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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진홍   서울대 명예교수

1. 믿는 것만으로는 모자란다

친구들이 종교학을 연구하는 나에게 종교에 대해 묻는 말이 있다. 하나는 "기독교·불교·유교·이슬람교 등을 다 공부했나, 어떤 종교가 가장 좋은가"라는 것이다.

사람들은 대부분 종교에 대해 자기 경험 속에서 절대적인 것으로 받아들인다. 그래서 남이 어떻게 얘기한다고 해서 쉽게 흔들릴 성격의 것이 아니다. 상대의 종교를 이해하고 승인해 줄 수밖에 없을 때가 많다. 종교에 대해 논하기 시작하면 그리 생산적인 논의가 이뤄지기 쉽지 않다.

또 하나의 질문은 "정말 신이 있는가"다.
신이 있다고 말하는 사람에게 없다고 하면 있다고 하고, 신이 없다고 하는 이에게 있다고 하면 없다는 뜻을 굳힌다. 종교적 경험이 가지고 있는 특징이다. 자기에게 마음에 들지 않는 얘기를 하면 분노를 보인다. 신이 있다는 사람에게는 있고, 없다고 하는 사람에게는 없는 것이 종교다.


2. 믿음은 신앙의 전부가 아니다

종교는 마음 깊은 데까지 와 닿는 경험이다.
신앙은 믿음과 상상력의 마음 결이 합쳐져서 이뤄지는 독특한 경험·반응이 아닌가. 그렇다고 해서 이성이나 감성이 배제되는 것은 아니다.

우리는 늘 이성적이면서 감성적이고, 감성적이면서 상상력을 발휘하고, 상상력을 발휘하면서 의지적인 의식을 갖추고 있고, 믿음도 가지고 있다. 단지 종교적인 경험 속에서 상상력과 믿음이 강조된다는 것이다.

전통적으로 이성이나 감성·믿음 등을 따로 떼어 놓고 얘기해 왔다.
희랍 전통부터 시작해서 이데아나 진리에 도달하는 것은 이성적 추론을 통해 가능하지, 감성적인 지각을 통해서는 불가능하다고 여겼다. 이성과 감성은 대치되는 것이었고, 신앙이란 것도 이성·감성 등과 대립적인 구도를 형성했다.

요즘은 마음이란 말을 많이 쓰면서, 이성·감성·믿음 등이 서로 단절된 것이 아니고 다 연결되어 있다고 보게 됐다. 인식의 지평에서 생긴 중요한 변화였다. 단지 결이 좀 다르고 구분해서 얘기하는 것일 뿐이다. 그래서 '마음결'이라고 표현하고 싶다.

그런데 전통적으로 이해했던 것처럼 믿음을 따로 떼어서 그것만을 신앙이라고 했을 때 문제가 생긴다. 사실 신앙에는 믿음뿐만 아니라 많은 상상력과 감정적인 요소, 합리적인 이성의 구조가 함께 들어가 있다. 다만 믿음과 상상력이 두드러져 있을 뿐이다.

 
실제 경험과 다르게 믿음만 강조하고 이성이라는 것을 아주 독특한 것으로 여기는 것이 문제다. 극단적으로 나아가면 다른 것들은 적대적으로 여기면서, 믿음만 신에 의해 주어진 것으로 받아들이고 독특하고 신비한 경험과 선택받은 자의 구원을 계속 얘기하게 된다.

 
하지만 그것이 현실과 동떨어져 있다고 느낄 때마다 현실을 저주하든가, 아니면 자기 신앙의 부족함을 탓하면서 점점 더 비현실적·비인간적으로 살게 된다.


3. 성찰하려면 인식의 지평 넓혀야…"세상이 썩었으면 종교도 썩은 것"


대학에서 학생들을 만나 얘기하면서 답답한 점이 있다. 돈독한 신앙이 있다고 하는 청년들이 상투적으로 "모든 지성이 끝나는 데부터 믿음이 시작된다"고 얘기하는 경우가 있다.

신앙이라는 것이 정말 반지성적일까. 그런 말을 들을 때마다 이렇게 얘기한다. "이성과 지성 모두 하나님께서 주신 선물이다. 신앙과 같이 가져가야 한다. 하나님이 주신 것인데, 왜 거부하나."

오늘날 한국 기독교가 처해 있는 상황이 그렇다. 신앙이라는 이름으로 이성적 판단을 배제한다. 종교적 삶 속에서 비판적인 인식을 해야 하고, 지성적이고 합리적인 판단을 신앙의 한 모습으로 승인할 줄 알아야 한다.

기독교에 신성·신비·초월 등의 용어가 있다. 이것은 서양 기독교 전통에서 형성된 개념이다.
개신교에서는 주로 이 개념을 주어진 것이라고 얘기한다. 그런데 주어진 것으로 전제하게 되면, 신성불가침의 개념이기 때문에 교회의 모습이나 기독교 전통을 성찰할 수 없게 된다.
스스로 자기를 비판적으로 인식할 기회가 확보되지 않는다.

비판적 성찰이 가능하려면, 신념의 강화보다 인식의 지평이 넓어져야 한다.
신념이 너무 강하면 자신을 스스로 비판할 수 없게 돼 위선에 빠질 수 있다. 모든 마음결 중 하나만 딱 떼어서 신념 혹은 믿음의 사람이 되라고 하는 것이다. 이성·감성 등과 단절된 신앙을 투철하게 가진 이들의 논리는 동어반복일 수밖에 없다.

예를 들어
"하나님을 왜 믿는가"에 "성경에 그렇게 쓰여 있어서",
"성경이 뭔가"에 "하나님의 말씀이다",
"하나님의 말씀은 뭔가"에 "성경에 그렇게 쓰여 있다"
고 답하며 같은 말을 반복한다는 것이다.

동어반복을 지속하는 사색의 지평에서는 자기 신념의 강화는 가능해도, 인식의 지평은 하나도 넓어지지 않는다.

이런 문제는 세상은 다 썩었어도 교회는 빛과 소금의 역할을 하고 있다고 여기도록 한다.
세상이 다 오염됐어도 우리는 어떤 오염도 수용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하지만 세상이 썩었으면 종교도 다 썩었다.

처음부터 자신은 예외라는 인식이 구조적으로 비판적 성찰을 막고 있다. 믿음이 아주 독특한 것이고, 일상생활과 섞일 수 없다고 여기기 때문에 참회가 구조적으로 불가능하다. 비판적 성찰이 가해지지 못하면 스스로 소멸할 수 있다. 이런 문제를 간과해도 되는 것일까.


4. 기독교, 타 문화 포용 못 하면 부족화 될 것


인류의 역사 속에서 단일한 문화권에 하나의 종교가 있었던 시기가 있다.
이때는 단일한 종교가 스스로 절대적이라고 말해도 별문제가 없었다.
이제는 문화권 단절의 벽이 깨지면서 종교가 하나가 아니라 여럿이 됐다.
그런데 아직도 하나의 문화권 안에 단일한 종교가 있었을 때 만들어진 언어를 가지고 여러 종교가 공존하고 있다는 사실을 서술할 때 문제가 생긴다.

다시 말하면, 바뀐 세상 속에서 여러 종교가 있음에도 자기 종교를 절대화하는 것은 시대착오적인 반응이고, 소통을 불가능하게 하고, 진리 여부 이전에 언어 부적합성을 노출하는 것이다.

이것은 다원 현상 속에서 단원 의지를 갖추고 발언하는 것의 한계다. 진리 문제가 아니다. 이제는 문화가 다양한 종교를 공존할 수 있게 한다.

구라파 사람들이 이슬람 여성들이 차도르를 쓰는 것에 대해 인권유린이라고 했는데, 그 여성들이 도리어 "이것은 우리 고유의 전통인데 왜 참견인가"라고 되물었다.

또 한국에 수쿠크법이 들어온다고 했는데, 기독교 측에서 그것이 이슬람 관습법이라고 규정하며 반대해 들어오지 못하도록 하는 데 큰 역할을 했다.
 
언제까지 대립적으로 여기면서 막을 것인가. 이제는 문화가 들어오면서 일상생활 속에 새로운 종교가 정착하고 있다. 같이 섞여서 살아야 한다.

기독교가 절대화를 고수하다가는 하나의 부족처럼 따로 떨어져 나갈 수 있다.
지역적 경계조차 없는 그룹이 되어서, 자기들만의 언어로 소통하고 그들만의 관습을 가지고 살면서 다른 이들과 같이 어울리지 못하게 될 수 있다.

돈독한 신앙을 갖는 것은 좋지만, 믿음만으로는 모자란다. 믿음은 모든 마음결 중 하나다. 다른 마음결과 더불어 있어야 한다. 그것을 승인하지 않으면, 기독교는 하나의 부족 그룹으로 표류하는 섬이 되어 흘러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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