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의 점검
한 해를 시작한 지가 엊그제 같은데 벌써 반년을 살았습니다. 이 즈음해서 우리는 지나온 시간을 되돌아보고 잠깐이나마 그 시간을 한 번 점검해 보는 것도 좋을 듯 싶습니다. 연초에 한 해를 계획하며 수첩에 정리했던 여러 가지 일정들을 들여다보니 해야 할 일들이 많이 적혀 있었습니다. 사람을 만나고, 각종 회의와 모임이 적혀 있고, 식사 약속도 있고 이런 저런 기념일도 군데군데 적혀 있습니다.
간혹 ‘이런 약속은 언제 했더라?’ 하는 난감한 일도 있었습니다. 그리고 잊어버리고 지나쳐버린 약속과 다짐들도 있었습니다. 그래서 요즘은 아이폰의 도움으로 타인과의 약속은 잊지 않고 지켜지고 있습니다. 그런 반면, 더욱 난감하고 속상한 것은 나 스스로에게 한 다짐과 계획은 예사롭게 지나쳐버리고 흘려버린 경우가 많았습니다. 타인과의 다짐과 약속도 중요하지만 나 자신과의 다짐과 약속도 중요하다는 것을 새삼 느낍니다. 수첩 속에는 시간 뿐 아니라 사람의 이름도 많이 적혀 있었습니다. 때로는 정확하게 적어놓지 않고 대충 본명만 적어 놓았을 경우에 ‘누구더라?’ 하는 이름도 있습니다.
그 순간에는 대충 메모를 해도 알 수 있을 것 같았는데, 시간이 흐르고 나니 그가 ‘누구더라?’라는 생각이 드는 것입니다.
어쩌면 ‘누구더라?’ 하는 그가 예수님의 모습으로 내게 오셨던 분은 아니었을까라는 생각도 해 봅니다. 그 또한 분명 제 삶의 한 부분을 채워준 고마운 인연이었을 것입니다.
이제 올 한 해, 수첩에 담긴 제 삶의 나머지 시간을 채우는 일이 남아 있습니다.
지나간 시간들을 되돌아보니 새삼 감사로 다가옵니다.
기쁨과 즐거움, 행복, 후회, 아쉬움, 섭섭함 등 지나간 시간 속에서 겪었던 온갖 삶의 희로애락이 앙금처럼 고스란히 남습니다. 지나간 시간에 연연할 필요는 없지만, 그렇다고 잊어버리거나, 버려서도 안 될 것 같습니다.
왜냐하면 지금의 나를 있게 한 시간과 일들이었기 때문입니다. 이는 앞으로 남은 올해의 반을 살아갈 밑거름이기도 합니다.
이제부터 살아갈 시간은 지나간 시간보다는 좀 더 성실하게 채워가고 싶습니다. 그렇다고 욕심을 부려 뭔가를 잘해보겠다는 호언장담이나, 어떤 일에 대해 성과를 올릴 계획이나 다짐은 하지 않겠습니다.
못나고 부족하지만 묵묵하고 성실하게 살고 싶습니다. 누군가를 더 사랑하고 존경하며 살았으면 좋겠고, 누군가에게 기쁨을 주고 위로를 줄 수 있는 마음으로, 기쁘고 즐거운 자신이 되고 싶습니다. 앞만 보고 걷기보다 주변을 두루 보면서 묵묵히 걸어가고자 하는 마음을 다져봅니다.
박노해 시인은, “좋은 일이 있고 나면 키가 한 뼘 자라나고, 나쁜 일이 있고 나면 나이테가 하나 늘어난다. 기쁜 일이 있고 나면 꽃이 하나 피어나고, 슬픈 일이 있고 나면 별이 하나 떠오른다.”고 했습니다.
좋은 일이든, 궂은 일이든, 기쁘든 슬픈 일이든 뭐든 다 주님의 섭리가 있음을 인정하고 받아들이는 마음으로 남은 올 한 해를 채워가자고 말씀드리고 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