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맙습니다. 사랑합니다.
얼마 전 김수환 추기경의 2주기(2월16일)를 지냈습니다. 2년 전, 김 추기경께서 선종하셨을 때, 우리나라는 그야말로 ‘김수환 추기경 신드롬’에 휩싸였습니다. 종교나 이념의 차이를 뛰어넘어, 모두 한 마음으로 그분을 기렸고, 추모의 물결 또한 끝없이 이어졌습니다.
어느 외국인은, 일찍이 가톨릭국가에서도 이런 일은 없었다면서, 이렇게 애절하게 추모할 수 있는 가톨릭 지도자를 가졌던 한국 국민이 부럽다는 말을 하기도 했습니다. 그럴 정도로 김수환 추기경을 보내는 우리 사회의 상실감은 참으로 크고도 깊었습니다.
이러한 상실감은, 우리 사회를 비추어 주는 거울이기도 했습니다.
우리 사회가 남을 배려하기보다, 자신의 이익을 먼저 챙기고, 남을 인정하기보다 스스로 인정받고 싶어하고, 겸손보다 자신을 드러내고 홍보해야 하는 무한경쟁의 각박함이 두드러지다 보니, 더욱 그분의 소박하고 겸손한 삶이 크게 부각된 것입니다. 언제나 약한 자들을 배려하고 그들의 편에 섰던 추기경님께서는, 돌아가시기 전에 ‘고맙습니다. 사랑합니다.’라는 말씀을 유언으로 남겼습니다.
‘감사’와 ‘사랑’ 그 두 가지만 제대로 이루어진다면, 세상은 한층 더 아름답고 사람들은 진정 행복하게 되리라는 믿음에는 의심의 여지가 없습니다. 하지만 하루에도 몇 번씩 널뛰는 것처럼 마음이 흔들리는 쪼잔한 우리들이, 평정심을 유지한 채, 언제나 감사하고 사랑하기란 쉽지 않은 일 같습니다.
어떤 분이 말씀하기를, 묵주기도를 바치며 운전을 하는 중인데, 옆에서 끼어든 다른 차량을 향해 욕설이 튀어나오더라는 겁니다. 자신이 기도하고 있던 중인 것도 망각한 채, 본성적으로 욕을 했던 그분은 스스로 자신에게 실망했다지만 어디 그분만 그렇겠습니까. 그게 삶이겠지요.
감사하고 사랑하는 마음이 저절로 생긴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의외로 많습니다. 그러나 그렇지가 않습니다. 예수님께서도 말씀하셨지만, 자기를 사랑하는 사람을 사랑하는 것은 쉬운 일입니다. 상대방이 나에게 어떻게 대하든 상관없이 오로지 나의 마음으로 감사하고, 사랑하는 용기를 발휘하는 것이 얼마나 어렵고 힘든 일인지 잘 아실 겁니다. ‘감사’와 ‘사랑’은 저절로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 어쩌면 진정한 용기가 필요한 행위인지도 모르겠습니다.
고 김수환 추기경님께서 원하신 ‘감사하고 사랑하는’ 것은 바로 이런 내용일 것입니다. 여전히 흔들리는 나 자신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시 한 번 힘을 내어, 감사하고 사랑하기를 결심해야 할 것 같습니다. 생활 속에 김추기경님의 유지를 받들어, 자주 ‘고맙습니다. 사랑합니다.’라는 말씀을 되새김하며 살아야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