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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세상은 사라지고 ‘나’만 살리는 부활은 부활이 아니다

                                                                   이제민 마산교구 명례성지 주임신부 / 전 광주카톨릭대학 교수


이제민 신부가 대화문화아카데미  '삶의 신학 콜로키움' 에서   ‘내가 믿는 부활은?’ 이라는 주제로 자신의 부활관을 발표했다.

이제민 신부는 “대부분의 그리스도인들이 믿는 하느님은 고맙게도 존재하지 않는다”라는 칼 라너의 말을 빌어 “대부분의 그리스도인들이 믿는 부활은 없다고 믿는다”고 말했다.

이제민 신부는 “올해로 88세가 된 제 어머니는 부활을 믿는다. 하지만 어머니가 그리는 부활에 대한 그림은 신학적으로 틀렸다”고 전했다. 예수는 그분이 믿는 방식으로 부활하지 않았다는 뜻인데, 그럼에도 어머니의 모습에서 부활의 삶을 보는 이제민 신부는 “지구가 아니라 태양이 돌고 있다고 믿는 어머니에게도 태양은 여전히 따스한 빛을 내려 보낸다”고 전했다.

어머니는 다만 교회에서 가르치는 부활을 믿을 뿐인데, “지금 우리 교회에는 신학이 없다”는 게 이제민 신부의 진단이다. “내 어머니의 신학 수준이 그대로 우리 한국교회의 신학 수준이라면 서글픈 일”이라며 “교회는 발전해 가는 현대인에게 늘 과거의 사고방식만을 전통이라는 포장지에 싸서 주입시키려 한다”고 비판했다.

▲ 이제민 신부는 '죽어서 가는' 천국이나 저승과 부활신앙은 다른 개념이라고 설명했다. 부활은 죽어서 얻는 게 아니라, 살아서 제 몸으로 구현해야 할 새로운 삶이다.


시체는 되살아나지 않는다


이제민 신부는 “부활메시지가 단순히 예수님을 믿다가 죽은 사람이 이 다음에 부활해 천당에 가서 영원한 복락을 누리며 슬픔도 고통도 없는 삶을 살게 된다는 일어날 수 없는 일을 전하는 것은 아니다”라며, 부활신앙이 허무를 달래는 것도 아니고, 부활을 믿는 그리스도인만 부활하고 나머지는 부활하지 않는다고 믿는 것도 넌센스라고 일갈한다.

더군다나 예수의 이름과 ‘부활’이라는 단어를 안다고 수천년 이 땅에서 살아온 조상들을 지옥에 버리는 것 역시 오만이라고 말했다.

사람들은 부활을 ‘죽음 다음에 오는 삶’으로 고정시키고, 예수의 부활마저 ‘그분의 시체가 되살아난’ 것으로 여기고 이를 증명하려 든다고 비판한다. 예수는 사후의 삶을 증명하려 들지 않았으며, 오히려 사후의 삶을 지금 당신의 인생을 통하여 보여주셨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언제 우리도 그분처럼 남을 위하여 내 목숨을 내놓을 수 있을까? 이런 물음이 없이는 부활의 삶을 살 수 없다”고 전한다. 즉, 부활을 믿는다는 것은 ‘죽었다가 다시 살아나는 것을 믿는 것’이 아니라, 지금 죽기 전에 부활의 삶을 산다는 뜻이다. 즉, “부활은 미래가 아니라 지금 일어나야 하는 사건이다.”


이를 두고 이제민 신부는 “죽음으로 내 인생은 모두 끝난다. 다시 살아나는 삶은 없다”고 단언하며, 부활이란 죽은 자의 문제가 아니라 산자의 문제임을 보여주고 있다. 이어 “죽은 자들이 가게 된다는 저승(천국이라 부르든 극락이라 부르든)을 나는 믿지 않는다”며 그리스도교에서 말하는 ‘사후(死後)’는 ‘인생 다음’이 아니라 ‘인생 중’에 일어나는 사건이라고 믿는다.


부활은 우리 생애에서 수없이 발생한다


이제민 신부는 “우리보다 앞서 죽은 이들이 지하세계에서 부활을 기다리며 누워 있다는 것은 오로지 인간의 상상일 뿐이다. 우리는 예수님께서 살아생전에 ‘나는 부활이다’라고 하신 말씀을 유념해야 한다”면서, 우리는 이미 우리 가운데 와 있는 하느님 나라에 맞갖는 삶을 ‘지금여기’에서 살아야 하며, 그 안에서 부활의 기쁨을 맛보아야 한다고 강조한다.


이처럼 죽음과 부활이 우리 생애 안에서 수없이 발생하는 사건임을 ‘깨닫는’ 것이 필요하고 전하며, 요한 크리소스토무스가 “우리 머리가 물속에 잠기듯, 낡은 인간은 무덤에 묻히고 완전히 잠겨 영영 사라져 버린다. 그리고 우리 머리를 물에서 다시 건져낼 때 거기서 새 인간이 태어난다”고 한 말을 상기시키며, 영생은 자신을 영원히 사라지게 하는 삶에 주어진다고 말했다.


그러므로 예수의 십자가 죽음마저도 그분 생애의 마지막에 일어난 사건이 아니라, 그분 생애 안에서 늘 일어난 일을 최종적으로 보여준 사건이라고 해석한다.


“부활한 자는 자기를 죽임으로써 사랑의 삶을 산다. 타락한 종교에는 이 사랑이 없다. 대부분의 그리스도인들은 천국 가기 위해 선을 행하고 남을 사랑한다. 그 사랑은 그 사람 때문이 아니라 자기를 위해서다. 천국은 자기만 잘 살려고 남을 사랑하는 이기적인 자들이 모인 곳이 아니다. 이런 사랑을 죽일 때 부활의 삶을 살 수 있다.”


“부활을 믿는다”는 고백으로 부활이 발생하지 않는다.    먼저 세상의 빵이 되어야 한다.


덧붙여 이제민 신부는 우리가 “부활을 믿습니다”라는 고백만으로는 부활의 삶을 살 수 없다고 강조한다. 천국은 부활을 입으로 믿는다고 고백하는 자들이 모인 곳이 아니라는 것이다. 부활신앙을 고백하는 교회 역시 자기만 다시 살아나 영원히 행복하게 살게 되리라는 꿈을 꾸는 무리들이 모여 기도하는 집단이 아니라고 말한다.

교회가 ‘믿음’의 이름으로 저희들만의 영복을 위해 모일 때 종교의 타락이 시작된다고 믿는 이제민 신부는 “이런 맹신과 광신의 집단이 이간을 오류로 안내한다”고 비판했다.


그러므로 부활이 삶을 살고 싶은 이들은 먼저 ‘빵이 되라’고 요청받는다. 배고픈 사람에게 자신을 먹이로 내어주고, 목마른 이의 물이 되고, 헐벗은 이의 옷이 되라고 주문한다. 감옥에 갇힌 이에게 위로가 되고, 타인의 고통을 제 고통으로 삼으라고 말한다.

가진 것을 다 팔아 나누어 주고, 우리 몸에서 하느님의 생명과 자비가 풍겨나오게 사는 게 부활의 삶을 ‘지금여기’에서 사는 것이다. 그리하면 “세상 창조 때부터 너희를 위하여 준비된 나라를 차지”(마태 25, 34)할 것이다.


그런데 이러한 요청을 거절하면서, 주님을 믿는다고 고백하고, 그 고백을 믿음이라고 착각하는 이들이 듣게 될 말은 “저주받은 자들아, 나에게서 떠나 악마와 그 부하들을 위하여 준비된 영원한 불 속으로 들어가라”는 소리다.


결국 부활의 삶이란 ‘나’는 사라지고 ‘세상’을 살리는 것이다. 또한 대부분의 그리스도인들이 오해하고 있는 부활은 ‘세상’은 사라지고 ‘나’만 살리는 부활이다. 이처럼 우리는 죽어서 영복을 누리는 부활이 아니라, 지금 사는 동안에 겪는 죽음과 부활을 반복하면서 그리스도와 영원하신 하느님을 닮아간다.

그러니 “우리는 땅에서 하늘을, 세상에서 하느님 나라를, 이웃에서 하느님을 보지 못하고 땅과 재물과 명예의 노예가 되어 사는 길”을 접어야 한다.
죽은 다음에 올 육신의 부활을 기대하며 살아가는 것은 사는 동안에 무덤을 파는 일일 뿐이다.
 
이제민 신부는 마지막으로 “설혹 고통을 주는 십자가가  나에게 온다 해도, 사랑하며 살 수 있는 것, 이렇게 제 몸으로 부활한 몸을 느낄 수 있는 부활의 삶을 미루지 말고 당장 여기서부터 살기 시작하자" 고 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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