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록파 시인 조지훈의 해학(諧謔)을 잠깐 기억해 볼 수 있어 신났습니다.
청록파 시인 조지훈(芝薰, 본명은 동탁)은 48세의 젊은 나이에 떠났지만 짧은 생애임에도 주옥 같은 “시”를 많이 남겼다. 막걸리를 그렇게 좋아하고 즐겼던 고려대 국문과 교수였으며, 가끔 강의가 끝나면 바로 학생들과 함께 막걸리집에서 후담(後談)을 즐겼다.
그런데 실은 그의 시작품도 훌륭했지만 동서고금의 해학(諧謔) 우스개 잡담도 “시” 못지않게 유명해서, 산만한 듯 하면서도 조리 있고, 육두문자 같으면서도 지혜롭고 품위 있는, 그의 유머는 세상 사람의 화제꺼리였다.
1. 그의 강의에는 음담패설도 자주 등장했다.
아호(雅號)인 지훈(芝薰)의 유래에 대해 이 얘기를 했다 한다. 그가 스스로 밝힌 내용이다.
내 호가 처음에는 "지타(芝陀)"였지. 마침 여자고등학교 훈장으로 (경기여고 국어선생) 갔는데 내 호를 말했더니 학생들이 얼굴을 붉히더군.
그래서 곰곰이 생각하니 "지타"라는 아호가 뜻이야 아주 고상하지만 성과 합성하니까 발음이 "조지타"가 되는데 그들이 내 호에서 다른 무엇(?)을 연상했나 봐. 그래서 할 수 없이 "지훈"으로 고쳤어.
2. 어느 날 그는 강의 중에 이런 예화를 들었다.
옛날에 장님 영감과 벙어리 할멈이 부부로 살았는데 마침 이웃집에 불이 났어. 할멈이 화들짝 방으로 뛰어 들어오자 영감이 "무슨 화급한 일이냐?"고 물었어. 할멈은 영감의 두 손으로 자기 젖무덤을 만지게 한 후, 가슴에다 사람 인(人)자를 그었대. (→火) 그러자 영감이 "불났군?"하면서 “누구네 집이야”라고 다급하게 물었지. 그러자 할멈은 영감에게 입맞춤을 했대. 그러자 영감은 "뭐? 여(呂)씨 집이!"라고 하면서 놀란 후, “그래, 어느 정도 탔나?" 라고 물었다나. 할멈은 영감 남근(男根)을 꽉 잡았대. 그러자 영감은 "아이고, 다 타고 기둥만 남았군." 했다더군.
3. 하루는 학생들에게 한자(漢字)의 파자(破字)에 대해 질문했다.
"달밤에 개가 징검다리를 건너는 글자는?
--"그럴 ‘연(然)’자입니다."
"나무 위에서 ‘또 또 또’ 나팔 부는 글자는?
--"뽕나무 ‘상(桑)’자입니다
"그럼, 사람이 외나무다리를 건너는 글자는?"
--“그것은 모르겠습니다.”
"자네도 참, 그렇게 쉬운 글자도 모르다니 그건 말이야. 한글 '스' 자라네.”
조지훈은 또 장난 삼아 "주도(酒道) 18단계"라는 것을 제정했는데 이게 또한 박수깜이었다. 기절초풍이었다.
1. 부주 (不酒) : 될 수 있으면 안 마시는 사람.
2. 외주 (畏酒) : 술을 겁내는 사람.
3. 민주 (憫酒) : 취하는 것을 민망하게 여기는 사람.
4. 은주 (隱酒) : 돈이 아쉬워 혼자 숨어서 마시는 사람.
5. 상주 (商酒) : 잇속이 있을 때만 술을 마시는 사람.
6. 색주 (色酒) : 성생활을 위해 술을 마시는 사람.
7. 수주 (睡酒) : 잠을 자기 위해 술을 마시는 사람.
8. 반주 (飯酒) : 밥맛을 돋우기 위해 술을 마시는 사람.
9. 학주 (學酒) : 술의 전경을 배우는 사람. 주졸(酒卒)
10. 애주 (愛酒) : 취미로 술을 맛보는 사람. 주도(酒徒) 1단
11. 기주 (嗜酒) : 술의 진미에 반한 사람. 주객(酒客) 2단
12. 탐주 (耽酒) : 술의 진경을 체득한 사람. 주호(酒豪) 3단
13. 폭주 (暴酒) : 주도를 수련하는 사람. 주광(酒狂) 4단
14. 장주 (長酒) : 주도 삼매에 든 사람. 주선(酒仙) 5단
15. 석주 (惜酒) : 술을 아끼고 인정을 아끼는 사람. 주현(酒賢) 6단
16. 낙주 (樂酒) : 술과 더불어 유유자적하는 사람. 주성(酒聖) 7단
17. 관주 (觀酒) : 술을 보고 즐거워하되 이미 술을 마실 수 없는 지경에 이른 사람. 주종(酒宗) 8단
18. 폐주 (廢酒) : 일명 열반주, 술로 인해 다른 세상으로 떠난 사람. 9단
(그는 10단계부터는 단위를 부여했어요)
그는 “언제나 즐겁고 신나게 사는 것”은 권리라고 늘 말했었다.
다음 기회가 되면 막걸리에 대한 그의 이야기를 또 털어 놓겠습니다.
수채화아티스트/기도에세이스트/칼럼니스트 제임스로부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