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들바람
누군가 저에게 “왜 하나님을 믿느냐?”고 물으신다면, 한 마디로 명쾌하기 대답하기는 어려울 것 같습니다.
기독교 입문 초창기인 대학시절과, 신학대학원 입학 이후 목회활동 초창기까지, 그리고 목사 안수를 받은 지 몇 년이 지난 후부터 지금에 이르기까지, 이렇게 세 번에 걸쳐 저의 대답이 조금씩 달라졌을 뿐 아니라 세 번째 단계에 와 있는 지금이라고 해서 지난 첫 번째와 두 번째 단계에 담긴 의미를 버릴 수는 없기 때문입니다.
하여 오늘은 우선 제가 지나왔던 신앙의 세 가지 단계중 첫번째 단계를 교우님들과 나눔으로써 ‘바람직한 신앙과 삶’이 어떤 것인지에 대해 함께 생각해보고 싶습니다.
교우님들께 왜 하나님을 믿느냐고 물으면 대부분 “구원받기 위해서”라고 대답합니다.
"하나님과 그 외아들 예수님을 믿으면 구원받고 영생을 얻고 천국에 간다. 그래서 믿는다.”
라는 것이 대부분의 우리 한국 교회 교우님들이 하나님과 예수님을 믿는 ‘신앙의 이유’입니다.
이 대답이 결코 틀린 것은 아닙니다.
저는 예수님을 믿음으로 우리가 구원을 받고 영생을 얻고 천국에 간다는 보수적인 믿음을 존중할 뿐만 아니라 저 또한 그런 믿음을 갖고 있었으며 지금도 그 믿음을 부정하지는 않습니다.
그러나 어느 순간 그게 전부가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한 가지 예를 들어 보겠습니다.
저에게는 아이 둘이 있습니다. 지금은 다 큰 성년이 되었지만 아이들이 어렸을 때 제 목에 매달리며 잘 하던 말이 있습니다.
“아빠, 난 아빠가 좋아.” 아이의 갑작스런 말에 “아빠가 왜 좋은데?”하고 물으면 아이는 조금도 망설이지 않고 씩씩하고 분명하게 대답했습니다.
“아빠가 맛있는 거 사 주잖아. 아빠가 장난감 사 주잖아.”
아이의 말을 들으며 조금은 섭섭한 생각이 들어 볼을 잡고 흔들며 이렇게 말했던 기억이 납니다. “요놈, 너 사실은 아빠보다, 맛있는 게 좋은 거구, 장난감이 좋은 거로구나.”
아이나 아빠나 다 어리고 철이 없기는 마찬가지였던 것 같습니다.
어린아이는 부모의 깊은 사랑보다 부모가 사주는 장난감, 맛있는 것에 더 관심을 가질 수 있습니다. 어찌 보면 어린아이다운 순수함이라고 하겠습니다.
우리 믿음도 마찬가지인 것 같습니다.
저 역시 신앙의 길로 들어선 초기에는 하나님의 깊은 사랑을 잘 몰랐던 것 같습니다.
하나님보다 하나님께서 베풀어주시는 그 무엇에 더 관심을 갖고 있었으니까요.
엄마 아빠는 자기가 원하는 모든 것을 당연히 사 주어야 한다고 생각하는 어린아이처럼, 기독교 신앙에 처음 눈을 뜨던 초창기에는 하나님께서 제가 원하는 모든 걸 당연히 들어주셔야 한다고 생각했었습니다.
그게 하나님을 믿는 이유였기에, 하나님의 뜻을 헤아리기보다는 그저 제 욕심대로 기도하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새벽기도회에 빠지지 않는 교우님들이 잘 하시는 기도가 있습니다.
“사업 탈 없이 잘되게 해 주시고, 딸 아들 대학 잘 들어가게 해 주세요...” 그리고는 “내가 이렇게 열심히 기도하고 신앙생활 잘 하니까, 어쩌면 하나님께서 큰 복을 내려주실 지도 몰라.”
라는 생각에 복권을 사 놓고 당첨되기를 기다리시는 분도 계십니다.
그러나 우리 하나님이 진정 사랑과 공의의 하나님이시라면, 열심히 기도한다고 해서 원하는 걸 모두 들어주시면 안 될 것입니다.
예수님은 우리에게 “무엇이든지 원하는 대로 구하라. 그리하면 이루리라.”(요한복음 15:7, 개역개정)고 약속해주셨습니다.
하지만 그 말씀 앞에는 다음과 같은 조건이 붙어 있습니다. “너희가 내 안에 거하고 내 말이 너희 안에 거하면...”
우리는 하나님을 ‘사랑의 하나님’으로 고백하지만 동시에 ‘공평하고 정의로우신 하나님’으로도 고백합니다.
하나님의 사랑 뿐 아니라 공평성과 정의가 함께 충족되려면, 적어도 무엇이 옳고 그른지는 구별이 되어야 하지 않겠습니까?
떼를 쓰고 매달린다고 해서 옳고 그름을 가리지 않고 무조건 들어주신다면 하나님으로서 자격이 없는 것이 아닐까요?
그러므로 이런 식의 조건적이고 이기적인 신앙에 머물러 있으면 하나님을 제대로 만나기 어려워 우리의 신앙이 자라지 않을 뿐 아니라 쉽게 흔들리게 됩니다.
저 역시 이 단계에 머물러 있는 동안 많이 흔들렸던 것 같습니다.
기도를 들어주시지 않는다고 조급해하고 하나님을 원망하기도 하였으며, 하나님께서 정말로 존재하시는 것인지 많이 의심하기도 하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