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 막걸리 찬가를 소개합니다.
우리 전통 막걸리에도 “떼루아”(Terroir : 토양)가 있었다는 것을 알고 계시는지요?
막걸리에 대한 모든 것을 알아 보는 것도 재미와 흥분에 사로 잡혔다.
서론 :
Terroir라고 하는 프랑스 단어 자체만의 의미는 토양이라고 하는 의미입니다. 대체로 떼루아는 포도가 심어서부터 와인이 만들어질 때까지의 환경 전체를 말한다고 합니다. 즉 포도가 생육하는 환경이 다르면, 비록 같은 종류의 포도를 심었다고 해도, 완성되는 와인이 다르다는 전제를 말하고 있다. 「토지(토양, 대지) 요소」, 「기후 요소」, 「인적 요소」를 종합한 와인 생산환경일 것이다.
막걸리 시음회(맛보기)도 역시 와인 시음회와 기본적으로 다를 바 없다. 다양한 막걸리를 준비해두고, 잔을 바꿔가며 마시면 된다. 술에 어울리는 음식을 곁들이는 것 역시 마찬가지다. 다른 점이 있다면, 막걸리 시음회에는 와인과 같이 정해진 격식이 없다는 점이다. 먼저 와인의 빛깔을 보고, 향을 맡으며, 입으로 음미하는 식의 룰(Rule)이 있을 리 없다. 아직은 그저 제조 방법이나 생산 지역에 따라 천차만별인 맛과 향의 차이만 구별하면 된다. 전통 안주 외에 퓨전 안주와의 “마리아주”(marriage : 영어의 marriage에 해당하는 불어로, 특히 와인과의 궁합을 의미한다)도 알게 되었다. 막걸리 애호가와 전문가들의 이야기는 보통 사람들이 막걸리에 대해 궁금해 하는 사항에 대답이 될 수 있겠다.
도대체 막걸리란 무엇인가?
일반적으로 고두밥(아주 되게 지은 밥)을 말린 후 누룩과 물을 넣어 발효시킨 술이 막걸리의 원형이다. 이를 흔히 원주 혹은 합주라고 한다. (누룩도가 원주) 이 가운데 맑은 부분을 걸러내고, 탁한 부분이 좁은 의미의 막걸리 원료가 된다. 맑은 부분이 청주이고, 걸러낸 부분이 탁주이다. 이 술의 알콜도수는 대개 15도 안팎이다. 우리가 흔히 마시는 막걸리는 여기에 물을 타서, 알콜성분을 5도 가량으로 낮춘 것이다. 막 걸러냈다고 해서 막걸리라는 이름이 붙었다는 것이 정설이었다. 탁주의 쌀알을 걸러내지 않은 것이 동동주다.
막걸리의 맛은 왜 천차만별인가?
일반적인 제조법만 보면 막걸리의 종류는 제한적일 수도 있다. 그러나 구체적인 제조법은 각양각색이다. 일반적인 쌀로 밥을 지어 제조하는 경우도 있고, 쌀을 찧어 가루로 하는 경우도 있다. 무엇보다도 재료가 쌀이나 밀, 양자 혼합 여부에 따라 종류가 갈린다. 효모를 비롯한 각종 균이 살아 발효가 계속 진행되느냐 여부에 따라 “생막걸리”와 “살균막걸리”로 구분되기도 한다.
70℃ 정도에서 10분 정도 두면 막걸리 내의 균들은 대부분 활동을 못하게 된다. 살균막걸리는 발효가 더 이상 진행이 안되고, 맛이 균일화된다는 장점이 있다. 그러나 막걸리 특유의 톡 쏘는 느낌이 없다. 현재 일본, 미국, 호주 뉴질랜드 등지로 수출되는 막걸리는 현지 규제 때문에 살균막걸리가 대부분이다. 여기에 각종 약재와 과일을 첨가하면 그 맛과 제품은 그야말로 천차만별이다. 한국 각 지역의 물도 막걸리 맛을 좌우하는 요소다. “막걸리의 원료나 제조기술이 엇비슷해지면, 궁극적으로 물맛이 막걸리 맛을 좌우할 가능성이 크다.”고 한다.
생막걸리의 변화무쌍한 맛은 축복일까?
효묘를 비롯한 각종 균이 살아있는 생막걸리는, 우리 어른네 말 그대로 “조석(朝夕)”으로 맛이 달라진다. 제조된 후 발효 과정이 계속 진행되기 때문이다. 특히 기온의 영향을 많이 받는다. 현재 시중에 유통되는 플라스틱 용기의 경우는 여름철에 가장 취약하다. 아예 부글부글 끓는 경우도 허다하다. 이 때문에 대량 생산과 유통이 쉽지 않다. 냉장유통이 해답이지만, 현실적으로 쉬운 것만은 아니다.
그러나 균일화 된 맛을 선보일 수 없는 것도 있지만 여러 환경에 따라, 다양한 맛이 나는 것을 즐기게 하면 된다는 것이다. 품종과 생산 지역, 와인 생산자와 빈티지(포도수확기: 제조연도)를 따지는 와인처럼, 각각의 특성별 맛을 깐깐하게 따지고 구별하는 것을 막걸리 문화로 만들면 된다.
실제 막걸리에도 ‘떼루아’가 있다.
프랑스어로 떼루아(terroire)의 의미는 “토양”이라는 뜻이다. 그러나 실제 의미는 그보다 훨씬 포괄적이다. 와인이 생산되는 여건, 즉 토양과 기후, 자연 조건, 그리고 생산자들의 손맛 등을 모두 포함한 개념이다. 와인의 맛과 향을 결정짓는 것은 바로 이 떼루아라는 인식이 널리 퍼져 있다. 여러 와이너리에서 생산된 와인의 맛과 향이 크게 다른 것도 바로 이 때문이라는 것이다. 한국에 와인문화의 형성에 크게 기여한 떼루아에 대한 관심이 큰 반면, 이제야 “막걸리야말로 떼루아라는 말이 가장 적합한 술”이라고 주장한다. 생산자마다 제조법이 조금씩 다르고, 원료가 각기 다르고, 생산지역의 물을 포함해 기후환경이 막걸리의 맛에 결정적이기 때문이다. 막걸리 맛은 소주, 위스키 같은 증류주나 맥주 같은 발효주와도 비교도 안 될 정도 탁월하다.
막걸리의 원형, 이화주(梨花酒)를 아십니까? 쌀로 빚은 탁주 원액이며 막걸리의 원형입니다.
고려시대 사서에도 이화주라는 용어가 등장한다. 쌀로만 빚은 탁주 원액이다. 막걸리와 달리 물을 타지 않고, 재료가 삭는 과정에서 수분이 생긴다. 걸쭉한 형태에, 맛은 씁쓰레하다. 이화주라는 이름은 배꽃(梨花)이 필 무렵 담근다고 해서 생겨났다. 고려 이후에는 이화주를 담그는 철이 따로 없었다. “이화주가 훗날 다양한 탁주로 분화했다는 점에서, 막걸리의 원형으로 보는 것이 맞을 것”이라고 주장한다. 현재 한 국산주 제조사가 운영중인 전통 주막에서 개발 판매 중이다.
세대별로 좋아하는 막걸리 맛이 따로 있다.
맛에 대한 세대별 선호도 차가 큰 편이다. 이미 막걸리에 익숙한 기성세대는 비교적 쓴 맛을 좋아한다. 그 가운데는 밀 막걸리만 고집하는 경우도 있다. 쌀 막걸리조차 지나치게 맑고 담백하다는 이유에서다. 오랫동안 밀 막걸리의 술 맛에 길들여져서다. 반면 신세대는 톡 쏘는 청량감을 중시한다. 게다가 단 맛을 선호한다. 일부 막걸리 제조사들이 더덕이나 인삼을 비롯해 각종 과일을 첨가한 신제품들을 잇달아 선보이는 이유도 여기 있다. 전통주 제조로 유명한 국순당은 아예 아스파탐을 첨가한 신세대용 생막걸리를 출시할 예정인가 보다. 아스파탐은 쓴 맛을 줄여주고, 단맛을 내는 인공 감미료다.
갑작스런 막걸리 열풍의 계기는 무엇일까?
일반적인 해답은 웰빙 열풍이다. 애주가들이 건강에 신경을 쓰면서, 막걸리가 가진 순기능을 재발견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그러나 갑작스러운 막걸리 열풍이 일본을 우회해 들어온 것이라 데 공감한다. 한국을 즐겨 찾던 일본여성들이 최근 막걸리에 매료돼, 수요가 폭발적으로 증가하고 있다. 일본의 막걸리 열풍이 다시 한국에 상륙했다는 설명이다. 과거 우리 김치와 “기무치”가 그렇듯, 앞으로 막걸리의 세계화를 두고 한국 전통 막걸리의 승부를 예감하게 하는 대목이다.
일본에도 일본식 막걸리가 있다.
맞다. 한국에서 배워서 만든 일본풍 탁주인 “니고리자케”다. 막걸리와 똑같은 방식으로 만들어지지만, 물에 희석시키지 않는다. 따라서 알콜 도수가 15도 가량으로 막걸리의 세 배 가까이 된다. 또 한가지 차이는 향이 강하고 들쩍지근한 맛이 난다는 것. 일찍이 와인에 필적할 사케 문화를 일궈온 일본인들의 취향 때문이다. 효모를 잘 다루는 것이 비결이다. 반면 우리 막걸리는 누룩만으로 맛을 내기 때문에 향의 차이가 크지 않다.
현재 일본인들의 막걸리 열풍을 볼 때 가능성이 높다. 김치의 경우도 일찌감치, 세계화에 뒤쳐졌다. 지금 부랴부랴 따라잡고 있는 상태다. 일본에 수출되는 우리 막걸리는 대부분 살균 제품으로, 막걸리 맛의 원형은 아니다. 일본에 진출해 현지에서 직접 막걸리를 제조하는 한인도 있지만, 진짜 막걸리 맛으로 일본인을 매료시키기에는 역부족이라한다. 지금 일본이 우리 막걸리를 약간 변형해 대량 생산한다면 일본인은 물론 아시아인들의 입맛을 사로잡을 가능성이 크다. 그렇게 되면 다시 막걸리는 막걸리가 아니라, “맛코리”(막걸리의 일본식 표기)가 된다. 김치가 아니라 “기무치”가 됐듯이 말이다. 하여튼 일본친구들은 내가 얘기했던 “따이한 밋꼬꾸 맛코리”를 (대한민국 막걸리) 잊지 못해 수입열풍으로 몸살 나고 있나보다. 지금 사케를 뒷전으로 밀며 도시 중심가 골목마다 막걸리 열풍이라고 전하고 있다. 일본여성들이 더 안달이다.
막걸리 칵테일은 신세대 입맛을 사로잡을 수 있을까?
전통막걸리에 다양한 약재와 과일을 첨가한 약주 혹은 변형막걸리가 등장하고 있다. 대부분은 이제 막걸리를 알아가는 신세대를 겨냥한 것들이다. 그렇다면 레몬 소주나 사과 소주처럼, 주점에서 막걸리에 각종 재료를 섞어 칵테일을 만들어 보면 어떨까? 수삼, 수박, 메론 등 각종 과일은 물론 맥주와 같은 다른 주종과 섞은 칵테일도 시음해 본 적이 있다. 결론은 막걸리가 다른 어떤 재료와도 잘 어울리는 술이라는 것이었다. 막걸리 본연의 맛에 각종 재료의 독특한 풍미와 맛이 어우러져, 지구상에 단 하나밖에 없는 술이 됐다.
궁극적으로 막걸리 안주도 기막히다.
막걸리와 안주의 마리아주(궁합)도 있다. 10여개 이상 전통 술안주에 퓨전요리도 등장한다. 아무래도 빈대떡, 김치찜이나 불고기, 명태전, 굴전, 고추전 해물파전 같은 전통안주가 잘 어울린다. 좋은 된장과 고추장에, 오이나 고추, 무 등을 찍어먹는 간단한 안주도 인기다. 퓨전요리는 아무래도 막걸리 전후의 애퍼타이저나 디저트로 적당하다. 막걸리 안주에도 짭짤한 어리굴젓에, 짠 맛을 덜어 줄 모짜렐라 치즈와 상큼한 맛을 더해 줄 사과 슬라이스를 선택 먹어본 후 권해 볼만하다.
또한 고체형태의 크림치즈 위에 술안주로 “술 도둑”(酒盜)이라고 불리는 참치를 얹었다. 결과는 기대이상으로 거나하게 취해 버렸다. 이젠 이곳에서 오클랜드 막걸리 사랑을 좋아하게된 이유가 되어 버렸다. 나도 이곳에서 막걸리 본점을 직영해볼까? 친구와 후배가 고려대학교 식품공학연구소 교수로 있어 추천하고 있기 때문이다. 미국 LA 직영 본점은 오래 전 오픈했나보다. 주막과 사랑방과 가야금, 거문고와 말이다. 우리의 문화터전을 생각중이다.
오클랜드 보타니에서 수채화가 아티스트 & 에세이스트인 James가 보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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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 막걸리 찬가를 소개합니다.
예술인(작가/화가/음악가)들의 막걸리 풍경을 이야기로 조명해볼까 한다.
음악가 작곡가 베토벤도 그랬고, 화가 건축가 레오나르도 다빈치도 그랬고, 문호(위대한 작가) 괴테도 그랬다. “비법은 없어. 예술인이 타고나는 것처럼 술꾼도 타고나야 하는 거야.”
“막걸리가 예술인 잡아먹어? 예술인이 막걸리 잡아먹어?” 예술인을 대충 작가/화가/음악가로 불러 본다면 작가/화가/음악가와 막걸리, 그 앙숙이면서도 포옹인가보다.
막걸리와 예술인. 예술인과 막걸리는 피붙이인가, 살붙이인가. 예술과 술은 피붙이라 할 수 있다. 예술이 있는 곳에 늘 술이 따라붙기 때문이다. 살붙이는 그 술을 함께 마시는 예술 이야기다. 그 술과 함께 먹는 안주처럼 마구 씹히는 게 예술인이기 때문이다. 예술인들과 막걸리. 그 오묘한 풍경을 그려볼까 해본다.
예술인들은 막걸리를 좀 더 좋은 문학작품이나 그림을 창작하는 길목에 선 노리개쯤으로 여긴다. 문제는 그 술을 다루는 예술인들 속내에 있다. 막걸리를 기생오라비처럼 살살 잘 다루는 예술인이 있는가 하면, 이 세상에 대한 울분을 삭이지 못해 막걸리에게 분풀이하는 예술인도 있다.
예술인을 이야기하자면 막걸리가 빠질 수 없다. 그렇다고 작가/화가 모두가 다 그렇다는 말은 아니다. 예술인이 지닌 속내를 더듬을 때 술이 빠지면 “팥 없는 찐빵”처럼 꽤 서운한 까닭은 따로 있다. 예술인들과 술에 얽힌, 그야말로 기절초풍을 몇 번이나 해도 모자랄 만큼 별 희한한 이야기가 정말 많기 때문이다.
옛말에 술은 “술술 잘 넘어간다”고 해서 그 이름이 붙었다 했다. 예술은 다르다. 예술작품 하나를 창작할 때도 술처럼 그렇게 술술 잘 만들어지면 얼마나 좋겠는가? 예술인들은 한 작품을 준비할 때 술처럼 술술 나오기 바라면서 술을 술술 마신다. 한 작품을 끝냈을 때는 술을 더욱 즐겁게 술술 마신다.
막걸리와 예술은 앙숙이자 다정한 벗이다. 술이 어떤 때는 예술과 예술인을 통째 잡아먹기도 한다. 예술과 예술인이 어떤 때는 술을 통해 이 세상을 깡그리 잡아먹기도 한다. 예술과 술, 예술인과 술은 수없이 맞붙어도 언제나 무승부다.
21세기 들어 젊은 예술인들은 술을 “너무 가까이 해서도 안 되고 너무 멀리 해서도 안 된다” (不可近不可遠: 불가근불가원)며 술좌석에 은근슬쩍 끼었다가 약삭빠르게 잘도 빠진다. 지난 1980~90년대에 그런 약삭빠른 짓을 하다간 예술인 모임에서 살아남기(?) 꽤 어려웠다.
시대가 어두운 탓도 있었다. 먹고 살기도 너무 빠듯한 적도 있었다. 예술인들은 그때 술을 다정한 친구로 삼아 슬픈 절망을 이겨냈고, 술과 안주로 허기진 배를 채웠다.
“서울 방배동에 가서 유명한 교수화가들을 만났더니 아침부터 막걸리만 자꾸 사주더라. 나는 배가 고파 죽겠는데 말이야”라는 말을 스스럼없이 내뱉었겠는가. 그뿐이 아니다. 화가들과 어울려 밤새 술을 마시다 집으로 가기 위해 택시를 탔다가 기사가 요금을 달라고 하자 마치 예술인이 큰 벼슬이나 보증수표라도 되는 것처럼 “나, 화가이여!”라고 당당하게 말하며 그냥 가기도 했었다.
막걸리와 예술, 예술인과 막걸리. 이 둘 사이에는 배꼽을 잡고도 웃지 못 할 무슨 우스꽝스러운 일이 그리 많이 있었던 것일까. 막걸리가 예술과 웃통을 벗고 죽자 살자 싸우고, 예술이 막걸리에 온몸을 던져 싸운 까닭은 무엇일까? 예술인들이 왜 남보다 막걸리를 더 좋아했을까. 막걸리에 젖어서 산다. 막걸리 한 말의 술을 마시고 한 말의 오줌을 싸면 나는 텅 빈다. 그 때는 모두가 그랬다. 그래야 그림이 되었고 작품이 됐으니 말이다.
한 교수친구는 그 당시 방배동 주변에 작고 허름한 대폿집에서 툭하면 과천으로 전화해서 나와 술벗을 삼았다. 그는 ‘탁주 반 되는 밥 한 그릇’이란 표어가 나붙은 그런 대폿집 앞을 지나갈 때마다 말하곤 했다. 그가 나를 술벗으로 삼은 까닭도 사실은 막걸리 한 사발로 끼니를 때우기 위해서였다.
하루는 골목에 있는 잔술집으로 나오라는 것이었다. 그 당시 막걸리 한 주전자를 따뜻하게 데워 파는 술집이 많았다. 그 잔술집들은 1000원짜리 한 주전자만 시키면 안주가 10가지 넘게 공짜로 무한정 나왔다. 술시중을 드는 예쁘장한 아가씨들도 있었다. 그 아가씨들에게 술시중을 받으려면 한 주전자를 시켜줘야 했다. 아가씨들은 잠시 앉아 술시중을 들다가 순식간에 빨아 마신 뒤 한 주전자 더 시켜주지 않으면 순식간에 자리를 떴다.
“작품이 곧 술이고, 술이 곧 작품이야. 좋은 작품을 만들려면 이 술을 애인 삼아야 해. 한 잔 마셔. 왜 그리 술을 베어 마셔. 술값 땜에 그래? 걱정 마. 이 집은 내 단골이어서 외상을 달아놔도 돼.”
“그러지 말고 아예 한 말을 시키는 게 더 낫지 않겠습니까? 그게 더 싸고 많이 마실 수 있을 것 같은데….”
“히야~ 니도 간뎅이가 부었구먼. 작품 하나 건지는 건 양에 안 차니까 아예 작품 열 개를 건지자 이 말이네.”
“얼씨구!”
“가시나야, 수류탄 안전핀 다 뽑고 콱 죽어뿌자” 그날, 한 말을 시켜 주전자에 따라 데워가며 “얼씨구~ 절씨구~ 지화자”를 외치며 잔을 수없이 부딪쳤다. 아가씨들도 신이 났던지 빨간 립스틱을 바른 입술을 우리 일행들 볼에 쪼옥~ 소리가 나도록 들이댔다. 볼록한 젖탱이를 어깨와 팔에 슬슬 문지르며 갖은 아양을 떠는 아가씨도 있었다.
“○○양! 니 가슴 양쪽에 단 그 멋진 수류탄(젖가슴) 안전핀을 뽑으려면 어떡해야 돼?”
“수류탄 하나에 한 말씩이니까 두 말째 시키면 양쪽 안전핀을 다 뽑을 수도 있어예.”
“요 가시나들이 굉장히 못된 사람들이네. 대머리 안 벗어진 것들이 잔머리만 늘어가지고. 그래. 기왕 버린 몸, 한 말 더 가꼬 와뿌라 고마(가져와라). 올 가시나 너거캉 우리캉 수류탄 안전핀 다 뽑고 같이 콱 죽어뿌자.”
우리 일행은 아가씨들과 그렇게 제법 진한 농을 주고받으며 막걸리 두 말 남짓 마신 뒤 밤 10시가 훨씬 넘어 그 술집을 나왔다. 아가씨들이 “수류탄 안전핀까지 뽑아놓고 그냥 가면 어떡하냐”는 소리를 귀로 흘리며 말이다.
술잔 때문에 단골 술집 바꾼 해학꾼인 한 교수도 있었다. “나 하늘로 돌아가리라 / 아름다운 이 세상 소풍 끝내는 날 / 가서 아름다웠더라고 말하리라” 술 끝내고 돌아가는 길이면 꼭 하는 말이었다.
그가 신촌 연희동에 살 때 자주 가던 단골 막걸리집이 있었다. 그런 어느 날 갑자기 단골 막걸리집을 버리고 다른 막걸리집으로 가기 시작했다. 이를 이상하게 여긴 그 교수부인이 고개를 갸웃거리며 물었다.
“요즘 새로 가는 막걸리집 주모가 아주 예쁜가 보죠?”
“문디 가시나 아이가. 그 막걸리집은 예전에 다니는 그 집보다 술잔이 훨씬 더 크다 아이가.”
이야기는 이외에도 참 많다. 더 우스꽝스럽고 어이가 없는 일들이, 꼭 그래야만 하는 것처럼 어제도, 오늘도, 내일도 끊임없이 터진다. 막걸리를 참 좋아했다. 대낮이든 저녁이든 밤이든 그는 막걸리집에 들어가 앉으면 10잔 이상 연거푸 마시곤 했다. 안주도 잘 먹지 않았다. 지금 생각해도 희한한 것은, 그는 아무리 많이 마셔도 화장실에 한 번도 가지 않는다는 것이다.
“젊은 넘들이 그기가 왜 그리 짧아! 그렇게 파닥거려서야 제대로 된 작품을 만들 수 있겠어. 술도 예술과 쌍둥이인데, 느긋하게 발효를 시킬 줄 알아야지.”
“선생님! 그 비법 좀 알려주십시오.”
“비법은 없어. 예술인이 타고나는 것처럼 술꾼도 타고나야 하는 거야.”
오클랜드 보타니에서 수채화가 아티스트 & 에세이스트인 James가 보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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