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약성경 바르게 읽는 눈 (1)
김경재 한신대 명예교수 / 삭개오 작은교회 원로목사
원칙1. 성경은 글자 그대로 경전(經典)으로서 읽어야 한다.(눅 1:1∼3, 딤후 3:16)
신약성경의 저자와 편집자들은 그들의 작품이 후세 오늘의 <聖經>으로 편찬되어 그리스도교 신앙의 기초가 될 줄을 알지 못했다.
성경을 신성의 보자기로 덮힌 天啓의 계시적 문헌으로 절대화하면 도리어 성경의 바른 뜻을 놓치게 된다. 문자적 영감설이나 문자적 절대오류설은 교리적 독단의 산물이다.
원칙 2. 성경은 복음증언 곧 예수가 그리스도임을 증언하는 신앙고백적 증언문서이다.(마 16:13∼19, 행 4:12)
신약성경의 개인기록자나 편집자들은, 개인이나 집단의 종교철학적사상이나 수신교양 증진을 목적으로 한 것이 아니다. 우리에게 구원의 길과 생명의 길을 더 풍성하게 가르치고 인도해 주는 신약성경은 신앙의 서적이지 철학, 과학, 문학의 서적이 아니다. 동시에 고대종교사회의 종교문헌雜類의 집대성 결과가 아니다.
루터의 말을 빌리자면 “성경은 그리스도 아기 예수가 누워있는 구유”이다. 그리스도교의 본질을 알려면 거듭거듭 성경으로 돌아가야 한다. 그곳이 생명의 원천수호이기 때문이다.
원칙 3. 신약성경은 그것들이 쓰여지고, 편집되고, 전승되고, 경전화되는 정치사회적, 문화종교적 ‘삶의 자리’를 지니고 있다.(롬 13:1∼2, 고전 14:34)
문장의 행간을 읽어내야 하고, 나무만 보지 말고 숲을 보아야 한다.
신약성경의 본문의 전하려는 본래 뜻을 바르게 이해하려면, 그 말씀이 선포되거나 회람되거나 유포되던 시대의 삶의 생활조건, 삶의 긴장상황, 언어문화적 관습, 정치경제적 조건, 다양한 위협적 철학종교사상의 유포 배경을 알아야 한다.
원칙 4. 신약성경의 문헌자료들이 쓰여지고 편집되고, 유포회람되던 시기는 사도들과 초대교회시대의 평화시대가 아니라, 유대-로마-헬레니즘 세계에서 박해받거나 의심받는 처지의 소수자들이 목숨걸고 증언한 ‘사랑고백의 언어’이며 신앙동지적 ‘자기정체성’을 뚜렷이 강화해야 할 시기의 작품들이었다.
성경본문을 읽는 동안 성경증언자들의 심장의 박동, 영성의 숨결을 느껴야 한다.(막 16:7, 요 14:6)
원칙 5. 시대적으로, 문화적으로, 그리고 삶의 방식이 초대기독교인들과 다른 한국 사람이 성경을 바르게 이해하려면, 맨 처음 그 증언을 하는 개인이나 신앙공동체와의 ‘감정이입’ 혹은 ‘신앙동지적 연대감’ 혹은 ‘해석학적 공명과 지평융합’을 경험해야 한다.(고후 3:6)
백지상태의 맘으로 순수하게 성경읽기란 불가능하다. 성경은 내가 실존적 진지성을 갖고 진지하고 성실하게 묻는만큼 구원과 생명의 빛으로 대답한다. 동일하게 인쇄된 성경을 가지고 있지만, 그 의미와 무게는 천태만별하다.
원칙 6. 신약성경이 초대교회 시기 약 100년 동안 거의 대부분 쓰여지고, 편집되고, 교회 공동체 안에서 권위를 점차로 공인받게 된 것은 놀라운 신비적 은총사건이다.
인류역사상, 신약성경만큼 인류문명에 큰 변화를 주어온 책은 없다. 성경한글번역은 한민족의 문화역사상 가장 혁명적인 사건이다. 성경을 교리적 콘크리트 창고에 가둬두는 죄를 짓지 말아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