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녀와 시련에 대처하는 방법이 있습니다.
한 젊은 딸이 어머니에게 자신의 삶에 대해 이야기를 했다. 사는 게 너무 힘들어서 이제 그만 두 손 들고 싶다고 했다. 어머니는 딸을 데리고 부엌으로 갔다. 냄비 세 개에 물을 채웠다. 그러고는 첫 번째 냄비에는 당근을, 두 번째 냄비에는 달걀을, 세 번째 냄비에는 커피를 넣었다.
어머니는 냄비 세 개를 불 위에 얹고 끊을 때까지 아무 말도 없이 있었다. 한동안 시간이 지난 후 어머니는 불을 끄고 딸에게 당근을 만져 보라고 했다. 당근을 만져보니 부드럽고 물렁했다. 그런 다음 어머니는 달걀 껍데기를 벗겨보라고 했다. 껍데기를 벗기자 달걀은 익어서 단단해져 있었다. 마지막으로 어머니는 딸에게 커피 향내를 맡고 그 맛을 보라고 시켰다. 띨은 커피 향을 맡고 한 모금 마셨다.
어머니는 설명했다.
“이 세 가지 사물이 다 역경에 처하게 되었다. 끊는 물이 바로 그 역경이지. 그렇지만 세 물질은 전부 다 다르게 반응했단다. 당근은 단단하고 강하고 단호했지. 그런데 끊는 물과 만난 다음에 부드러워지고 약해졌어. 달걀은 연약했단다. 껍데기는 너무 얇아서 안에 들어 있는 내용물을 보호하지 못했다. 그렇지만 끊는 물을 견디어내면서 그 안이 단단해졌지. 그런데 커피는 독특했어. 커피는 끊는 물에 들어간 다음에 물을 변화시켜버린 거야.”
그리고 어머니는 딸에게 물었다.
“힘든 일이나 역경이 네 문을 두드릴 때 너는 어떻게 반응하니? 당근이니, 달걀이니, 커피니? 나는 강해 보이는 당근인데 고통과 역경을 거치면서 시들고 약해져서 내 힘을 잃었는가?”
“나는 유순한 마음으로 시작했지만 열이 가해지자 변하게 된 달걀일까? 전에는 유동적인 정신을 지니고 있었지만 죽음과 파경과 재정적인 고통이나 다른 시련을 겪은 후에 단단해지고 무디어졌을까? 껍데기는 똑 같이 보이지만 그 내면에서는 내가 뻣뻣한 정신과 굳어버린 심장을 지닌 채 쓰디쓰고 거칠어진 것은 아닐까?”
“아니면 나는 커피와 같을까? 커피는 실제로 고통을 불어온 바로 그 환경인 뜨거운 물을 변화시켰다. 물이 뜨거워졌을 때 커피는 독특한 향기와 풍미를 낸 것이다. 만약 내가 커피와 같다면 그럴 때 내 자신이 더 나아지고 주위 환경까지 바꾸어 놓을 수 있다. 어둠 속에서 시련이 극도에 달했을 때 나는 다른 레벨로 상승할 수 있을까?”
아침 출근하기 전까지 얼마간의 시간의 여유가 있을 때 자녀에게 읽어 주었던 글입니다. 자녀에게 한번쯤 다가온 사춘기라는 속앓이가 있는데, 하나의 산을 넘으면 또 하나의 산봉우리가 앞에 나타난다더니, 딱 그 말이 맞습니다. 똑 같은 고민으로 많이 힘들어했던 기억이 있습니다.
부모님에게 가장 듣기 싫었던 얘기가 무엇인지 찾아냅니다. 부모님이 나에게 그렇게 말했을까? 다시 생각합니다. 받았던 상처는 주지 말라고, 그리고 지금 느끼는 이 기분을 진실되게 말하자고, 그럼 통할 수도 있겠구나 하고 생각했습니다.
수채화아티스트/기도에세이스트/칼럼니스트 제임스로부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