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투른 영어가 부모 세대를 붙잡고 있나 봅니다.
“부모의 영어가 서툴면 자녀성장에 걸림돌이 될 수 있다. 고로 조금이라도 영어 배우자”라는 제목의 기사를 읽은 적이 있습니다. 많은 부모들이 영어 때문에 뉴질랜드 사회에서 푸대접 받는 것도 서러운데 자신으로 인해 아이들까지 영향을 미친다는 생각에 가슴을 쳤을 것을 것입니다.
영어. 어느 날 아침, 갑자기 혀가 풀리는 기적이 일어나지 않는 한 영원히 우리를 괴롭힐 화두, 영어일 것입니다. 명색에 현지 직장에 다니고는 있어도 아직도 나는 영어 때문에 괴로운 것입니다. 업무지시는 물론이요, 하루에도 몇 통씩 날라오는 이메일을 해석하고 이해하고 따라 가기에는, 그리고 가끔씩 열리는 회의에서 내 의견을 피력하고 개진시키기엔 나의 영어실력이 너무나 딸렸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참 공평도 하시지, 딸리는 영어 실력 대신에 내게 남 보다 빠른 “눈치”를 주셨습니다. 영어 단어 몇 개를 대충 꿰어 맞추고 눈치로 때려 잡아가면서 여지껏 아무 탈 없이 버티고 있습니다.
따지고 보면 지렁이가 용 되었습니다. 처음 이민 온 몇 년 동안은 혹시 뉴질랜드 사람일까 봐 전화도 마음대로 못 받았었습니다. 자동응답기를 켜 놓고 한국사람이 용건을 남기기 시작하면 그때서야 수화기를 들었을 정도이었습니다. 뉴질랜드사람과는 대화는 물론 인사말도 못 나눌 형편이었는데, 기를 쓰면 간단한 대화 정도야 가능했었겠지만 뉴질랜드사람과 나를 가로막은 것은 뭐니 뭐니 해도 두려움이었습니다. 어줍지 않게 한마디 했다가 상대방이 못 알아들으면 창피해서 어쩌지, 하는 두려움이 있었고, 활달하고 사교성 많은 나였지만 그 두려움을 없애는데 2년이 걸렸습니다. 영어의 장벽은 그만큼 두꺼웠습니다.
현재는 그래도 생활영어 정도야 막힘 없이 술술 하지만, 보다 전문적인 대화를 요할 때는 지금도 딱 막히기도 합니다.
어쩌다 이야기를 하다 보다면 영어로 한국정세까지 토론할 자신이 없는 나는 딱 죽을 맛이지만, 그래도 내 나라에 관심을 가져주는 친구들이 고마워서 더듬거리며 혼신의 힘을 다해 상대를 해주기도 했습니다. 그런데, 하루는 친구가 “북한 김정일이가 미사일(Missile)을 보유하고 있다는데 한반도에 전쟁의 위험이 없느냐”고 물어오는데 기가 딱 질리고 말았습니다. 글쎄, 뭐라고 하지? “미군이 주둔하는 한 전쟁위험은 없으며 현재 북한은 세계적으로 고립된 상태로 이 판에 전쟁까지는 생각 못 할 것이다.”를 영어로 뭐라고 설명하지? 얼굴까지 벌개지며 머리를 쥐어짜다 궁여지책으로 내 입에서 나온 말이 "나는 엄연히 뉴질랜드 시민권을 가진 사람이라 북한에까지 관심을 잘 안둔다. 고로 잘 모르겠다"고 답할 뿐이었습니다. 참으로 부끄러운 일이 아닐 수 없었으며, 뉴질랜드에서 14년 이상을 산 내가 그 정도의 영어도 술술 할 수 없다는 것이 슬프기도 했습니다.
한 때 영어 잘하는 사람이 내게는 “신”처럼 비춰진 적 있습니다. 아무리 머리를 쥐어짜고 노력해도 안되는 영어를 어쩌면 그들은 저렇게 아무 막힘 없이 잘 할까 싶어 아닌 게 아니라 그들이 “신” 같아 보였습니다.
그런데 3개국 언어를 아주 정확하게 구사하는 사람들이 몇몇 있습니다. 꿈도 꾸지 않을테니 제발이지 영어 한가지만이라도 막힘 없이 하고 싶은 나는 그들을 볼 때마다 부러움을 넘어 거의 경외에 가까운 존경을 보냅니다. 영어 익히는 데는 뉴질랜드 텔레비젼 시청이 좋다고 해서 시간 날 때마다 뉴질랜드 TV1, TV3, TV Prime 뉴스와 SKY TV 뉴스 6개 채널을 보려고 애를 쓰고 있습니다. 영어를 익히려면 텔레비젼 시청 만한 게 없다니 우리도 끈기로 습관적이라도 지속해봄이 어찌하리요.
남들은 재미로, 여가로 보는 텔레비젼을 나는 큰 짐을 지고 숙제하는 것처럼 억지로 봐야 하는데 텔레비젼 앞에 앉을 때 마다 긴장을 갖고 보게 됩니다. 이 시간에 차라리 낮잠을 자든지 쇼핑을 가면 얼마나 좋을까, 싶은 생각에 빠져들게 되곤 합니다
진짜 영어가 사람 잡는다니, 하여튼 지금부터 시작이 반이라 생각했습니다. 배우고 있습니다. 공부는 뇌의 활동으로 치매방지에도 효과가 좋다고 합니다.
수채화아티스트/기도에세이스트/칼럼니스트 제임스로부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