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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인수
2013.04.24 20:08

처세잠언(處世箴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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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세잠언(處世箴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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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하에 두 가지 어려운 것이 있는데 하나는 하늘에 오르는 것이요, 남에게 부탁하는 것은 그보다 더 어려운 일이다. 그 어려움을 알아야 한다.’(天下有二難, 登天難, 求人更難, 知其難)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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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하에 두 가지 쓴 맛이 있는데 하나는 황련이요, 빈궁의 맛은 그보다 더 쓰다. 그 쓴 맛을 견뎌내야 한다.’(天下有二苦, 黃連苦, 貧窮更苦, 守其苦)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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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에는 두 가지 험한 것이 있는데 하나는 강호요, 사람의 마음은 그보다 더 험하다. 그 험함을 헤아려야 한다.’(人間有二險, 江湖險, 人心更險, 測其險)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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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에는 두 가지 얇은 것이 있는데 하나는 봄 얼음이요, 사람의 정은 그보다 더 얇다. 그 얇음을 참을 줄 알아야 한다.’(人間有二薄, 春氷薄, 人情更薄, 忍其薄)

 

위의 네 개 문구는 검은 빛이 나는 화련(花蓮) 산 대리석 문진(文鎭)에 새겨진 나의 체세잠언으로 오랜 세월동안 나의 책상 위에 놓여있다. 완물(玩物)으로서가 아니라 평소 흐트러지기 쉬운 마음을 다잡는데 필요한 문구이기 때문이었는데, 이제는 나의 아끼는 소장품이 되었다. 나이 지천명을 넘고 보니 나에게 이런 인생의 경구를 해줄 이도 이젠 없기에 더욱 가까이 두고 있다. 돌에 새겨진 의미를 나름대로 음미해본다.

 

첫째로, 사람이 하늘을 오르는 일은 불가능하다. 비행기구를 타거나 공기부력 장치에 의하지 않고는 불가능한 일이다. 그런데 그보다 더 어려운 것이 내가 아쉬워 남에게 부탁을 하는 것이다. 실상 남에게 어떤 일을 부탁하기란 참 어렵다. 대개의 경우 부탁 또는 청탁은 정상적이고 합법적이며 공개적인 방식을 통하는 것이 아니다. 그런데도 사람에 따라 남에게 부탁하는 일을 아무렇지도 않게 쉽게 한다. 가시밭길이 첩첩한 인생살이에서 뭔가 내가 아쉬워 남에게 부탁하기란 정말 힘든 일이다.

 

내가 부탁을 하면 나도 언젠가 내 부탁을 들어준 상대방의 부탁을 들어 주어야 한다. 상호적으로 주고받을 조건이 안 된다면 금전이나 다른 무엇으로 대가를 지불하는 것이 세상이치다. 남에게 아쉬운 소릴 하지 않으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남에게 부탁이나 청탁할만한 일이 생기지 않도록 내가 미연에 방비하는 자세로 세상을 살 수밖에 없다. 한국의 한 전직 대통령은 당선 직후 청탁하는 사람에게는 공개적으로 망신을 주겠다고 공언한 이도 있었다. 한국사회가 얼마나 청탁으로 얽혀있는지 알 수 있게 한다.

 

둘째로, 한약재로 쓰이는 황련(黃蓮)은 맛이 아주 쓴 약초다. 가난은 그보다 더 쓰다고 잠언에서 말한다. 아무리 가난이 어떻고 말해도 실제로 빈궁한 처지에 놓여서 가난의 쓰디쓴 맛을 겪어보지 않은 사람은 그 쓰라림을 이해할 수 없다. 쓰디쓴 맛을 다시 맛보지 않으려면 평소 대비를 철저히 해두어야 한다. 그러나 항상 지나침이 문제이다. 가난에서 벗어날 정도가 아닌, 오직 끝없이 부의 축적 그 자체가 인생의 목적인 주위 사람들을 보면 안쓰러울 경우가 있다.

 

현명한 인생은 소유가 아닌 존재에 참 행복이 있다. 법정스님이 말한 무소유가 인생의 참 자유를 가져다준다. 웬만한 사람들은 그 진리를 익히 들어서 잘 알면서도 실행하기 어려운 것이다. 욕망이라는 이름의 파도가 넘실대는 인생의 망망대해에서 허우적거리며 살다가 죽어갈 것인가? 그렇다면 우리네 인생은 욕망의 노예로 살다가 끝날 것이다. 참된 인생은 매 순간 각자의 선택에 달렸을 것이고, 그 결과는 살아있을 동안의 웰빙(well being)이 끝남과 동시에 닥칠 웰다잉(well dying)이 말해 줄 것이다.

 

셋째로 세상인심은 변화무쌍하고 변화불측(不測)함은 예나 지금이나 같다. 오히려 지금이 옛날보다 더하다. 세상 사람들의 인생철학이 가치위주에서 물질위주로 빠르게 바뀌었기 때문이다. 시속(時俗) 조류에서 뒤처지면 아둔한 사람이거나 무능력한 인간으로 비치기 때문이다. 세상 가치척도가 그렇게 바뀌다보니 이익을 위해서는 친구고 우정이고 없다. 어제 했던 말을 오늘은 아니라고 뒤집어 버린다. 그러니 누구를 믿을 것인가.

 

세상사는 것이 마치 강호의 협객들이 무림을 헤집고 다니는 것처럼 위험하기 짝이 없다. 좋을 때는 감언이설로 간이라도 빼줄 것처럼 말하다가 이해가 뒤바뀌면 손바닥 뒤집듯이 한다. 개인 사생활이 이중삼중 감시 카메라로 추적당하고 더욱 요지경 속으로 빠져든다. 세상을 요란하게 하는 별의별 동영상들의 진실게임이 꼬리를 물고 생긴다. 참으로 처세하기 힘든 요즈음 세상이다. 인간관계의 험난함은 인심의 가변성에서 나온다. 지금은 저마다 모두 의()를 버리고 이()만 쫓다보니 이렇게 되어버린 세상인심의 불가측성을 알아야 한다.

마지막으로 인정의 엷음이다. 엷음은 다른 말로 하자면 가벼움이다. 가벼운 것은 경박한 것이다. 해동기의 얼음은 비록 두꺼워 보일지라도 사람이 밟으면 으깨져 물에 빠진다. 세상 인정이 봄철 얼음과 같다. 그러니 겉만 보고는 믿을 수가 없다. 사람과 사람의 사귐에 있어 매사에 묵직하게 진중하지 못하고 진솔하지 못하다. 사람들은 처음 만나면 악수를 하고 통성명한 후 명함을 주고받는다. 명함을 받자마자 곧장 머릿속에는 명함에 적힌 타이틀과 직함으로 그 사람의 배경을 헤아리느라 머리회전이 바쁘다. 배경이 어떤지, 재력은 어느 정도일지, 경력과 학력이 나보다 나은지 어떤지, 암중으로 헤아리느라 바쁘다. 그리고 이 사람과 사귐이 나에게 득이 될지 해가될지, 나에게 어떤 도움이 될 수 있을지를 생각한다. 그 사람의 인격과 있는 그대로의 인간에 대하여는 별 관심이 없다.

 

사람과의 만남이 이렇다보니 사귐에 있어서 인정적인 교감을 주고받을 필요도 여유도 없는 세상으로 바뀌어 버렸다. 그래서 세상 사람들은 산업화 이전 시대보다 훨씬 복잡한 인간관계속에서 옛날보다 더 바쁘게, 그리고 훨씬 더 많은 타인들과 교제하면서도 사람과 사람간의 인격적 교감은 없다. 인격적 교감이 없으므로 만남은 많아도 인정이 싹트고 인격을 존중하면서 교우할 기회가 없다. 인간관계에서 기계적 거래와 이해관계의 계산에 의한 교환만 난무할 따름이다. 마치 입속으로 바삐 들락거리는 숟가락이 국물 맛을 모르는 이치와 같다.

 

위에서 열거한 네 가지 잠언은 따지고 보면 인격의 중요성을 일깨운 처세교훈이다. 나의 인격이 소중한 것과 똑같은 비중으로 남의 인격도 소중한 것이다. 내남없이 사람의 인격은 그 자체가 목적이지 결코 수단이 될 수 없다. 그러므로 서로 간에 남의 인격을 수단으로 이용하려 들지 말아야 할 것이다. 인격적인 교제가 점점 사라져 가는 요즈음의 씁쓸한 세태이다.

 

박 인 수

2013. 4.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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