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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일수
2011.09.06 18:37

추석 대보름 달 감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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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석 대보름 달.jpg추석 대보름 달 감상



한일수(경영학 박사/칼럼니스트)


고국을 떠나 뉴질랜드에 이주해 온 이민 1세대들이나

여기에서 태어난 2세들 모두 이 나라에서 많은 혜택을

누리며 살고 있다. 받은 빛을 반사하여 다른데 비춰주는

재생산적인 삶을 살아야……


태양이 남성이라면 달은 여성이다. 달은 열이 없고 하얗게 빛나는 느낌 때문에 차가움, 냉정함, 냉혹함, 외로움 등의 부정적인 이미지를 갖기도 한다. 이역만리(異域萬里) 타국에 와서 따뜻하게 정붙이고 살아갈 동기간이나 동료가 없이 냉혹한 현실에서 살아가야 하는 이주자들의 처지를 생각해 본다. 유난히도 밝고 청순한 뉴질랜드의 달을 바라보며 고국에의 향수를 달랠 수 있기도 하다. 해마다 맞는 추석이지만 산업 사회의 서울 생활에서 맞이했던 추석은 농경 사회의 어린 시절의 그것과는 판이했다. 더욱이 정보화 사회의 시골 같기도 하고 도시 같기도 한 이곳 뉴질랜드에서 맞는 추석은 어떤가? 지난날에의 그리움과 착잡함이 교차하면서 야릇한 감상을 자아내기도 한다.


매일 같은 모습으로 뜨고 지는 해와는 달리, 차면 기울고 기울었다가 다시 차는 달이다. 완전히 기울면 그 모습을 감추어 버리기도 하나 사흘 후에 다시 나타난다. 생물이나 사물의 탄생, 성장, 성숙, 포화, 쇠퇴, 소멸의 이치와 같다. 그러나 없어졌던 달이 사흘 후에 다시 나타나 앞의 과정을 반복함으로서 재생(再生)과 영생(永生)을 가르쳐주고 있다. 또한 달의 변화는 밀물과 썰물, 사리와 조금을 주관하기 때문에 힘의 지배자를 상징한다. 서울에서 잃었던 달을 다시 찾게 되고 바다와 가까이 하고 있는 이곳 뉴질랜드 생활은 고향의 정서를 느끼기에 충분하다.


오후 5시면 퇴근해서 6시 뉴스를 보고 7시면 잠자리에 들기 시작하는 서양인들이 달에 대한 특별한 감흥이 있을 리 만무하다. 그들이 우리 조상 대대로 수천 년 동안 내려온 정월 대보름이나 팔월 한가위에 대한 우리의 정서를 이해할 리도 없다. 어쩌다 달을 마주치고는 ‘Beautiful’ 한마디 하면 끝이다. 목축업을 주로하는 이동문화에서 자율적 개인주의가 확립된 그들은 농업 중심의 정주(定住)사회에서 집단생활에 익숙해온 우리와 다르다. 음력의 절기를 따라 농사를 짓고 고기잡이를 했던 우리의 조상들은 차고 기우는 달의 변화만큼이나 질긴 생활의 애환을 겪으며 살아 왔다.


달은 그 빛이 부드럽고 물기를 머금은 느낌으로 여성적인 서정성을 더해주고 있다. 달빛을 받아 그 자태를 보이고 있는 여인의 모습 앞에서 냉정해질 수 있는 남성은 없다. 오랫동안 한국인의 가슴속에 침잠(沈潛)되어오고 있는 문학 작품이나 노래에는 항상 달밤이 같이하고 있다. 이효석의 「메밀꽃 필 무렵」에 전개되는 달밤의 정경을 아오테아로아의 하늘아래서인들 어찌 잊을 수 있으랴. 이러한 소중한 재산을 회상하며 촉촉한 대지 위에 푸른 잎을 더해 가는 삶 속에서 건조한 진흙 땅 위에서 말라져 가는 초목을 연상할 수 는 없으리라.


달을 여성에 비유한 나도향의 「그믐달」은 섬세한 감성을 일깨워 주고 있다. “그믐달은 너무 요염(妖艶)하여 감히 손을 댈 수가 없을 만큼 깜찍하고 예쁜 계집 같은 달인 동시에, 가슴이 저리고 쓰리도록 가련한 달이다. 서산(西山) 위에 잠깐 나타났다가 숨어 버리는 초승달은 세상을 후려 삼키려는 독부(毒婦)가 아니면 철모르는 처녀 같은 달이다. 보름의 둥근 달은 모든 평화와 숭배를 받는 여왕 같은 달이지마는, 그믐달은 애인을 잃고 쫓겨남을 당한 공주와 같은 달이다.”


달의 여성적이고 정적인 이미지에 매몰되어 감상에 젖는 것도 현대 사회에서 바람직한 일은 아니다. 무엇보다도 우리가 속해 있는 이곳 사회에서 여성의 지위나 역할이 차지하는 실체를 인식할 일이다. 이곳 여성은 자율적이고 강하며 베풀며 살아간다. 인종과 굴종의 멍에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평생 동안 회한(悔恨)의 눈물을 흘리며 희생만 당하던 조선시대의 여인이 아니다. 달이 가지는 상징적 의미를 달리 해석할 필요가 있다.


달은 자체적으로 빛을 발할 수 없다. 햇빛을 받아 그것을 반사하여 지구에 보내 준다. 만일 달의 이와 같은 재생산적인 역할이 없다면 우리는 칠흑 같은 어둠의 밤을 가질 수밖에 없다. 삶의 폭은 그만큼 제한되고 감성은 그만큼 메말라질 것이다.


태어난 곳을 떠나 뉴질랜드에 영주하고 있는 이민 1세대들이나 여기에서 태어나 자라가고 있는 2세대들이나 많은 혜택을 받고 살아가고 있는 게 사실이다. 받은 빛을 전부 흡수해버릴 것이 아니라 반사하여 다른데 비춰주는 재생산적인 삶을 생각할 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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