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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역사적 예수 연구의  필연적 이유
         
                                                 ~  실종된 인간예수를 어떻게 찾을 것인가 ?  ~
                                                                         

                                                                               김준우    한국기독교연구소 소장 / 전 감신대  교수


교회 역사에서 인간 예수가 “도그마의 예수,” 그 “신적인 그리스도”에 묻혀 실종되었다면, 이제 “역사적 예수”를 찾아야만 하는 필연적 이유는 무엇인가?

오늘날 한국교회가 당면한 쇠퇴의 위기와 사회적 신뢰성 상실의 위기 상황, 그리고 교회의 죽음을 논의하게 된 세계 기독교의 신학적 과제와 관련하여 역사적 예수 연구의 필연적 이유를 (1) 선교적 필연성, (2) 신학적 필연성, (3) 윤리적 필연성, (4) 신약학적 필연성의 관점에서 검토하겠다.


(1) 선교적 필연성

역사적 예수 연구가 선교적 관점에서 필요한 이유는 다음 세 가지 이유 때문으로 생각된다.


첫째로, 기독교 복음의 신뢰성을 회복하기 위해서 역사적 예수 연구가 필연적이다. 앞에서 컴퓨터 세대인 미래 세대는 “정신분열증”이 더욱 심해지고 “유배당한 신자들”도 더욱 양산될 가능성이 높다고 지적한 것처럼, 오늘날 교회가 당면한 위기는 일차적으로 기독교 신앙의 핵심인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에 대한 신뢰성이 무너졌기 때문이다.

그 이유는 초대교회가 예수를 통해 경험했던 “하느님과의 만남”을 신화적 언어와 세계관을 통해 은유적으로 고백한 것들임에도 불구하고, 축자영감설이라는 교리에서 출발하여, 그 “은유적 표현”을 “직설적인 표현”으로 오해하고 문자주의적으로 이해하여, 초대 교회의 “주관적 고백”을 “객관적이며 역사적 사실”로 주장해왔기 때문에, 오늘날 “사실 근본주의”에 사로잡힌 현대인은 교회로부터 유배당하게 된 것이다.

따라서 교회 안과 밖의 “유배당한 신자들”에 대한 선교를 위해서, 기독교 신앙의 신뢰성을 회복할 수 있는 길은 케리그마의 그리스도(해석)를 역사적 예수(사실)에 근거하도록 만드는 일이며, 이를 위해서는 예수에 대한 역사적인 이해가 필수적이다. 역
사적 사실을 무시한 신앙은 맹신이며, 역사적 사실에 근거한 믿음은 더욱 큰 확신과 열정을 줄 수 있기 때문이다.


둘째로, 특히 한국과 같은 종교 다원적 상황에서 타종교인들과 평화롭게 공존할 뿐만 아니라, 기독교가 새로운 지구촌 시대의 평화에 공헌하기 위해서는, 기독교의 배타성을 극복하는 작업이 필수적인데, 이 작업을 위해서는 역사적 예수 연구가 반드시 필요하다.
 
왜냐하면, 한인철의 지적처럼, 기독교의 배타적 절대성은 “그리스도 케리그마,” 혹은 니케아-칼케돈 기독론에 기초한 “하느님의 계시” 개념에 근거하기 때문이며, 타종교에 대한 관용과 대화를 통한 상호성숙을 위해서는 역사적 예수의 “삶의 비전과 길,” 특히 종교집단이 죄인으로 간주하는 사람들에 대한 “함께 아파하는 삶의 세계를 향한 정치”에서 출발해야 하기 때문이다.

지구촌 시대의 민족주의는 “배제의 논리”가 아니라 문화적 정체성의 논리에 국한된 개방성을 지녀야만 하기 때문이다.


셋째로, 특히 한국의 민족통일을 위해 준비하고 북한 교회 재건을 위해서는 역사적 예수 연구가 필연적이다.

중요한 것은 어떤 영성을 지닌 기독교를 북한에 재건할 것인가 하는 문제이다. 즉 지난 반세기 동안 무신론의 “주체성의 영성” 체제에서 살아온 북한 주민들에게 접근할 수 있는 기독교 신학은 최소한 인간의 주체성을 확보하는 신학이어야 하는데, 전통적인 초자연적 군주적 유신론은, 데이빗 그리핀의 지적처럼, “복종의 영성”을 요구하는 모델이기 때문에 부적절하며, 자연주의적 유신론의 “창조적인 자기변혁의 결정적인 사례로서의 예수”를 기초로 한 기독교가 적절할 것이기 때문에 역사적 예수 연구가 필연적이다.



(2) 신학적 필연성

역사적 예수 연구가 신학적인 필연성을 갖는 이유는 다음 세 가지 이유 때문으로 생각된다.


첫째로, 예수운동을 계승하기 위한 기독교 신학을 재구성하기 위해서는 역사적 예수 연구가 필연적이다.
 
예수운동의 핵심은 황제의 나라와 대조적으로 “이 땅 위에 하느님이 다스리는 나라를 세우는 것”으로서, 그 방법은 토마스 쉬한의 표현처럼, “예수는 희망을 사랑으로 바꾸고, 미래의 종말론을 현재의 해방으로 바꿈으로써, 스스로를 종교와 묵시사상으로부터 해방”시키는 방법이었다.

그러나 이제까지 기독교 신학은 바울의 “그리스도 케리그마” 신화에 근거한 신학, 즉 하늘에서 내려온 구원자의 출생과 부활승천만으로 족했던 고대 밀의종교(密儀宗敎)의 신화를 기초로 하여 구성함으로써
 
(ㄱ) “그리스도 케리그마”는 고대 이교도들의 미스테리아인 오시리스-디오니소스 신화의 유대적 버전이라고 지적받기에 이르렀으며,

 (ㄴ) 도케티즘 경향이 나타나고, 우주적 사건으로서의 그리스도의 보편성을 강조하여 종교제국주의를 초래하고,

(ㄷ) 그리스도 신화에 대한 믿음만 강조될 뿐, 교회가 점차 예수 운동을 계승하는 일에는 소극적이 되었다.

탈기독교 시대에 예수운동을 계승하는 기독교 신학을 재구성하기 위해서는, “예수에 관한 종교”가 다시 그 원천이며 기초인 “예수의 종교” 위에, “예수의 손가락을 바라보는 종교”가 “예수가 손가락으로 가리킨 하느님 나라를 바라보는 종교” 위에 다시 확고하게 자리잡을 필요가 있다.

특히 바울의 “그리스도 케리그마”가 간과했던 예수의 지혜 전승뿐 아니라 억압체제에 대한 비판과 사회정
치적 저항과 대안 전략이 매우 중요하며, 기독교 신학이 역사적 예수의 실천적 생애와 비전에 근거하여 예수 운동을 계승하는 신학이어야만 한다.따라서 역사적 예수 연구는 모든 신학적 재구성 작업의 기초로서 필연적이다.

또한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고백에서 빠져 있었던 알맹이를 다시 발굴하여 채우는 작업은 오늘날 “신앙의 바다”에서 기독교인들이 기독교적 정체성을 잃지 않을 수 있는 길일 뿐 아니라, 지구화 시대의 “지구적 영성”을 함양하는 데 기독교가 공헌할 수 있는 기본적 원천이 다름 아니라 예수가 보여준 삶의 길이기 때문이다.


둘째로, 탈기독교 시대에 기독교 신학의 독특성을 확보하면서도 배타성을 배제하는 신학을 재구성할 수 있는 가장 확실한 출발점이 역사적 예수 연구이다.
 
탈기독교 시대에는 기독교 신학의 전통들, 즉 전통적인 인간론, 신론, 기독론, 성령론, 삼위일체론, 교회론, 구원론, 종말론이 모두 붕괴되어 기독교 진리의 신뢰성을 상실한 현실에서, 기독교 신학은 역사적으로 확실한 사실들과 경험들을 기초로 완전히 새롭게 재구성되어야만 하는데, 그 기초는 역사적 예수 연구를 통해서만 가능하기 때문에, 역사적 예수 연구가 필연적인 작업이다.

오늘날 신의 실재성마저 의심받고 있으며 “기독교 휴머니즘”으로까지 나아가는 탈기독교적 상황에서, 신론이나 성령론에 근거하여 기독교 신학을 재구성하는 것보다는 “역사적 예수론,” 혹은 “예수 역사학”에 근거하여 재구성한 신학이 “지구적 신앙의 바다”(global sea of faith)에서 기독교 신학의 독특성을 가장 확실하게 보장하며, 기독교의 배타성을 가장 안전하게 배제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셋째로, 기독교의 구원론을 새로 정립하기 위해서도 역사적 예수 연구가 필연적이다.
 
탈기독교 시대의 구원은 하늘에서 내려온 “외부적 구원자”에게 의존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철저하게 “내부적 구원자”에 의존할 수밖에 없기 때문에, 초자연적 구세주의 보혈의 공로에 의한 대속적 구원은 점차 인간 예수의 삶과 행적을 본받는 구원으로 바뀌어야, 복종의 영성(초자연적 유신론)이 아니라, 인간의 주체성과 창조성을 확보할 것으로 보인다.

이런 맥락에서 인류문명의 위기를 극복하기 위한 지구적 의식은 초자연적인 것이 아니라, 자연주의적이며 휴머니즘적이어야 한다는 지적처럼, 외부적 구원자, 심지어 가이아(Gaia)와 같은 외부적 구원자가 아니라, 지모(Mother Earth)와 같은 자연주의적 상징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3) 윤리적 필연성

역사적 예수 연구가 윤리적으로 필연적인 이유는 다음 세 가지 이유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


첫째로, 기독교인의 믿음과 삶의 분리를 극복하기 위해서 역사적 예수 연구를 통한 “예수 따름”(제자직)이 반드시 필요하다.

앞에서 지적한 것처럼, 교육받은 신자들의 정신분열증 때문에, 기독교인의 자기 정체성의 가장 중요한 요소인 신앙고백을 불성실하게 고백하도록 만들어, 이런 비정직성이 믿음과 삶의 분리를 허용할 뿐 아니라, 한인철이 정확하게 지적한 것처럼, 니케아 칼케돈 기독론, 즉 예수는 하느님과 동일본질을 가진 유일한 인간이라는 점이 “나는 신의 아들인 예수처럼 살 수 없다”로 이어져, 결국 “나는 예수처럼 희생적으로 살고 싶지 않다”는 우리의 욕망에 대해 신학적인 면죄부를 주기 때문이다.

믿음과 삶을 일치시키기 위해서는 우선적으로 예수가 어떻게 “신의 아들”로 고백되어졌는가를 역사적으로 규명할 필요가 있으며, 예수의 삶의 길이 어떤 것이었는지를
정확하게 규명할 필요가 있기 때문에, 역사적 예수 연구가 반드시 필요하다.


둘째로, 기독교의 전통적 초자연적 유신론과 축자영감설의 폭력성을 극복하기 위해 역사적 예수 연구가 필연적이다.

기독교에 대한 김진호의 날카로운 비판처럼, “인류 역사상 제노사이드(
집단 학살)를 이처럼 많이 자행한 종교는 일찍이 없었고, 아마 앞으로도 없을 것이다”라는 사실과
랭던 길키의 비판, 즉 “오늘날 기독교 신앙은 도덕적으로 가장 비난받을 만한 것이며, 가장 제국주의적이며, 비영성적이며, 실제로 윤리적이라고는 거의 말할 수 없는 신앙이 되어버렸다”고 비판받는 것은
상당부분 초자연적 군주적 유신론과 선민사상이 결합되어 나타난 폭력성 때문이며, “지상의 어머니”답게 교회가 개혁되는 길은 역사적 예수의 “함께 아파하는 삶의 세계를 향한 정치”를 토대로 해야 하며, 특히 이런 폭력성을 극복하기 위해서는 예수의 비폭력적 삶과 가르침에 대한 연구가 반드시 필요하다.


셋째로, 인간의 마지막 자유를 확보하기 위해서도 역사적 예수 연구가 필요할 것으로 보인다.
 
인류는 프랑스 혁명을 통해 절대군주로부터 해방되었으며, 민주주의를 통해 노예제도와 독재체제로부터 해방되었고, 인권운동을 통해 인종차별, 성차별, 동성애자 차별로부터 해방되어 가고 있다.

로이드 기어링은 이제 우리의 “인격의 가장 성숙한 상태를 성취하기 위해 우리는 문화적 전통에서 마지막 요소로부터 해방되어야 하는데, 그것은 우리를 노예로 삼을 수 있는 능력을 갖고 있는 유신론”이라고 지적한다.
 
제2 차축시대는 유신론의 윤리적 명령에서 벗어나, 인간의 완전한 선택 자유와 완전한 책임을 통해 완전한 해방이 이루어지는 종교가 필요하며, 우리의 윤리적 명령은 우리의 인간조건 속에 내면화되어 있다는 주장이다.

비록 자연주의적 유신론은 하느님과 인간의 “공동창조”를 통해 이 문제를 해결하고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어쨌든 기독교인이 이처럼 창조적인 삶의 모델을 찾기 위해서는 역사적 예수 연구가 필수적이다.


(4) 신약학적 필연성

신약학의 관점에서 역사적 예수 연구가 필요한 것은 다음 세 가지 이유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


첫째로, 예수의 말씀과 행적에 대한 성서 본문의 진정성에 접근하기 위해 역사적 예수 연구가 필연적이다.

심지어 바울의 예수 해석 관점이나 후대의 교리적 관점에서 벗어나 예수를 이해하는 작업의 기초는 예수 전승의 진정성을 확인하는 작업이다.

새로운 자료들의 발견, 즉 사해 두루마리와 나그함마디 문서가 발견되어, 정경의 복음서들을 포함하여 80여 개의 복음서들 가운데 나타나는 522개의 예수 전승들은 예수에 대한 역사적 기억들과 예수의 죽음 이후 생겨난 예수에 대한 특정 기자 혹은 집단의 종교적 해석들이 함께 섞여 있는 것으로서, 정경 복음서들 사이에도 불일치가 나타나며, 그 전승층 역시 서로 다르기 때문에, 특정 전승의 진정성을 확인하기 위해서는 역사적 예수 연구가 필연적이다.


둘째로, 예수의 사회적 세계와 기독교의 기원, 특히 예수 전승들이 형성된 과정을 이해하기 위해서도 역사적 예수 연구가 필연적이다.
 
예수 역시 사회문화적 존재였기 때문에, 예수 당시의 역사사회적 현실과 문화를 이해하는 작업은 예수의 말씀과 행적을 파악하는 데 필수적이다.

또한 기독교의 기원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예수의 복음”이 “복음서의 예수”로 발전하는 과정, 즉 예수에 대한 해석 과정을 파악해야 하는데, 이 과정에서 무슨 일이 있었는지를 이해하기 위해서도 역사적 예수 연구가 필연적이다.


셋째로, 학자들의 예수상이 서로 상이하여 혼란을 일으키기 때문에 보다 신뢰할 만한 예수상을 찾기 위해 역사적 예수 연구가 필연적이다.

최근에 학자들이 제안한 예수상들은
정치적 혁명가로서의 예수
(S. G. F. Brandon, 1967),
주술사로서의 예수(Morton Smith, 1978),
갈릴리의 카리스마적 인물로서의 예수(Geza Vermes, 1981, 1984),
갈릴리의 랍비로서의 예수(Bruce Chilton, 1984),
힐렐 학파 혹은 최초의 바리새파로서의 예수(Harvey Falk, 1985),
에세네파 예수(Harvey Falk, 1985),
 그리고 종말론적 예언자로서의 예수(E. P. Sanders, 1985) 등이 그것이다.
 
여기에 마커스 보그(1984)의 “종교적 달인”“카리스마적 존재로서 병고치는 자”“지혜의 스승”“사회적 예언자”“운동의 촉매자”로서의 예수상과,
리처드 호슬리(1987)의 “종말론적 대중적 예언자”도 덧붙일 수 있다.

크로산은 이처럼 다양한 예수상들의 혼란을 돌파하기 위해 학제간 연구를 통해 “사회적 혁명가”로 결론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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