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연복 한국기독교연구소 편집위원
1) 만약 예수에 관해 한 번도 들어보지 못한 어떤 사람에게 2-3분 안에 요약해서 말한다면, 나는 이렇게 말할 것이다:
“예수는 오랜 동안 그럭저럭 생존을 유지해오다 점점 더 심하게 억압을 받게 된 피점령지의 농민들 사이에 살았다. 이것은 구조적 불평등과 불의의 세계였다. 그러한 세계에서 그는 대안이 될 만한 새로운 비전을 제시했고, 또한 그것을 삶으로써 살아냈다.
그리고 그는 다른 사람들을 초대하여 그것을 더불어 나눴다. 그 비전은 무상의 치유와 나눔의 식사가 있는 공동체, 하느님 앞과 서로의 앞에서 평등한 공동체다. 그는 여성과 어린이와 남성, 그리고 나병환자와 적빈자(赤貧者)와 정신 질환자들을 똑같이 초대했다. “와서 함께 먹고 고침을 받으십시오. 그리고 당신이 경험한 것을 다른 사람들에게도 나눠주십시오”라고 말이다.
이 새로운 공동체가 하느님 나라의 모습, 즉 시이저가 아니라 하느님이 이 세상을 직접 다스리시게 될 때의 온 세계의 모습이다. 그것이 곧 하느님의 뜻이 하늘에서와 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소서 하는 주기도문의 의미다.
그는 하느님 나라에 대한 그의 비전 때문에 죽었다. 이 세상의 기존 체제에 대한 그의 예리한 도전은 어느 때든 그를 체포할 수 있는 이유가 되었겠지만, 특별히 성전에 대한 그의 상징적 파괴행위가 유대교와 로마의 고위 당국자들로 하여금 그를 즉각 처리할 수 있는 빌미를 제공했다.
그런데 전혀 예측할 수 없었던 사건은, 이 문제의 유대인 농부의 죽음이 끝이 아니었다는 것이다. 예수와 함께 있을 때부터 자신들의 삶 속에서 하느님의 능력을 경험했던 사람들은 그의 죽음 이후에도 계속 그 능력을 경험했다. 이제 그 능력은 더 이상 시간과 공간에 제약되지 않고, 예수 안에서 하느님을 본 사람들에게는 어느 곳에서나 가능하게 되었다.
신중한 중립적 역사가 요세푸스가 1세기 말에 다음과 같이 보도한 것은 이 때문이다: "처음에 예수를 사랑하게 되었던 사람들은 그에 대한 자신들의 애정을 포기하지 않았고, 그리스도의 이름을 따라 붙여진 그리스도인들이라는 종족은 오늘날까지 사라지지 않고 있다."
이것이 역사적 예수에 대한 나의 초상화다. 예수는 무상의 치유와 공동 식사를 제공함으로써, 기존하는 사회의 교권 체계와 가부장적 체계에 대해 “아니오” 할 수 있는 공동체를 선언하고 창조했다.
그는 새로운 하느님에 대한 새로운 중개인으로 단순히 해석되지 않도록 하기 위해 계속 유랑했고, 어느 곳에도 안주하지 않았다. 그는 중보자(mediator)가 되려 하지 않았다. 그는 사람들 사이에나 사람과 하느님 사이에는 어떠한 중보자도 있어서는 안 된다고 선언했다. 그는 중보자(중개자) 없는 하느님 나라를 선언했다.
2) 예수는 복음서 이야기 전체를 통해 흔히 사랑이라는 것의 일반적 한계를 뛰어넘을 수 있었던 분으로 분명히 묘사되어 있다. 예수는 어느 누구라도 종교, 문화, 제의, 질병 따위로 인해 하느님의 사랑에서 분리될 수 없다는 메시지를 온몸으로 살아냈다.
복음서들에 따르면 그는 한결같이 열정적으로 그렇게 살았다. 마치 그의 사랑의 원천이 인간의 한계 너머에 있는 것 같았다. 그 사랑은 생명을 주는 사랑이었다. 예수는 나에게 인생의 의미가 무엇인지 알게 하신 생명이다. 그래서 나는 예수를 “주님”, “그리스도”라 부르며, 내게 하느님을 보여준 분이라고 고백한다.
3) 부활절 이전의 예수는 우리가 역사적 연구를 통해 분별할 수 있는 것처럼 비범하고 사람을 사로잡는 인물로서, 우리가 그를 한 번 보기만 하면 그를 진지하게 생각한다는 것이 무엇을 뜻하는지를 알게 한다.
정경의 예수(canonical Jesus)는 1세기 말엽에 초기 기독교 공동체들의 체험 속에서 예수가 어떤 존재가 되었는지 보여준다. 정경의 예수 이야기들은 그 역사적 사실성과는 독립적으로 우리의 삶에 강력한 은유적 이야기로 다가오며 기독교적 비전과 정체성을 형성하게 만든다.
그러므로 부활절 이전의 예수와 부활절 이후의 예수 둘 다 중요하다. 역사는 신앙이 환상이 되는 것을 막아준다. 그리고 신앙은 역사가 단순한 골동품 연구가 되지 않게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