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의 큰 변화와 큰 목적을 위해 아끼는 사람을 버릴 수도 있어야 합니다.
“읍참마속(泣斬馬謖)”으로, 촉한(蜀漢)의 제갈량(諸葛亮)은 가정(街亭) 싸움터에서 마속(馬謖)이 군령을 어겨, 아끼고 신임하는 눈물을 머금고 참형에 처해 일벌백계함으로써, 질서를 바로 잡았던 일이 있었습니다. 자세한 내용을 볼 수 있습니다.
유비의 뒤를 이은 촉한의 유선이 즉위한 지 5년째이던 227년에, 제갈량은 출사표를 던지고 군사를 일으켰습니다. 촉의 수도인 성도를 출발한 제갈량의 대군은 위를 크게 무찔러 갔습니다. 초조해진 조조는 명장 사마의를 내보냈고, 양쪽은 기산 싸움터에서 대치했습니다.
사마의와 맞선 제갈량은 촉으로 연결되는 군량미의 주요 수송로인 가정(街亭)의 수비를 맡길만한 장수가 없어 고민했습니다. 이때 자신의 참모인 마량(馬良)의 동생인 부장(部將) 마속(馬謖)이 자원했습니다. 제갈량은 마속이 미덥지 못했지만, “만약 패하면 저는 물론 일가가 참형을 당해도 원망하지 않겠습니다.”라며 거듭한 간청에 “군율을 명심하라.”고 다짐한 후에 허락했습니다.
그러나, 가정에 도착한 마속은 좁은 골짜기를 지키기만 하라는 제갈량의 지시를 어기고, 위나라 군을 제압하기 위해서 산 위에 진을 쳤다가 참패했습니다. 가정을 빼앗긴 촉의 군사는 후퇴했고, 제갈량은 군율을 어긴 마속에게 책임을 묻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주위에서는 마속을 처형하는 것은 나라의 손실이라고 만류했으나 제갈량은 듣지도 않았습니다.
“마속은 정말 아까운 장수이다. 그러나, 사사로운 정에 이끌려 군율을 지키지 않는 것은 마속의 죄보다 더 무거운 죄인 것이다.” 미속이 형장으로 끌려가자, 제갈량은 소맷자락으로 얼굴을 가리고 소리 없이 울었다고 합니다.
촉지(蜀誌)의 마속전(馬謖傳)에 나오는 이야기로, “사사로운 감정을 버리고 대의에 의해 기강을 바로 세우는 것의 어려움”을 비유하는 “읍참마속”의 고사인 것입니다.
“읍참마속”을 실천하기란 정말 쉽지 않습니다. 개인은 물론 사회도 마찬가지인 것입니다. 그러나 가정과 사회, 그리고 국가가 바로 서기 위해서는 눈물을 머금고 결단을 해야 할 때가 있는 경우가 있습니다. 환부는 도려내지 않으면 안됩니다. 생 살을 찢어내는 아픔이 있더라도, 말끔히 치유하지 않으면 언젠가 덧나고 고질이 되기 십상이 되는 것입니다.
과거에 조국사회의 경제사건을 볼 때, 2007년에 조국의 “삼성 비자금의 엄정한 조사와 정리”는 “삼성출신 변호사”의 문제 제기로 야기되었던 삼성특검법으로 인해, 정치와 사회에 주목된 것은 그 당시 차기 대통령선출 못지 않게 중요한 한국사회의 아포레마(Aporema : 논리적인 난점이요 쟁점)이었던 것을 기억할 수 있습니다.
또한, 1999년 “세계는 넓고 할 일은 많다.”던 대우의 침몰은 경영실패도 있지만, 정치적 보복과 미움으로 충격적인 사건이었으며, 2003년 현대의 정몽헌 회장의 투신자살로 어려움을 겪었던 사실은 경제적 논리가 아닌 정치와 대북경협의 강제적 부담으로 내려 앉았던 사실은, 모두가 정치가의 비자금 강제요구와 권력의 강권남용으로 숨죽이며 쉬쉬했던 사실이었던 것입니다. 이것은 군사독재정권의 후유증으로 모두가 부패와 부정축재와 비리를 보고, 듣고, 배운 결과인 것입니다.
더욱이, 모두가 측근의 배신과 부정(不正)으로 인한 권력과의 아부로 말미암아, 깨끗이 치유하지 못했던 만성질환이 되어버린 부패사회가 절정을 이루었던 과정이 반복되고 있음을 우리는 이제 깨달아야 합니다. 조국의 정치와 사회가 깨끗하지 못하면, 해외에 거주하는 한인들도 걱정하는 마음 고생과 부담이 더욱 더 커지기 마련입니다. 앞으로도 위정자가 바뀔 때마다 반복되고 있어, 절박한 변화를 뿌리내리는 데에 많은 시간이 필요한 것 같아 보입니다.
과거 18년 동안 군부독재의 철권통치를 통해 가는 곳마다 부패하고, 정부의 궁정동이 주야 룸싸롱처럼 전락한 실상이 그렇고, 또한 남한산성에 있던 민족도장에서 그렇게 존경했던 민족의 혼을 리드했던 한 시인이 유신정치에 회유동조하여 그 당시 국민의 가슴에서 그림자처럼 사라져버린 것을 기억할 수 있었습니다.
과거의 재벌과 언론의 아집과 고집과 권력의 길들이기, 또한 민주사회 회복을 외쳤던 어떤 방송사들이 “과거의 어떤 신문사 언론인들이 권력층과 밀착되고 권력층의 회유에 속아넘어가서” 진리와 정의를 속이며 권력아부로 변신한 간신배들로 탈바꿈하여 등장함으로써 그 방송사들이 억울한 퇴출이 강제되었고 이미 부패로 중증을 앓았던 적이 있었습니다. 또한 광주학살로 인한 역사의 더러운 오점은 군부독재의 공포로 위협해 국민의 판단을 흐리게 만들어서 지도자를 잘못 선택했었던 원인과 이유의 기억을 떠올리면서, 몸조심을 밤낮으로 걱정했던 우리 어둠의 계절이 아물어 가는 시간과 맞물려 있어 왔습니다.
조국은 과거에 많은 사람들이 실종되었고 억압되었고 공포로 떨게했던 “군부독재의 잔당과 친일파의 후손들이”, 지금 아직도 회개하지 못하고 우왕좌왕 설치는 정치쇼만으로는, “국가와 국민의 희망과 미래를 위한 철학과 설계”가 제대로 돌아가기에는 아직도 많은 시간이 필요한 것 같아 보여, 답답하고 어렵고 캄캄한 계절이 다가오고 있습니다. 많은 국민들의 각성과 반성 그리고 회개가 필요할 때인 것 같습니다. 좋은 계절이 오도록 모두 정신차리고 기도해야 할 때입니다.
수채화아티스트/기도에세이스트/칼럼니스트 제임스로부터.
On occasion, back out the pathway, let's roll again. 때로는 바로 그 길을 되돌아 가서 다시 출발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수정하고 회복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정의와 진리를 위해, 사랑과 겸손과 열정은 부흥할 수 있는 원천이기 때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