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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교회의 예수 '  와  ' 역사적 예수 ' 의 접목                                                                                                     

                                                                                                                 김준우   한국기독교연구소 소장 / 전 감신대 교수


‘예수 르네상스’를 주도해 온 ‘역사적예수 세미나’가 한국에 소개된 지 20 여년이 흐르는 동안, “교회의 예수,” 그 “도그마의 예수”(dogmatic Jesus) 혹은 “초자연적/신화적 예수”에 대해 의문을 갖고 있던 사람들에게는 “역사적 예수” (historical Jesus)를 새롭게 만날 수 있었던 해방적 계기가 되었으며, 학자들 사이에 신학적 논의도 시작되어, 일반적으로 보수적인 한국교회의 한 구석에서 새로운 진리의 불꽃이 피어오르기 시작했다.

그러나 역사적 예수 연구의 필요성에 관한 논의가 아직 충분치 않았으며, 이제까지 역사적 예수 담론의 위치는 주로 신약학의 예수 찾기 운동사 속에서 자리매김되었다.

한편 역사적 예수 연구의 선봉에 서 있는 존 도미닉 크로산은 1998년에 발표한 '기독교의 생' (The Birth of Christianity에서 역사적 예수 연구가 필요한 역사적 이유, 윤리적 이유, 신학적 이유를 밝힌 바 있다.
 
따라서 한국에서 역사적 예수 연구의 필요성에 관한 논의를 좀더 진전시키기 위해  한국교회가 당면한 위기 상황과 관련시켜 종교문화사적 관점에서 역사적 예수 담론의 의미를 검토하고자 한다.

한국교회가 당면한 위기 상황이란

첫째로, 1995년 이후 급속도로 쇠퇴하기 시작한 추세를 세계적인 기독교의 몰락과 탈종교화(脫宗敎化) 추세에서 볼 때, 한국교회도 서구 교회처럼 급격한 몰락의 위기를 맞을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는 사실과,

둘째로 한국교회의 사회적 역기능이 특히 심각한 비판을 받고 있을 만큼 한국교회의 사회적 신뢰성이 상실되었음을 말한다.

황석영의 '손님'에서는 기독교와 맑스주의가 서양에서 들어온 두려
운 “마마”(손님)라고 단언하며, 더군다나 최근 베스트셀러가 된 '예수는 신화다'라는 책은 예수 그리스도 이야기의 거의 대부분이 고대 지중해 지방의 밀의종교인 오시리스-디오니소스 신화와 똑같다는 점을 밝혀, 기독교의 절대성은 물론이며 독특성과 진정성 마저 도전 당하고 있는 현실이다.

이처럼 한국교회가 당면한 심각한 위기 상황에서 김진호가 역사적 예수 담론의 정치성에 초점을 맞추는 것은 콘스탄틴 황제 이후 “교회의 예수”가 결국 “교회의 진리 독점”과 “교회만이 예수운동을 승계하는 적장자로서의 배타적 승계권을 장악하게 된” 비극을 초래하였으며, “교회제국주의 신앙”과 “‘교회 밖의 존재’에 대한 망각”을 초래한 잘못들을 “역사적 예수” 담론의 정치성을 통해 극복하려 한다는 점에서 중요한 의미가 있다.

특히 한국교회의 경우

첫째로, 전통적인 친미반공적 기독교인들이 특히 동구권의 몰락 이후 세계 유일의 초강대국이 된 미국의 패권주의적 논리, 특히 기독교 우파들의 논리를 상당부분 암묵적으로 그대로 수용하고 있는 현실이며,

둘째로 “교회의 예수”가 “가이사의 것”과 “하느님의 것”을 철저하게 분리시키는 “비정치화된 예수”로서, 한국 전체 인구의 25%에 달하는 기독교인들을 탈정치화시키는 역할을 수행하고 있는 현실이며,

셋째로, “교회의 예수”가 철저히 개인주의적 관점에서 신자들의 영혼을 천당으로 인도하는 구원자로 이해된다는 점에서 신자들의 “개인적 불멸”과 “자아”에 집착하도록 만들어, 결국 “개인적 이기주의”와 “개교회주의” 혹은 “기독교 집단이기주의”를 조장함으로써 교회의 사회적 신뢰성을 가장 크게 떨어뜨리는 원인이 되고 있는 현실이며,

넷째로 최근의 미국의 “역사적 예수” 연구자들 가운데 “지혜의 교사” 혹은 “견유철학자 예수”만 강조할 뿐 “정치적 저항자,” 혹은 “사회적 혁명가로서의 예수”를 간과하는 흐름이 분명히 존재한다는 점에서 “역사적 예수 담론의 정치성”은 매우 중요하다.

그러나 김진호가 “교회의 예수”의 부정적인 측면을 극복하기 위해 그 정치성을 “탈교회주의” 혹은 “탈교회적 주체의 신앙”에 초점을 맞추는 것은 단적으로 말해서 “교회의 예수”를 “역사적 역사”로 대체시키려는 그의 의도와 희망을 반영한 것으로 보인다.
 
나아가 “교회 해체의 신앙”이라는 급진적 신학으로까지 발전시키려는 것
은 한국교회가 당면한 현재의 위기 상황과 일반적인 보수성에 비추어 볼 때 즉각적으로 교회 파괴라는 부정적 인상을 주기 쉽기 때문에, 너무 급진적이며 매우 위험한 것으로 보이기 쉽다.

따라서, 보다 적극적으로 역사적 예수 연구를 한국교회의 당면 위기를 극복할 수 있는 가능성에 초점을 맞추려는 것이다.


다시 말해서,
한국 개신교가 “처음부터 전통문화와 타종교에 대하여 배타적이고 공세적인 태도를 보여 왔다”는 점도 사실이며,

특히 미군정 당시부터는 국가권력과 유착관계를 맺어 ‘적산’으로 분류된 일본 종교 재산 가운데 상당수를 개신교 예배당으로 ‘접수’하였고,

또한 “자본주의적 탐욕을 꾸짖는 대신 오히려 천민 자본주의의 노예가 되어 버린” 것도 사실이며,

“공세적인 냉전적 반공 이데올로기의 생산공장” 역할을 해왔기 때문에 “제거하는 편이 훨씬 나은 ‘암세포’에 불과했다”는 사실도 일정 부분 인정할 수밖에 없을 뿐 아니라,

현재 지구적 자본에 의해 진행되는 세계화 과정에서 제3 세계에 대한 폭력의 원인으로 작용한다는 사실도 부인할 수 없으며,

“그럼에도 불구하고 신학은 한번도 그 과오를 대중에게 속죄한 적이 없다”는 점도 상당 부분 인정할 수밖에 없다.

그러나 한국교회의 역사적 과오와 현재의 사회적 역기능에 대한 철저한 자기비판과 “뼈가 저리도록 절절한 속죄... 대중에 의해서 인정되는 우리의 속죄” 필요성과 오늘날 탈기독교 시대에 “서구 신학의 전통적 노선으로부터 급진적인 단절을 통한 새로운 신학이 필요하다”는 이유 때문에 역사적 예수 담론을 “탈교회주의” 혹은 “교회 해체의 신앙”이라는 부정적 관점에서 “급진적 신학”으로 발전시키는 것은, 비록 “교회주의”의 폐해를 극복하기 위한 동기는 충분히 이해되지만, 심각한 문제가 있다고 판단된다는 말이다.

첫째로, 한국 개신교회의 상당부분이 경제적으로 미자립 상태이며, 신학교의 난립으로 인한 목회자의 공급과잉 현상이 크게 바뀌지 않는 한, 생존을 위한 “교회주의” 자체가 해체될 현실적 가능성은 매우 적을 것으로 예상될 뿐 아니라, 교회사에서 “교회주의”의 수많은 현실적 폐해에도 불구하고, 기독교 신앙의 순수성을 지키며 사회적으로 빛을 비춘 “신비적 전통”이 있었다는 사실을 인정하는 것은 이처럼 사회경제적으로 열악한 상황 속에서 목회적 희망의 원천으로 간직해야 할 것이며,

둘째로, “탈교회주의” 혹은 “교회 해체의 신앙”은 신학의 일차적 현장인 교회가 당면한 쇠퇴의 위기 상황과 더불어 교회 안과 밖의 “유배당한 신자들”(스퐁 감독)에 대한 신학적 대책이 더욱 시급하다는 현실을 간과한 것으로 보이며,

셋째로는 역사적 예수 담론 자체가 지닌 “정치적 발본성”을 고려할 때, “탈교회주의” 혹은 “교회 해체의 신앙”이라는 용어가 주는 부정적 인상 때문에, '역사적 예수 연구'가 한국교회에 간신히 지피기 시작한 새로운 진리의 불꽃이 일반적으로 보수적인 한국교회 일각에 옮겨 붙게 만들어 사회적 신뢰성을 회복하는 과제에 오히려 역효과를 낼 수 있을 것이라고 판단된다는 말이다.

따라서 한국교회의 일반적인 보수성과 현재 기독교가 당면한 위기 상황을 고려할 때, “교회의 예수”를 “역사적 예수”로 대체하거나, 양자택일을 요구하는 것보다는 현실적으로 보다 온건하며 적극적인 접근이 필요하다고 생각된다.

물론 기독교의 어느 교단도 “교회의 예수” 대신 “역사적 예수”를 받아들일 교회는 없을 것이지만, 앞으로 교육수준이 높아질수록 계속 늘어날 “유배당한 신자들”의 가슴앓이를 치유할 뿐 아니라, 더 이상 젊은층과 고학력자가 교회에서 불필요하게 유배당하지 않도록 도움으로써 교회 쇠퇴 추세를 막기 위해서라도, “교회의 예수”와 “역사적 예수”를 접목시키는 과제가 시급한 것으로 판단된다.

따라서  특히 서구에서 “신의 죽음”의 신학이 논의된 지 40 여년만에 오늘날에는 신학자들조차 “탈기독교 시대”(Post-Christian Era)와 “교회의 죽음”을 본격적으로 논의하는 상황이며, 주후 2000년이 기독교 달력의 마지막 해가 될 가능성까지 언급되는 상황이기 때문에, 한국교회가 당면한 위기를 세계적인 탈기독교 시대, 혹은 “제2 차축시대”(Second Axial Age)라는 현재의 종교문화적 상황과 관련시켜 이해하고, 이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 최근의 역사적 예수 연구가 어떤 해결 가능성을 주고 있는지를 검토하고자 한다.

 오늘날 한국교회가 당면한 쇠퇴의 위기와 사회적 신뢰성 상실의 위기가 세계 기독교의 몰락 위기와 공통적 원인에서 비롯된 것으로서, 상당 부분 교회의 기초를 “역사적 예수” 자신의 삶과 가르침에 두기보다는 예수에 대한 고백과 후대의 해석인 “도그마의 예수”에 두었다는 신학적 위기에서 비롯되었다는 점이다.

즉 단순히 한국교회만이 아니라 전세계적으로 전통적 기독교가 “예수의 종교”라기보다는 “예수에 관한 종교”가 되었으며, “예수에 관한 종교”가 그 원천이며 기초인 “예수의 종교”로부터 이탈되어 허공에 뜬 상태가 되었기 때문에 역사적 토대를 상실하여 초래된 위기라는 점이다.

따라서 이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서 “역사적 예수” 연구를 통해 “도그마의 예수” 배후에 있는 종교체험을 찾아 그 신화화 과정을 해명함으로써, “도그마의 예수”에 대한 믿음을 역사적으로 신빙성 있는 사실들 위에 올려놓고, 교회의 기초를 예수의 삶과 가르침에 둘 필요가 있다는 점이다.

따라서 한국교회의 위기만이 아니라 전세계적인 탈기독교 시대, 혹은 제2 차축시대라는 종교문화사적 관점에서도 역사적 예수 연구는 (1) 선교적 필연성, (2) 신학적 필연성, (3) 윤리적 필연성, (4) 신약학적 필연성을 갖고 있다는 점이다.
 
한 마디로, 교회의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역사적 예수 연구를 통해, “도그마의 예수”를 본래대로 “역사적 예수” 위에 근거하도록 해야 한다는 말이다.

또한 기독교 역사 2천 년만에 일체의 교리적 권위를 인정하지 않은 채, “도그마의 예수”의 원천이며 기초인 “역사적 예수”를 정직하게 되찾을 수
있게 되어, 그 “역사적 예수”에 근거해서 “도그마의 예수”를 새롭게 이해할 수 있게 됨으로써, 오늘날 “도그마의 예수”에 얽매이지 않은 채 예수에 대한 재해석의 가능성을 열어놓을 수 있게 되었다는 것이 탈기독교 시대의 “유배당한 신자들”을 위해 역사적 예수 연구가 지니는 가장 중요한 종교문화사적 의미라는 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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