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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인수
2012.02.14 21:56

엄마야 누나야 강변 살자

조회 수 22609 추천 수 0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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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야 누나야 강변 살자



엄마야 누나야 강변 살자, 뜰에는 반짝이는 고운 모래 빛, 뒷동산에는 갈잎의 노래, 엄마야 누나야 강변 살자.


아주 오래된 서정적 가사의 노래가 기억난다. 어릴 적에는 이 노래를 많이 들으면서 자랐다. 들으면서도 강변에서 자란 유년시절이 너무 좋았다. 나이가 들어서 들어도 역시 좋았다. 엄마와 누나가 생각나서 약간은 애달픈 감상에 젖어 들면서도 좋은 느낌이다. 왜 그럴까 생각해보니 노래가사가 나의 유년기와 소년기를 보낸 고향의, 내가 기억할 수 있는 가장 오래되고 아련한 빛바랜 사진과 같은 기억의 한 자락을 일깨워 주기 때문인 듯하다.


고향을 떠난 후 나는 아득히 먼 그 시절의 추억들을 오랫동안 잊고 살아왔다. 나는 가끔씩 나만의 독특한 방법으로 과거로의 시간여행을 즐긴다. 시골에서 초등학교와 중학교를 마치고 16살 나던 해, 고등학교에 입학하면서부터 부모슬하를 떠나 타향 땅을 전전하게 되었다. 지금 5,60대 세대들은 많은 분들이 인생의 역정에서 나의 경우를 공유하리라 믿는다. 부모슬하를 일찍 떠나다 보면 아무래도 남의 눈치 보는 일에도 일찍 눈을 뜨지 않나 생각한다.


6.25 전쟁이 끝난 후 베이비붐 세대로 태어나서 모든 것이 부족하고, 도시 농촌 할 것 없이 전쟁의 폐허를 딛고 일구느라 고생을 많이 하던 때라서 그런지, 어릴 적 기억에 그리 유쾌한 것이 별로 없다. 그 당시 학교 선생님들은 회초리로 또 애들을 왜 그렇게나 많이 때리시던지....... 먹을 것도 별로 없어 영양도 실하지 못한 아이들한테 말이다.


베이비붐세대는 그러나 위의 형이나 누나들처럼 전쟁을 겪은 세대만치는 인생역정에서 겪은 고생은 못하리라 믿는다. 전쟁은 어린이들의 철을 빨리 들게 한다는 말을 들은 기억이 난다. 전쟁은 어린이들이 겪기에는 너무나 가혹했을 고생일 것이다. 그러고 보면 가난과 불우와 배고픔과 전염병의 두려움에서 우리가 벗어난 지 이제 겨우 4,50년 정도의 세월 밖에 지나지 않았다. 과연 한강의 기적이라고 자랑할 만하다. 그 반면에 너무 많은 것을 잃기도 했다.


나의 고향마을은 중앙선 철길이 마을을 감싸고 지나간다. 마을 옆을 흐르는 강을 건너면 정거장 있다. 강물은 깊은 곳은 꽤 깊었고 얕은 곳은 얕았다. 물속에는 늘 물고기들이 풍부했다. 아주 어릴 적부터 나는 친구들과 강에서 물고기를 잡으면서 자랐다. 강을 건너서 정거장까지의 신작로 연도에는 가을이면 코스모스가 만발하여 한층 고향유정을 느끼게 한다.


정거장에서 내려다보면 내가 다니던 초등학교와 중학교가 양편에서 눈앞에 보인다. 중학교는 두 개의 강줄기가 만나서 어종이 더욱 풍부한, 강의 제방 둑 옆에 위치하였기 때문에 물고기 잡던 추억과 함께 강변 버드나무 숲속에서 친구들과 놀았던 시절의 에피소드는 무궁무진하다. 영어선생님은 메기탕을 얼마나 좋아하셨는지 메기 잡아오는 친구한테는 상으로 노트 한 권씩을 주셨다. 그런가하면 잡지도 못한 메기를 잡았다고 임기응변으로 선생님한테 벌 받을 위기를 모면한 친구도 있었다.


나의 중학교 친구들은 대부분이 초등학교부터 친구들이다. 다른 읍면이나 도시로 전학가면 몰라도 대부분이 같은 초중학교를 다니게 되어 있었다. 시골의 남녀공학으로 동년 학급은 모두 2개 반에 120명이 전부였다. 남학생이 여학생보다 많아서 1,2,3분단은 남학생 좌석이었고, 4,5분단은 여학생 좌석이었다. 점심시간에 강변으로 가서 뱀을 잡아와 여학생들을 기겁시키던 친구는 체육선생님한테 죽도록 얻어맞았다. 도시로 고등학교를 진학하면서부터 나는 그들과 헤어진 지 어언 30여 년 이라는 세월의 강물이 흘렀다. 살면서 언젠가는 한번 만날 날이 있겠지 막연하게 그렇게 생각하며 살아왔다.


수 년 전에 나는 그들을 만났다. 이역만리 떨어진 뉴질랜드에서 그들을 만나게 될 줄은 상상조차 하지 못했다. 인터넷카페에서 꿈속에서나 그리던 어릴 적 고향이 재현되어 있었다. 초등학교 중학교 동창들이 만든 고향이었다. 5년 전 어느 날 밤 10시가 넘은 시각, 호주 퍼스(Perth)에서 난데없이 한 여성으로부터 나를 찾는 전화를 와이프가 받았다.


“박인수씨 댁이지요? 지금 계신가요?”

“...........................”

“예, 박인숩니다.”

“인수야, 나 영숙이야, 영숙이......... 이화동 버스정류장 동네 살던 영숙이 기억나니?”

“뭐, 영숙이?........ 야, 이 가시나야! 너 지금 어디서 전화하노?”


이화동 영숙이 라는 말에 다짜고짜 옛날 버릇대로 ‘가시나’가 먼저 튀어나왔다. 2층에서 다른 수화기로 엿듣고 있을 와이프의 신경이 예민해지건 말건 나는 전화통에서 영숙이랑 재잘거렸다. 그 영숙이가 자기는 호주로 이민을 떠나면서 친구들에게 나를 수소문하여 꼭 찾아보도록 약속했고 나의 전화번호를 알아냈단다. 그 말을 듣는 순간 나는 눈물이 핑 돌았다.


모진 세월....... 모두들 어디서 어떻게 무엇을 하면서 살았을까? 그날 이후 나는 매일아침 눈뜨자마자 고향친구 카페에 들르는 것으로 하루일과를 시작했다. 망각으로 하나 둘 기억에서 사라졌던 옛일이 새록새록 살아나고 친구들이 보고 싶어 못 견딜 지경이었다. 2008년 5월 고향에서 뉴질랜드의 나와 호주 영숙이 둘을 위한 귀향기념 번개팅이 있었다. 카페를 찾아내고 난 후 나는 지금까지 두 번을 고향나들이 하였고 친구들은 그때마다 나를 위해 번개팅을 주선해 주었다.


그 때의 그 감격은 죽을 때까지 아마 난 못 잊을 것이다. 카페에 등록된 90명의 친구들 중 40여 명이 모였다. 타고난 명이 짧아서인지, 어릴 적 가난한 시절 충분히 먹지 못해서 얻은 병 때문인지 몇몇 친구들은 젊은 나이에 벌써 유명을 달리했다.


사람은 나이를 먹으면 추억을 먹고산다는 말이 있다. 나는 오랫동안 객지를 전전하면서 살다보니 고향을 잊고 살았다. 그러나 실상 내 마음속의 고향산천은 한 번도 잊은 적이 없다. 조상들의 산소가 있는 강 건너의 북산, 할머니와 아버지 어머니의 무덤이 있는 내가 태어난 집 뒷동산, 초등학교와 면사무소 삼거리를 지나 뻗어난 신작로 길, 그 길로 먼지를 뿔뿔 날리며 지나다니던 경북여객 시외버스, 칙칙폭폭 소리를 내며 철도 위를 느릿느릿 달리던 증기 화물열차, 내 어이 한시라도 그 곳을 잊을 터인가.


보리가 누렇게 읶어 가는 시절이면 아카시아 향기가 코를 찌르던 들판 길, 어릴 적 소 몰고 다니던 산길 모퉁이, 친구들과 어울려 물고기 잡던 강, 산토끼 노루를 쫓아 넘나들던 계곡과 산, 닷새마다 한 번 씩 서던 장터 마당, 내가 다니던 초등학교 중학교 건물, 기적소리 울리며 마을을 감고 돌아가던 청량리행 여객열차의 레일 위 바퀴 소리, 그 소리 때문에 깨었던 새벽잠을 다시 달래주시던 어머니의 달콤한 팔 배게.......... 모두 가슴이 아련하고 코끝이 찡해지는 추억들이다.


고향이 몹시 그리울 때면 나는 구글어스(Google Earth)를 통해 고향산천 나들이를 하곤 한다. 고향생각이 특히 많이 나는 날은 명절이다. 또한 비가 줄기차게 내리는 겨울밤이나 바람이 많이 부는 날들도 고향생각이 많이 난다. 그러고 보니 구글어스로 고향나들이를 한 지도 꽤 되었다. 산천은 의구하지만 인걸들은 모두 흩어지고, 지금은 꿈속에서 망향가로 외로운 마음을 달랠 뿐이다.


나 언제나 기차 정거장 있는 그 곳, 물속에는 은어 떼가 놀고, 금빛 모래 반짝이던 그 강변 마을로 다시 돌아갈 수 있으리........


박 인 수

2012. 2. 7            

  • ?
    오 분 순 2012.04.24 08:55
    글쓴이는 아직도 추억속의 그 소년인데 난 왜 이렇게 할망구가 되었나? 몸도 마음도 다 지친다. 너무 행복해서 그런가?후자가 더 정답이겠제?
    다시 세상을 다 잡아 보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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