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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뉴 관계발전의 초석이 되신 박영인 박사

 

 

사람이 삶을 영위하면서 마지막 순간까지 목표를 향해 전진하는 모습은 한없이 아름답다. 박영인 박사님의 영면 소식을 뒤늦게 갑자기 접하면서 놀라움을 금치 못했지만 그 경위를 알고서는 더욱 놀라움과 동시에 숭고한 순간을 상상하기도 했다. 필자가 박사님을 찾아 뵌 것은 뉴질랜드한인사집필이 마무리 될 무렵인 20077월의 일이었다. 그 후 집필은 완료되었고 그해 1212일에 출간 행사를 마침으로서 50여년에 걸친 뉴질랜드 한인 사회의 역사는 일단 정리될 수 있었다.

 


박사님께서는 내용이 알찬 한인사가 집필 될 수 있도록 귀중한 자료를 제공하심은 물론 증발해버릴 수도 있는 증언을 남겨주시어 뉴질랜드한인사가 탄생하는데 많은 공헌을 해주셨다.

 


뉴질랜드는 한국전쟁 때 16개 참전국가중의 일원으로 한국을 도와주어 지금도 그 은혜를 잊지 않고 있다. 뿐만 아니라 콜롬보 플랜(Colombo Plan)의 회원국으로서 동 플랜에 의한 기술 원조의 일환으로 한국의 인재들을 초청해 교육/훈련을 시켜준 보은의 국가이다. 뉴질랜드는 1960년대 당시 낙농, 원예, 임업 분야에서 최 선진국이었으므로 이들 전공분야는 물론 치의학, 식품공학, 영어 과목에서도 교육, 훈련을 베풀었다.

 


-뉴 국교 수립은 1962년에 이루어졌으며 1963년부터는 콜롬보 플랜에 의한 한국유학생들을 받아들이기 시작했다. 동 원조 프로그램은 교육비, 생활비 일체를 장학금으로 유학생들을 가르치는 방식이었다. 1988년까지 263명의 한국유학생들이 장기, 단기로 뉴질랜드 교육을 받고 돌아갔다. 그들이 한국에 돌아가 한국의 근대화와 경제 발전에 크나큰 기여를 했음은 물론이다.

 


박영인 박사님께서는 1965년부터 3년 동안 콜롬보 플랜에 의해 뉴질랜드에 유학 와서 농업 및 원예 분야의 생산 및 마케팅을 전공하고 돌아가셨다. 귀국하자마자 한국정부와 뉴질랜드 정부로부터 입은 은혜에 보답하기위해 동분서주하셨다. 1968년 당시 박정희 대통령의 뉴질랜드 국빈 방문을 맞아 자료수집에 골몰하던 한국정부와 뉴질랜드 정부에 관련 정보를 제공해주셨다. 당시는 국교수립만 되었을 뿐 대사관이 개설되기 전이었기 때문에 콜롬보 유학생의 역할이 얼마나 긴요했던가를 짐작할 수 있다.

 


이어서 박사님께서는 뉴질랜드 유학생들을 규합해 한국-뉴질랜드 협회를 결성하는데 주도적인 역할을 하고 회장으로서 양국 간의 이해증진에 지속적인 기여를 하여오셨다. 1971년 한국과 뉴질랜드에 양국 대사관이 개설된 후 한국의 외교 상대국 중 변방으로 치부될 수밖에 없던 뉴질랜드 외교부에 많은 도움을 주셨음은 물론이다. 이러한 공로가 인정되어 뉴질랜드 정부에서는 엘리자베스 2세 여왕 즉위 50주년을 기념하여 20028월에 박영인 박사님에게 ONZM(Officer of the New Zealand Order of Merit)을 수여하였다.

 


2007년 말 뉴질랜드한인사책을 받아보신 박사님께서는 마치 40년 전의 필름이 되살아난다는 반가움을 표시하셨다. 1965년 당시 한국의 국민소득이 100달러에 불과했고 환전도 100달러만 해주었기 때문에 빈 털털이로 온 가난한 나라로부터 온 유학생에게 뉴질랜드 정부는 학비, 생활비, 용돈까지 부담해주었다. 뉴질랜드 어디를 가나 현지인들이 가난한 나라에서 온 젊은 유학생에게 환대를 아끼지 않았다고 회상하셨다. 그리고 196711일 세계 유일의 ‘Perfect Nation’이 바로 뉴질랜드라는 AP 보도를 이지 못하고 있다고 말씀하셨다. 또한 201111월에 발간된 필자의 개인 수필집 먼 바다 건너 행복이 있다기에를 받아보시고는 그동안 필자와 나눴던 정분을 회상하며 진심어린 격려의 서평을 보내주셨다.



박영인 박사님께서는 유학 중에 뉴질랜드의 남쪽 끝에서 북쪽 끝가지 답사를 다녔으며 누구보다도 뉴질랜드에 대한 깊은 애정을 간직하고 지내셨다. 지난 2006년에는 답사단을 이끌고 세계적인 트램핑(Tramping) 코스인 뉴질랜드 남섬의 밀포드사운드(Milford Sound)를 완주하기도 하셨다. 그러한 박사님께서 역시 세계적인 등산 코스인 킬리만자로 정상을 밟으시고 하늘나라에 귀의하셨음은 우연한 일이 아니라 생각된다. 2013103일 일주기를 맞이하여 박사님의 행적을 돌아보며 영혼의 안식을 빌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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