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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완상  / 한국 새길교회 신학위원, 전 대한적십자사 총재

오늘의 기독교의 위기, 특히 한국교회의 위기는 무엇보다, 복음의 감동이 실종된 데서 찾아야 합니다.
인간과 사회를 온전한 실체로 변화시켜주는 예수의 복음은 천박한 자본주의적 출세와 성공을 도우는 일종의 미신으로 전락한 듯합니다.

이런 복음이 한국에서는 박정희 시대 ‘잘 살아 보세’의 정치 흐름에 조응했었지요.
군사정부의 외피적 경제성장에 발맞추어 한국교회는 폭발적 양적 성장의 길로 들어섰습니다.
여기저기서 메가처치(mega-church)들이 치솟아 나왔지요.

세계가 이런 기현상에 주목하게 되었습니다만, 그 외피적 성장은 복음의 진수를 실종시키고만 듯하여 안타깝습니다.
이런 시류 속에서 역사적 예수의 참모습도, 예수의 하나님 나라 운동의 모습도 도무지 찾아 볼 수 없게 되었습니다.


복음은 사사화(私事化)되었고, 탈역사화 되었고, 추상화 되었습니다.
개인의 영혼의 안녕과 개인의 종교적 명상의 고즈넉함이 관심을 끌게 되었습니다.

세상의 소금과 빛이 되어 썩은 역사현실을 올곧게 고쳐내고 어두운 역사를 밝게 변화시키는 일에는 아예 외면하고만 듯합니다.
신앙이 깊고 신학이 열렸다 해도 감동의 복음과 복음의 감동을 역사 현실 속에서 실천적으로 육화(肉化, embodiment)시키는 일에는 소홀히 한 것 같습니다.

한 마디로 이런 복음에는 공공적 감동과 공공적 열정과 헌신을 찾아보기 힘들게 되었습니다.

비극의 조국분단 현실, 날로 후퇴하고 있는 민주주의 현실 속에서 공공적 헌신을 불러일으키는 역동적 동력이 교회에서 찾아보기 힘들게 되었기에 예수님께서 그토록 갈망하셨던 새 하늘과 새 땅을 세워 보려는 복음적 움직임이 교회에서 더욱 희미해지고 있는 듯합니다.

참으로 안타깝습니다.
오늘 저는 이런 안타까움을 가슴에 품고, 내가 겪었던 흐뭇했던 체험, 감동적으로 저를 깨닫게 한 소중한 체험을 여러분들과 함께 나누고 싶습니다.


지난 달 중순에 저는 한 젊은 엄마로부터 흐뭇한 메시지를 받았습니다.
2년 전 쯤 제가 주례자로서 한 쌍의 젊은이의 결혼을 축하했는데, 지난 6월 **일 그들은 첫 아들의 돌잔치를 하게 되었다고 합니다.

그런데 돌잔치 비용을 모두 지구 반대편에 있는 짐바브웨에서 에이즈에 걸린 엄마 때문에 고아가 된 어린이를 위해 기부했다는 것입니다.
이런 기쁜 소식을 전하면서 한 살이 된 그들의 아들 태*이에게 다음과 같은 값진 메시지를 남겼습니다.


"세상에서 가장 사랑하는 우리 아가 태*아!
엄마랑 아빠는 소중한 우리 태*이의 첫 생일을 맞이해
돌잔치 대신 짐바브웨 ‘포스코 어린이 센터’에 있는
형, 누나의 손을 잡아주기로 했단다.
앞으로, 인류, 국가, 사회 그리고 이웃을 위해 큰일을 하는 어린이로 자라나 거라."

엄마 염**씨는 첫 아들에게 이같이 감동적 공공의 진리를 깨우쳐 주고 있습니다.

저는 주례할 때마다, 축복의 메시지에서 첫 신랑 아담이 첫 신부 이브를 보자 마자 그의 입에서 터져 나온 기쁨의 탄성이 갖는 깊고 심오한 뜻을 축복 선물로 해석해 주고 있습니다.

아담이 이브를 보자, 감동한 나머지 그녀를 자기의 뼈 중의 뼈요, 살 중의 살이라고 고백합니다.
여기 ‘뼈 중의 뼈’라는 표현은 뼈아픈 고통을 함께 나눌 동반자란 뜻이고, ‘살 중의 살’이라는 고백은 육체의 쾌락을 함께 나눌 동반자라는 뜻입니다.

그러니까 부부가 하나 된다는 뜻은 동고(同苦)와 동락(同樂)을 함께하는 동반자란 뜻인데, 여기서 중요한 메시지는 동고와 동락의 순서에 있습니다.
연애할 때는 동락이 앞장서겠지만, 결혼 하는 순간부터는 동고가 동락을 이끌어야 합니다.

동고의 그릇에 동락이 담겨질 때에야 비로소 부부가 감동적인 기쁨을 영원히 함께 나눌 수 있게 되지요.
중요한 것은 동고 없는 사랑에는 감동이 없다는 진리를 깨닫는 것입니다.

젊은 엄마는 말도 못하는 한살배기 아들에게 동고의 복음적 사랑을 벌써부터 실천으로 가르치고 있습니다.
그래서 생일잔치 비용을 기아대책 본부에 기부한 것이지요.
참 훌륭한 예수따르미지요.

 

이 동고의 사랑은 바로 아빠 하나님의 사랑이요, 그것이 바로 갈릴리 예수의 삶에서 육화되어 구체적으로 그의 하나님 나라 운동에서 나타났습니다.
온갖 치유선교와 밥상 평등 공동체 운동이 바로 그 동고 사랑의 실천운동이었습니다.

동고 사랑은 나누고, 비우고, 내려놓고, 우아하게 패배할 수 있는 참 여유 있는 사랑입니다.
동고 사랑을 함께 나누는 분들은 이겨야만 직성이 풀리는 세상의 기쁨 보다, 양보하고 사양하고 심지어 멋있게 짐으로써 서로가 갖게 되는 기쁨을 더 소중하게 여깁니다.

바로 여기에서 하나님나라의 싹이 돋아나오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이 동고의 사랑이야 말로 이 땅에 하나님 나라를 세우는 열쇠라 하겠습니다.
그것은 공공의 감동을 불러 일으킵니다.

마치 내가 젊은 엄마의 동고사랑실천에서 따뜻한 봄바람을 추운 한겨울 가운데서 느끼듯 말입니다.


컵에 물을 정말 꽉 차게 부을 수 있는 사람은 어떤 사람일까요?
물이 철철 넘쳐도 된다고 하는 넉넉한 마음을 가진 사람만이 그렇게 할 수 있습니다.

동고의 사랑은 교회라는 컵에 사랑의 물을 철철 넘쳐흐르도록 부으면서 공동체를 하나 되게 만들어 내는 감동적인 변화의 힘입니다.
그러기에 이런 사랑보다 더 진보적인 힘은 없습니다.
왜냐하면 이런 사랑의 힘만이 오늘과 내일을 더 밝게, 더 맑게 향상시키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사랑은 평화와 공의의 새 질서를 만들어 내면서 독선과 폭력이 들어설 자리를 처음부터 사라지게 하는 힘입니다.
마치 원수의 존재를 근원적으로 사라지게 하는 힘이 원수를 사랑하는 결단과 실천에서 나오듯 말입니다.

애자무적(愛者無敵)은 예수님께서 원수를 사랑하라고 하신 바로 그 말씀이 아닙니까.
이런 사랑만이 감동적인 공공의 동력, 참 변혁의 힘을 지닌다는 사실을 우리 공동체는 한시도 잊어서는 안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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