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불암은 “전원일기”와 “수사반장”을 통해서 자신만의 캐릭터를 확립시킨 연기자입니다. “전원일기”의 김 회장은 4대를 거느리는 가장으로, 소박하지만 때로는 엄격하기도 해서 가부장적 권위로 가족을 이끌어갑니다. 이 가정에서는 “아버지의 판단”이 가족의 평화와 질서를 이어가는 최고의 규범이고 제도입니다.
또한 “수사반장”의 박 반장 역시 미궁을 헤매는 범죄 사건을 직관력과 판단력으로, 그리고 단호함으로 해결해 정의를 바로 세우는 캐릭터로 묘사됩니다.
그러나, 이 두 캐릭터는, 부정과 부패와 특권 등 구조적인 부조리가 판치던 1970년대와 1980년대 군사독재 정권하의 정치적 암흑 현실이나 침체의 나락으로 떨어진 농촌경제, 그리고 개인주의의 팽배로 전통적인 가족이 급격히 해체되는 사회현상과는 크게 유리된 묘사였습니다.
또 이것은 80년대 ‘질풍노도의 시대’에 뒤이은 90년대 신세대들의 생활양식과 사고방식과는 상당히 거리가 멀어서, 곧 최불암의 캐릭터와 사회현실 사이의 괴리로 인한 허무감이 해학적으로 억눌린 현상을 표현해 보고자, “최불암 시리즈”가 90년대부터 유행했던 것입니다.
어느 날, 최불암이 미술시험을 보게 됐는데, 조각품 “생각하는 사람”을 만든 작가의 이름을 쓰라는 문제가 있었습니다. 최불암은 아무리 해도 그 작가를 알 수 없었습니다. 답을 모르기는 최불암의 바로 옆 친구도 마찬가지였습니다. 그 친구가 다른 옆 친구의 시험지를 살짝 커닝해보니 “로댕”(Rodin)이 답이었습니다. 그러나 급히 보느라 그만 흘려쓴 “ㄹ”을 “ㅇ”으로 읽어버렸습니다. 그래서 그 친구는 “생각하는 사람”의 작가를 ”오뎅”이라 적었습니다. 최불암 또한 옆 친구의 시험지를 곁눈질해 보니 답이 ‘오뎅’이라고 쓰여 있질 않은가? 문득 자기도 “오뎅”이라고 똑같이 쓰면 친구 답안지를 베껴쓴 것을 선생님이 알아차릴 것 같았습니다. 그래서 최불암은 “생각하는 사람”의 작가를 “덴뿌라”(テンプラ: 튀김)라고 적었다는 이야기입니다. 유머적이며 풍자적인 저항이었습니다. 또한 그 당시 막걸리도 서민적 저항을 담고 있었습니다. 하여튼 “오뎅”(御田: Oden)이란 “꼬치안주”라는 의미인 것입니다.
그러나, 매번의 칼럼은 유머와 해학과 풍자적인 마음으로 쓰고 있는 것입니다. 이번 칼럼을 끝내기 전에 아끼고 숨겨두었던 막걸리집 하나를 소개합니다.
서울 수도권 2호선 사당역에서 과천방향으로 나가자마자, 우회전해서 50m 들어가 골목 안으로 좌회전하면, ”부산오뎅”이라는 정말로 기가 막힌 맛집으로, 오뎅집도 아니고 덴뿌라집도 아닌, 서민들에겐 어울리는 어묵집이 하나 있습니다. 서늘한 바람에 옷깃을 여미고 들어가 뜨끈한 어묵국에 “꼭 막걸리 한 주전자”이면 온몸이 확 풀어집니다. 한번 추천하고 싶은 곳입니다. 그러나 지금도 있는지는 궁금합니다. 비가 올 때면 “비닐우산”을 팔짱에 끼고 문 열며 “한 주전자 주시오.”하면 “어서 오시오.”하던 주인아줌마의 목소리가 아주 가까이 들리곤 했습니다.
수채화아티스트/기도에세이스트/칼럼니스트 제임스로부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