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서관의 차이와 잘못된 성경해석태도
김경재 한신대 명예교수
1) 한국 개신교 교회의 최초 설립이후(1884), 125년이 지났다. 그동안 한국사회가 겪은 커다란 민족사적 고난과 큰 변동을 겪으면서도, 125년 이라는 짧은 기간 안에 그리스도교(천주교와 개신교)가 한국의 근대화, 산업화, 민주화에 끼친 영향은 세계 어느나라에서도 비교할만한 사례가 없다.
그 힘의 원천은 그리스도교 경전인 ‘성경’의 한글번역과 그 보급이라고 말해도 과언이 아니다. ‘성경’의 한글번역과 보급은 한국의 종교사는 물론이요 문화사와 정치사회사 면에서도 커다란 순기능을 수행했다.
특히 문맹퇴치와 한글보급, 인권사상과 남녀평등권 고취, 사립학교와 의료기관 및 사회복지기관의 설립운영, 민주주의 가치 실현에 불가결한 민권과 정의로운 역사의식, 정신적 영적 삶의 고양(高揚)등에서 그러하다.
2) 그런데 매우 역설적 사실이지만, 성경의 이해와 해석의 입장 곧 ‘성경관’을 달리하는 견해차이 때문에, 개화기 초기의 역동적 기독교 모습은 오늘날 찾아보기 어렵다. 교파의 분열과 한국 주류문화로부터 소외현상과 타종단 및 다른 가치이념 단체들과 불행한 충돌을 초래하고 있다.
여러 가지 복합적인 원인이 작동하지만, 오늘날 한국 기독교가 한국사회에서 기독교가 ‘문제시 당하는 이유’ 중 가장 근본원인은 바로 성격해석에서의 ‘문자주의 입장’이라고 근본진단을 내릴 수밖에 없다.
3) 성경해석의 문자주의는 한국기독교의 ‘아킬레스건’이다. ‘아킬레스건’은 ‘치명적인 약점부위’라는 상징이기 때문에, 한국의 기독교 중 보수적이면 보수적 일수록 ‘성경해석의 문자주의’를 고수하려 한다. 이 문제는 ‘뜨거운 감자’처럼 되어있다.
그러나, 이 문제에 대한 신앙적 신실성과 학문적 정직성을 동시에 살려내는 ‘성경해석의 바른 길’을 찾아 한국 기독교인들에게 개방적으로 제시하기 전에는, 한국 개신교의 문제는 해결되지 못하며, 그 미래 또한 희망이 없다.
18세기 계몽주의 운동이 일어난 지 이미 300년이 지났고, 지구행성의 모든 현상을 자연과학이 밝혀내고, 19세기 역사주의 시대이후 지구문명사의 여러 흐름과 특징들에 대한 통시적(通時的)이고도 공시적(共時的) 이해가 동시다발적으로 가능한 정보화시대에, ‘복음주의적 신앙과 신학’이라는 신성불가침 간판을 내걸고, 기독교 복음을 유폐시키는 것은 경건을 가장한 기만이며, 신성함을 빙자한 오만과 태만이다.
4) 복된 복음을 더 이상 ‘성경문자주의’라는 바벨론제국에 포로가 되도록 방치 할 수 없다. ‘지성’이 자발적으로 이해 못하는 종교적 교리를 ‘감성’이 진실로 사랑 할 수 없으며, ‘의지’가 그 진리를 삶 속에서 구현해 내지 못하는 것이다.
‘계시적 진리’는 이성이 실증해 내기를 요청하는 것이 아니라 진정한 이성의 깊이와 높이에서 황홀하고 아름답게 이해되기를 요청한다. 신적 진리에 접하면 감성이 억압되기를 용납하지 않고 찬양하기를 갈망하며, 의지가 타율적으로 강제당하지 않고 자발적으로 실천하도록 격려해주는 것이다.
그런 것이 진정한 ‘계시적 진리, 복음적 진리’일 것이다. 하나님은 그의 자녀들이 복음을 맹목적으로 믿는 ‘지성을 멸시하는 신자’가 되기를 원하지 않으신다. 계시는 이성을 포용하고 완성하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