 소리는 멀리서 나게 하여 심리전으로 공포감을 느끼게 하는 것이었고, 실제로 중공군은 미군 야영지의 최 근접거리에서 매복하고 미군이 걸려들기를 기다렸던 것이다.


 

중공은 6.25 참전 중공군을 인민지원군으로 불렀다. 복장도 북한군인 복장을 하거나 평민복장을 하고 참전하여 남의 눈을 속였다. 낯선 한국인을 만나면 서로 중국어로 말하지 않도록 지시받았다. 인민지원군이라 이름붙인 까닭은 정규군이 아니라 자발적으로 참전한 것으로 가장함으로써 중공이 국제적 비난과 정치적 책임을 면하기 위한 속임수였다. 참전 중공군은 대부분 팔로군(八路軍) 신사군(新四軍) 및 항일 의용유격대 출신으로 과거 본토에서 일본군과 국민당 군대와의 수많은 전투에서 유격전, 백병전, 야간전투, 야간 행군, 심리전, 매복, 근접전 등에서 노련한 경험을 가진 사람들이었다.

 


그들은 한국전에 동원되기 전 군부대소속 정치위원으로부터 정신교육 또한 철저히 받았다. 미국은 일본이 물러난 후 일본을 대신하여 북한을 거쳐 중국으로 침략하여 중국의 부로형제자매(父老兄弟姊妹)를 유린하고, 대만의 장개석 국민당을 도와 중국을 재침할 제국주의자라고 규정하였다. 인민지원군이 장차 대적할 미군은 우세한 화력만 믿고 겁 없이 덤비는 철부지 도련님 군대’(少爺兵)이므로 겁먹을 필요가 없다고 자신감을 심어주었다.


 

한편 한국에 투입된 미군은 북한지역의 특수한 산악지형에 익숙지도 못했다. 미군의 기계화 부대는 산악에서 무용지물이 되기 쉬웠고 야간전투 경험도 없었으며 또 중공군과의 백병전과 근접전에는 속수무책이었다. 중공군은 미군의 그러한 약점을 주도면밀하게 노렸고 오랜 유격전 경험으로 몸놀림도 미군보다 영활하였던 것이다. 중공군은 낮에는 미군 폭격기와 미군의 우세한 화력에 주눅이 들어 두더지처럼 땅속에 참호를 파고 죽은 듯이 틀어박혔다가 밤이 되면 총공세로 나왔다. 보름달이 뜨는 밤이나 비가 내리는 밤이면 중공군이 어김없이 공세로 나온 걸로 중공군의 참전기록에 나온다.



 

중공군은 주로 초저녁 어둠이 내리기 시작하는 시간에 총공세를 가하고 새벽이면 재빠르게 철수하여 땅속으로 숨어버렸다. 공세를 가하기 전에 우세한 병력수로 반드시 좌우나 상하로 포위한 후 양면공격을 함과 동시에 아군이 혼란한 틈을 타서 중앙을 돌파하는 천삽(穿揷)부대라고 하는 돌격대로 하여금 아군진영을 둘로 가르는 전술을 택했다. 중공군은 날이 밝기 전에 전투를 끝내고 신속히 이동 후 참호를 파고 위장하여 낮이면 미군 폭격기가 그들을 발견하지 못하도록 하였다. 이런 전술로 나오는 중공군을 국군과 유엔군은 당해내기가 힘들었던 것이다.

 


중공군의 전투식량 보급은 보통 1주치 건량(乾糧)을 병사들에게 나누어 주었다. 그래서 1주 전투를 위하여 1주 전에 전투에 유리한 매복지를 정한 후 목표물에 가장 근접한 장소로 야간접근 후 매복 은폐에 들어갔다. 전투 후 다시 2주간 휴식으로 부상병 후송과 재정비를 하여 1회 전투 작전소요시간을 한 달로 삼는 것이 관례였다. 그러나 장진호 전투는 이런 관례를 깨고 2주간 지속한 것이다. 2주간에 걸친 전투에서 미7사단은 3개 대대가 전멸하고 말았다. 중공군으로서는 장진호 전투에서 미군과 결판을 내고 앞으로 전쟁의 주도권을 장악할 계획으로 임한 것이었다.

 


장진호 전투를 지휘한 중공군 사령관은 쑹스룬(宋時輪=송시륜)으로 알려져 있다. 그는 모택동과 같은 호남성의 농민가정 출신으로 장개석이 세운 광둥의 황포군관학교 5기 졸업생 엘리트 출신 군인으로 팔로군에서 잔뼈가 굵었다. 그는 자루 속의 노획한산짐승과 같은 미군들에게 포위망을 풀어주지 않고 전멸시킬 생각이었다. “뱀을 여러 토막으로 내서 죽여라는 것이 그의 작전명령이었다. 미군이 보유한 우세한 화기는 그의 전투경험에 의하면 아무것도 아니다. 이미 본토에서 미국의 비행기와 대포를 장개석의 국민당 군대로부터 전투도 하지 않고 노획한 경험이 많았던 것이다.


 

실제로 북한으로 진격한 미군 장갑차나 중화기와 병사수송용 군용트럭은 중공군에 밀려 후퇴할 때 오히려 거추장스러워 버리고 간 경우가 많았고, 탱크와 장갑차를 운전할 줄 몰랐던 중공군은 생포된 미군포로로 하여금 탱크를 운전하게 하는 경우도 있었다. 중공군에 탈취당한 미군탱크는 다음날 낮이면 어김없이 미군 폭격기의 폭격목표가 되었다니 정말 아이러니컬한 경우라 하지 않을 수 없다. 탱크는 어차피 산속으로 이동하지도 못하므로 중공군은 산속으로 은폐하기 전 노변에 세워둔 탱크 주위에 허수아비를 만들어 중공군이 탱크 주위에 있는 것처럼 위장하였다.



절체절명의 상황에서 미 7사단이 중공군의 포위망을 뚫고 철수하기 위하여 구원을 요청한 부대가 바로 스미스 사단장(소장) 휘하의 미 해병 1사단이었다. 2차 세계대전 중 유럽전투와 태평양 전투 필리핀 탈환전 등에서 혁혁한 공을 세웠고, 9.28 서울수복의 선봉이 되었으며 용맹하기로 대적할 상대가 없다는 미 해병 1사단이 미군의 장진호 철수에 투입된 것이다. 이에 질세라 중공군도 총공세로 나오면서 포위망을 풀어주지 않았다. 그러나 미 해병 1사단의 철수작전은 결국 성공하였고, 그 유명한 흥남부두 철수(1.4후퇴)를 가능하도록 까지 후퇴하면서 엄호한 것이다.

 


미 해병 1사단 병사들은 절대적으로 중과부적인 상황에서 중공군을 죽이고 또 죽였지만 그들은 끝없이 계속 파도처럼 인해전술(人海戰術)로 밀려들었다. 하지만 미군은 후퇴하면서도 중공군의 공세를 지연시키면서, 사망자나 부상자 동료를 한 명도 남김없이 데리고 철수하였기 때문에 그 전공은 잊혀 지지 않고 지금도 많은 이들이 기억한다.

 


타임 라이프 선정 미국 전쟁사진 100선 사진 중 한국전쟁-초신 저수지(Korean War-Chosin Reservoir)’이라고 적힌 두 장의 사진이 바로 장진호 전투 당시, 한 미군 해병대 용사가 동료부상병을 업고 철수할 때의 처절한 장면이다. 이 한 장의 사진은 보는 이들로 하여금 많은 것들을 생각하게 한다. 추위, 처절함, 허망, 굶주림, 공포, 전우애, 용맹, 생명가치...

.....

 

장진호 전투에서 살아남은 미군들은 ‘Chosin Few’라는 단체를 만들었다. ‘장진호에서 살아남은 이들의 숫자가 적다는 의미라고 한다. 미 해병대 대위 출신의 영화감독 브라이언 이글레시아는 장진호 전투를 잊혀진 전쟁(Forgotten War)’이라는 제목의 다큐멘터리로 제작하였다. 그것은 스탈린그라드 전투와 함께 세계 2대 동계 혹한전투로 기록되고 있다.


 

6.25 전쟁 피난길 도중, 어쩌다 미군과 중공군의 대치지점 중간에 놓여버린 일곱 살 난 어린피난민으로 자신의 눈앞에서 어머니와 동생을 폭격으로 잃어버린 작가 고정일은 얼어붙은 장진호’(2007)를 썼고, 미국에 생존해 있던 장진호 전투 참전 한국인 노병의 일기를 바탕으로 불과 얼음-장진호 혹한 17이란 제목으로 다시 개작하였다. 작가 고정일(동서문화사 대표)은 말한다. 당시 참전한 중공군과 미군에게 전쟁의 의미를 묻는 것은 무의미할 것이다. 본인의 의사와는 관계없이 조국의 명령을 받고 서로 죽이고 피를 흘리는 일에 매달렸을 뿐이라고.......

 


그러나 우리들은 이 전쟁의 의미를 결코 잊을 수 없고, 장진호 전투 또한 잊을 수 없다. 아군(미군)이 패배한 전투라고 덮어두고 모른 체 해서도 안 될 것이다. 오히려 패배의 교훈에서 배울 것을 더 많이 찾을 수 있을 것이다. 당시 18세 나이로 한국전에 참전하여 두 번이나 부상을 입었던 중공인민지원군 전사 허쭝광(何宗光, 호남성 농가출신, 1932년생)의 참전수기<1950-1953, 그 해, 그 시절, 압록강 저편너머의 기억, 1950-1953, 我在朝鮮戰場-那年, 那月, 鴨綠江那邊的記憶, 2011년 초판>를 나는 지금 읽고 있다.

 


국군과 유엔군 참전용사들은 말할 것도 없고, 60여 년 전 우리 땅에서 벌어진 그토록 처참했고 처절했던 외국 젊은이들의 핏빛 몸부림을 우리 후세들이 잊어서야 되겠는가! 훗날, 언젠가 남북통일을 이룬 후 민족사의 비극을 세세대대로 영원히 잊지 않도록 일깨우는 반면교사로 삼아야 할 일이 아니겠는가?


박 인 수



2012. 6. 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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