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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산들바람

성경 66권(개신교에서 사용하는 성서의 경우이며 가톨릭은 외경이 포함되어 조금 더 많습니다) 가운데 원본이 일부라도 남아 있는 책은 하나도 없습니다.

지금 우리가 갖고 있는 한글 성서들은 고대 사본들을 서로 대조하여 최대한 원본에 가깝게 만든 히브리어(구약)와 헬라어(신약) 원문 성서를 다시 우리말로 번역한 것입니다.


그런데 고대 사본 중에는, 겟세마네동산에서 예수님이 기도드리면서 “땀이 핏방울같이 되어서 땅에 떨어졌다.”는 누가복음 22장 43~44절의 기록이 없는 사본도 있습니다.
 
인쇄술이 발달하지 못한 그 시절에는 사람이 일일이 손으로 베껴서 복사본을 만들었는데, 복음서 기자들의 기록이 충분하지 않다고 생각되거나 자신의 생각을 보충하고 싶어서 누군가 적어 놓은 것이 본문과 섞여 함께 전해졌기 때문입니다.


성경이 이렇게 하나의 완전무결한 경전으로 하늘에서 뚝 떨어진 것이 아니라, 사람의 손을 거쳐 기록되었을 뿐 아니라 보존된 원본이 하나도 없기에, 본문비평과 전승사비평 등 성서비평을 통해 최대한 원본에 접근하려는 신학적 연구 작업이 반드시 필요합니다.

앞선 누가복음의 기록을 다른 번역본들과 표준새번역은 본문에 포함시켰고 공동번역은 제외하는 등의 차이가 발생하는 것도 이런 신학적 해석과 선택의 결과입니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한국 교회에서는 이런 열린 신학을 위험하게 여기는 분들이 많습니다.
 
하지만 정작 위험한 것은 성서비평이 아니라 성서에 기록되었다고 하여 그대로 흠 없는 하나님의 말씀이라고 믿어버리는 것입니다. (이 문제에 대해 좀 더 자세히 알고자 하시는 분은 저의  <성경에는 신화와 전설, 역사가 함께 담겨 있다>,<성경에 담긴 사람의 말과 하나님의 말씀>을 참조해 주십시오.)


그러므로 우리가 성서의 세계를 바르게 알고 올바른 신앙을 갖기 위해서는 신학자들의 도움을 받아 ‘기록된 글에 담긴 하나님의 뜻’을 올바로 찾아내는 것이 중요합니다. 이 작업이 결코 쉬운 것은 아니지만, 어쩌면 고통스러울 수도 있지만, 그래야 생동하는 하나님의 말씀을 문자 안에 가두는 오류로부터 벗어날 수 있습니다.

이제 교우님들과 함께 만만치는 않지만 그 작업을 함께 해보고 싶습니다.

복음서에는 고뇌하고 번민하시는 겟세마네의 예수님과는 대조적으로 매우 엄격하고 확신으로 가득 차 있는 예수님도 등장합니다. 인류의 죄를 대속하기 위해 오셨고 십자가에 달려 죽으실 것과 사흘 만에 부활하실 것을 암시하고 예언하시는 예수님은 겟세마네의 예수님과는 달라도 너무나 다릅니다.

다음은 그 중 한 구절입니다.


그 때에 비로소 예수께서는 사람의 아들이 반드시 많은 고난을 받고 원로들과 대사제들과 율법학자들에게 버림을 받아 그들의 손에 죽었다가 사흘 만에 다시 살아나시게 될 것임을 제자들에게 가르쳐주셨다. 예수께서는 이 말씀을 명백하게 하셨던 것이다.

이 말씀을 듣고 베드로는 예수를 붙들고 그래서는 안 된다고 펄쩍 뛰었다. 그러자 예수께서는 돌아서서 제자들을 보신 다음 베드로에게 “사탄아, 물러가라. 하느님의 일은 생각하지 않고 사람의 일만 생각하는구나!” 하시며 꾸짖으셨다. (마가복음 8:31~33, 공동번역.)


자신의 예언을 이해하지 못하는 베드로에게 “사탄아, 물러가라”고 거침없이 말씀하시는 예수님과 겟세마네 동산에서 “내가 괴로워 죽을 지경”이라고 그토록 번민하고 괴로워하시며 제자들에게 (거기엔 베드로도 있었습니다) 중보기도를 부탁하시는 예수님을 교우님은 아무런 마음의 불편도 없이 그대로 받아들일 수 있으신지요?


이 말씀 외에도 복음서에 나타나신 예수님은 한없이 자비로우신가 하면 지나칠 정도로 엄격하기도 하시며, 원수까지도 사랑하라고 말씀하시는 반면에 격하게 분노를 표출하기도 하셨고, 특히 당시 종교지도자들에 대해서는 입에 담기 어려운 폭언을 퍼붓기도 하셨습니다.

이런 다양한 예수님상은 복음서가 기록되기 전에 예수님에 대한 서로 다른 시각이 있었고 그런 대조되는 전승들이 복음서 기자들에게 함께 수집된 결과임을 반증합니다.


복음서 중에서 가장 빨리 기록된 마가복음의 기록연대는 서기 70년경입니다. 예수님 사후 40년이 지나서야 기록되었고 그 전에는 많은 단편적인 전승과 기록이 있었을 것으로 학자들은 추정합니다.

다행스럽게도 복음서 기자들은 상이한 기록들을 억지로 꿰어 맞추려 하지 않았으며, 예수님에 대한 다양한 견해를 함께 복음서에 담았습니다.

복음서 기록자들이 그렇게 솔직하게 기록할 수 있었던 이유는 성서무오설이라는 후대의 교리로부터 자유로웠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단지 예수님의 고귀한 삶과 가르침을 후세에 전할 의도가 있었을 뿐이며, 자신들의 기록이 나중에 성서라는 책으로 또한 하나님의 계시에 의해 기록된 ‘거룩하고 흠이 없는 하나님의 말씀’으로 간주될 것이라고는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습니다.


복음서가 ‘예수님에 대한 여러 전승의 집합’임을 나타내는 사례의 하나로 예수님의 탄생설화에 담긴 족보를 비교 분석해보고 싶습니다. 탄생설화는 마가복음에는 없으며, 그보다 십여 년 늦게 기록된 마태복음과 누가복음에 등장합니다.
 
하지만 두 복음서에 나타난 예수님의 족보는 다른 전승에 의존해 있기에 매우 다를 뿐 아니라 서로 아귀가 맞지 않아 어느 한 쪽이 틀리거나 양쪽 모두 틀리다고 볼 수밖에 없습니다.

다음은 마태복음과 누가복음에 나타난 족보를 비교하여 한 눈에 볼 수 있도록 표로 만든 것입니다. (이름은 개역성경의 표기를 따랐습니다.)


0

1

2

3

4

5

6

마태

-

-

-

-

-

-

-

누가

하나님

아담

에노스

가이난

마할랄렐

야렛

7

8

9

10

11

12

13

마태

-

-

-

-

-

-

-

누가

에녹

므두셀라

레멕

노아

아박삿

가이난

14

15

16

17

18

19

20

마태

-

-

-

-

-

-

-

누가

살라

헤버

벨렉

르우

스룩

나홀

데라

21

22

23

24

25

26

27

마태

아브라함

이삭

야곱

유다

베레스

헤스론

누가

아브라함

이삭

야곱

유다

베레스

헤스론

아니

28

29

30

31

32

33

34

마태

아미나답

나손

살몬

보아스

오벳

이새

다윗

누가

아미나답

나손

살몬

보아스

오벳

이새

다윗

35

36

37

38

39

40

41

마태

솔로몬

르호보암

아비야

아사

여호사밧

요람

웃시야

누가

나단

맛다다

멘나

멜레아

엘리아김

요남

요셉

42

43

44

45

46

47

48

마태

요담

아하스

히스기야

므낫세

아몬

요시야

여고냐

누가

유다

시므온

레위

맛닷

요림

엘리에서

예수

49

50

51

52

53

54

55

마태

스알디엘

스룹바벨

아비훗

엘리아김

아소르

사독

아킴

누가

에르

엘마담

고삼

앗디

멜기

네리

스알디엘

56

57

58

59

60

61

62

마태

엘리웃

엘르아살

맛단

야곱

요셉

-

-

누가

스룹바벨

레사

요아난

요다

요섹

서머인

맛다디아

63

64

65

66

67

68

69

마태

-

-

-

-

-

-

-

누가

마앗

낙개

에슬리

나훔

아모스

맛다디아

요셉

70

71

72

73

74

75

마태

-

-

-

-

-

-

누가

얀나

멜리

레위

맛닷

헬리

요셉




마태복음의 족보는 아브라함부터 예수님의 아버지인 요셉까지 위에서 아래로 내려오고, 누가복음에서는 요셉에서 시작하여 아담까지, 그 위로는 하나님까지 거꾸로 올라가며 기록되어 있지만 양쪽의 차이는 이것만이 아닙니다.


아브라함에서 다윗까지의 계보는 두 복음서가 거의 일치하나 그 다음부터는 후손의 이름이 거의 일치하지 않습니다. 이름이 같은 사람이 몇 사람 등장하지만 세대가 다르고, 무엇보다 아담에서 요셉까지의 계보가 마태복음에서는 60대인데 누가복음에서는 75대까지 이어집니다.


혹자는 마태복음은 예수님의 아버지인 요셉의 족보, 누가복음은 어머니인 마리아의 족보를 따른 것이기에 서로 다르다고 주장하지만 그런 암시는 복음서 어디에도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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