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 우리가 평화로 가는 통로가 되게 하여 주소서. (Make Us A Channel Of Peace)
우리가 뉴질랜드 땅에 사는 동안에, 사람답게 사는 것(Wellbeing), 사람답게 늙는 것(Wellaging), 그리고 사람답게 죽는 것(Welldying)을 실천하고자, “아름답게 늙어 가는 것”입니다. 인생의 4분의 1은 성장하면서 보내고, 나머지 4분의 3은 늙어가면서 보낸다고 합니다. “사람이 아름답게 죽는다”는 것은 꽤 어려운 일입니다. 그러나 보다 어려운 것은 “아름답게 늙는 것이며, 행복하게 늙어가는 것”이 쉽지 않은 일입니다. 농사는 금년에 실패하면 내년에 잘 지으면 됩니다. 대학은 금년에 실패했으면 재수하고 내년에 잘 들어가면 됩니다. 이번 올림픽에서 금메달을 놓쳤으면 다음 올림픽에 기회가 있습니다. 그러나 인생은 단 한번뿐입니다. 한번 실패하면 끝입니다.
1. 우리는 나이가 들수록 “열정”을 잃지 않아야 합니다. (Passion)
특히 핵심적인 요소는 열정입니다. 일을 잘 하는 것이 잘 사는 것입니다. 10시간 춤을 출 수는 없어도 20시간 일을 할 수 있습니다. 일에 대한 열정을 가지면 항상 젊게 살 수 있습니다. 일을 즐기는 사람은 자연 나이가 소용이 없습니다. 모세는 80세에 민족을 위해 새로운 출발을 하였습니다. 노년기에 열정을 가지면 위대한 업적을 남길 수 있습니다. 나이 들면 여기에는 4가지 고통이 있습니다. 즉, 질병, 고독감, 빈곤, 그리고 역할상실(Role Loss)을 말할 수 있습니다. 이 모두를 극복하고 노년을 초라하지 않고 보내려면, “사랑, 여유, 용서, 아량, 그리고 부드러움”도 가슴에 품어야 합니다.
2. 우리가 대인관계를 잘 하려면 하나님 중심으로 가져야 합니다. (Interpersonal Relationships with God-Centeredness) 이기주의를 버리고 노욕을 버려야 합니다. 나이 들면 욕심이 강해집니다. 그러므로, 자기중심적으로 생각하고 폭군 노릇을 하게되는 자기도취에 빠지는 자기애(Narcissism)를 버려야 하고, 비관적인 운명론(Fatalism)을 버려야 합니다. 그렇게 하려면, 우리 중심의 축이 변화가 되어야 합니다.
1) “물질 중심”의 인간관계를 버려야 합니다. 나이 들수록 초라해집니다.
2) “일 중심”이나 “나” 중심의 인간관계를 버려야 합니다. 나이 들수록 초라해집니다.
3) “타인 중심”의 인간관계(Human Relationship)는, 나이 들수록 찾아오는 사람이 많으며 따르는 사람이 많아집니다.
4) 그러나, 최고 좋은 풍요로운 인간관계는, “하나님 중심”의 인간관계인데, 이는 “변함없는 가치관(Unwavering Value)”을 갖게 해주며, 이것이야말로 “Wellaging(사람답게 늙는 것)”이 되는 것입니다.
3. 우리가 “Wellaging”을 위한 하나님과의 관계가 중요하므로, 나이 들면 “신앙의 여부”가 “삶의 질”을 높여주며 하나님을 의지해야 하며, 이렇게 하면 정신 연령과 영적 연령이 젊어지게 됩니다. 믿음에 따르는 삶 속에서 “그러므로 우리는 낙심치 않습니다. 외적인 인간은 쇠퇴해 가더라도 우리의 내적인 안간은 나날이 새로와집니다.”(고린도후서 4:16) “네게 힘을 주시는 분 안에서 모든 것을 할 수 있습니다.”(빌립보서 4:13) 우리는 결승점에 가까워질수록 하나님을 의지하고 최선을 다해 뛰는 것입니다.
인생의 주기를 보면 내리막길이 있더라도 그러나 천국을 향해 “새 인생”을 시작할 때입니다. 그러므로, 우리의 생애를 Wellbeing하며, Wellaging으로 살다가, Welldying으로 마쳐야 합니다. 늙어서 죽지 말고 낡아서 죽을 수 있어야 합니다. 나이가 많아져서 은퇴하는 것이 아니라 일을 다하고 물러나야 합니다. 늙음이 낡음이 아닙니다. 계속 성장하여야 합니다. 그래야 우리는 다문화 커뮤니티 안에서 이웃과 친구와 평화를 지키고 살아가는데 최선을 다할 수 있으며 우리가 스스로 평화로 가는 통로(Channel)와 가교(Bridge)가 될 수 있습니다.
마지막까지 열정을 갖고 하나님을 의지한 모세는, 죽을 때 나이가 120세이었지만(신명기 34:7), 눈이 흐리지 않았고, 기력이 쇠하지 않았습니다. 생애의 후반기는 여생(餘生)이 아니라, 동일한 열정을 펼쳐가는 후반생(後半生)이라는 것을 기억해 둘 필요가 있습니다.
수채화아티스트/기도에세이스트/칼럼니스트 제임스로부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