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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강길     세계와 기독교 변혁연구소  연구실장

종교와 합리성 그리고 참된 신비주의


종교는 변화하는 것들 가운데서 영속성을 탐구하고 확보하려 한다.
하지만 그것은 현실 세계를 설명해내는 가운데 영속성일 때 탁월함을 갖는 것이지, 현실 세계를 제대로 설명해내지 못하면서 고집스럽게 자신들의 주장만 똑같이 되풀이한다면 그것은 독단적이고도 폐쇄적인 감옥 안에 갇히고 마는 자족적 모임일 따름이다.
현실 세계와 동떨어진 설명력 없는 공허함이란 퇴행의 징표에 지나지 않는다.


만일 우리의 기독교 신앙이 이 땅의 현실 세계와 동떨어지거나 설득력 없는 한낱 공허한 관념과 추상놀음에 그친다면, 세계 안의 다양한 상황과 이해관계에 처해 있는 사람들에게 어떤 식으로 접근할 수 있는지는 뻔하지 않은가.
결국 "무조건 믿으라"는 접근법으로 나갈 수밖에 없는 한계가 되는 것이다.


다만 현실 세계를 설명해내면서도 여전히 남는 소진함이 있을 수 있다.
바로 그 지점에서 합리주의마저 넘어서는 참된 '신비주의' 영역으로 나아가게 된다.
하나님의 신비에는 언제나 세계 안의 합리주의에서조차 설명해내지 못하는 사실에 대한 경이로움이 항상 깔려 있다.


이것이 곧 '합리성을 꿰뚫는 신비주의'와 '합리성을 배제한 신비주의'와의 차이, 즉 올바른 신비주의와 저급한 신비주의와의 결정적 차이기도 하다.
사실 우주의 역사와 생명의 진화를 탐구하는 자연과학자들이 분명한 종교적 신앙을 가질 때는 일반인들이 체감하지 못하는 경외감이 더 깊이 깔려 있을 수 있는 것이다.


하나님의 진리가 있다면 그것은 현실 세계를 설득력 있게 설명해내는 세계 안의 건강한 합리성과 충돌하지 않으면서, 그것마저 넘어서는 영속적 진리에 속한다.
바로 이 점에서 잘못된 신앙이나 신비주의 혹은 저급한 영성은 걸러질 수 있다.
정확하게 말한다면, 종교는 믿음이 아닌 '깨달음'을 요구한다고 하겠다.


'깨달음의 기독교'는 앞서 말했듯이 세계 안의 건강한 합리적 일반성이 주는 도전을 피해가거나 도외시하지 않는다.
기존 기독교가 무조건 믿으라고 얘기하는 것은 신앙을 빙자한 도피일 뿐이다.
위기는 곧 기회이듯 오히려 정면으로 마주하면서 진지한 성찰을 지향한다.
그렇다면 깨달음의 기독교가 말하는 그 깨달음이란 도대체 어떤 것인지를 알아보자.


깨달음은 그 자신에게 개입되는 가장 미시적 구원사건


물론 그 깨달음이란 '우리에게 향하신 하나님의 뜻에 대한 자각'에 다름 아니다.
그런데 여기서 먼저 얘기할 점은 그러한 하나님의 뜻이 있다고 할 때, 그것은 저 혼자서 독립적으로 펼쳐지거나 역사하진 않는다는 사실이다.
일찍이 한국의 1세대 민중신학자 안병무는 그 자신의 저서에서 이에 대해 매우 예리한 통찰을 한 바 있다.

"'하나님의 뜻'은 홀로 성립되는 것이 아니라 '역사적 상황'과 '인간의 결단'과 더불어 이루어진다" (「역사와 해석」대한기독교출판사, 1979, p.79)


이것이 왜 중요한고 하니 바로 나 자신이 말하고자 하는 '깨달음' 곧 자각이라는 사건의 내적 구조를 부지불식간에 암시하고 있는 언명이기 때문이다.
깨달음은 그 자신에게 개입되는 최초의 하나님의 구원사건이자 해방사건이다.
즉 죄로 인해 분열과 부조화에 놓여있고 내적 일그러짐을 가지고 살아가는 보편적 일반인이 하나님나라를 소망하고 살아가는 그리스도인이라는 자각인으로 거듭날 때 발생되는 최초의 사태를 일컫는다.


바로 그렇기 때문에 깨달음은 세계 안에 참다운 진보가 발현되는 시작의 지점이 되며, 그것은 순간에 발생하는 하나님나라를 위한 영구적 혁명의 가장 미시적 해방사건이 되는 것이다.
그러한 '깨달음'이라는 사건의 내적 구조는 다음과 같다.


   신의 주체적 지향 (혹은 하나님 나라)
+ 현실 세계 (혹은 나의 이웃인 고통 받는 타자)
+ 주체자의 합리적 응답 (참여적 결단)
= '깨달음'이라는 사건.


이것은 나의 의식 중추에서 '찰나'와도 같은 순간에 번쩍 일어나는 사건이다.
이 세 가지 요소가 모두 하나로 어우러질 때 '깨달음'이라는 미시적 해방(구원)사건이 생성된다.
깨달음은 이 세 가지 중 어느 하나라도 도외시되지 않는다.
여기서 신의 주체적 지향이란 하나님이 이 세계를 통해 궁극적으로 이루시고자 하는 궁극적 목적을 의미한다.
그것은 곧 2천년 전 이 땅에 오신 역사적 예수가 설파했던 '하나님나라'에 다름 아니다. 


가난한 자가 위로받고, 슬퍼하는 자가 애통하지 않는 그 나라, 사막에 샘이 넘쳐흐르고 사자와 어린 양이 함께 뛰노는 그 나라, 다시 말해 모든 생명과 존재가 하나님의 뜻을 지향함으로서 회복되고 조화롭게 사는 온전한 구원과 해방의 나라가 바로 하나님나라다.
이는 결코 내세적 의미의 천당 개념이 아니며, 그곳이 현세이든 내세이든 간에 하나님 말씀 곧 하나님의 법도가 통치하는 그 나라가 바로 하나님께서 이 세계를 통해 성취하고자 하시는 목적이라는 것이다.
하나님의 왕국, 이것이 바로 신의 주체적 지향이다.


그런데 내가 발 딛고 있는 이 땅의 현실 세계는 어떠한가.
당연히 그같은 하나님나라와는 어긋난 불합리하고 부조리한 세계에 속한다.
그래서 주께선, 하나님나라는 이 나라에 속해 있지 않다고 하신 것이다.


하지만 '그 나라'는 '이 나라'에 있어선 가장 기쁜 소식, 곧 '복음'이 된다.
왜냐하면 '그 나라'는 '이 나라'의 구원이기 때문이다.
세계는 결코 그 자신만으로 구원받을 길이 없으며, 세계의 불완전함을 극복할 수 있는 완전성의 그 근거를 우리는 하나님으로부터 보장받을 뿐이다.


하나님나라의 침투는 사실상 신의 은총에 해당한다.
하지만 하나님나라의 침투 자체가 깨달음은 아니다.
왜냐하면 우리에게는 이를 거부할 수 있는 자유 역시 갖고 있기 때문이다.
그럴 경우 '악'(evil)이란 의미는 쉽게 말해 하나님에 대한 불순종을 뜻한다.

따라서 깨달음이란 사태는 그러한 하나님의 뜻이 현실 세계에 속한 나 자신 안에서 자율적으로 수용하겠다는 그 결단의 지점까지 포함한 개념으로서 인지할 때 가장 정확하다고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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