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임스의 세상이야기 : 우리 한인들은 오클랜드의 황혼과 최고의 자연 속을 거닐고 싶었습니다.
항상 태양이 타오르는 오클랜드의 신선한 계절에, 초목이 무성한 산야가 있고, 한 계절의 정취가 꿈으로
오듯이 멋있게 핀 하얀 장미들이 눈 내린 들판처럼 착각을 부추기고 있었습니다. 때로는 다습함에도 어디선가 인색하지 않은 오클랜드의 자연의 풍요가 한 줄기 바람을 몰고 오니, 운신으로 느끼는 청량감이 이 보다 더 좋을 수는 없었습니다. 세상의 모든 공해가 있더라도, 오클랜드의 언덕들을 넘기조차 버거운 듯이 오클랜드만이 숲 속이 지닌 깨끗한 자연 위로 날아가는 철새들도 돌아서 둥지를 틀게 하는 이곳이, 우리 한인들에게는 유일한 청정한 마음의 쉼터이었습니다. 고요의 수위를 넘어 영화에서 보는 것처럼 방불케 하는 숲 속 집들의 서정함을, 비록 하얗게 작열하는 태양조차도, 이곳 오클랜드의 한가로움과 평화로움으로 의지가 꺾이듯이, 잔잔한 계절의 고요함에 젖어 오수(Midday Sleep)에 들고 싶은 태양의 졸음(Sleepiness)이 바로 우리의 마음이려니 하고, 이 고요함의 정취는 꼭 사계절의 특성을 가리지 않는 것이 오클랜드인 것을 알았습니다.
언제나 그러했듯이, 발자국에 따라 온 도심의 일상적 고달픔도 이곳 숲 속의 기운에 사그라지듯이, 사라지는 잡념에 생각도 행동의 거리낌도 무념무상처럼 (Freedom From All Thoughts), 잊은 듯이 비운 듯이 다 놓은 듯이, 저절로 차단되는 현실과의 아름다운 단절이 언제나 정말 좋았습니다. 우리 한인들의 집착과 욕망이 이곳에선 실체도 형상도 없는 그렇게 아름다움일 뿐이었습니다. 그렇게 생존하므로, 일상에서 습성에서 파생된 희로애락이란 감정의 유희에 잠식당한 우리 안의 가식 없이 성찰할 여건이 조성되는 유일한 공간이었듯이, 한인들이 틈만 나면 속박된 현실에서 벗어나 자연을 염두에 둔 시공적인 개념의 갈망과 긴장이 의식과 무의식의 공간에서 요동치듯이, 자신을 찾아 떠나는 그 마음이 같은 맥락일 것입니다. 이곳은 우리의 의식이 멈춘 그 날에도 세상과 시간은 숙명처럼 엮어가듯이, 이곳 오클랜드에도 변함없는 모습의 풍경이 세속적인 시간에 점령되어 계절의 특성을 잃어버리는 의미의 황망한 날은 결코 오지 않을 것입니다. 이곳은 우리가 축복을 받은 것이었습니다.
오클랜드의 도심 속에 우리의 하루는 그 무엇을 하던지 그리 녹록(碌碌, Insignificant)하지 않았습니다. 어느 순간 오클랜드의 세상은, 황량함을 넘어 늙음을 주눅 들게 하는 주체이고 실체이지만, 오클랜드의 자연 속에 묻힌 우리 한인들의 노년의 시간은 무한정의 시선으로 우리 자신을 감싸고, 우리를 정화해주고, 우리를 사랑하고, 우리를 돌볼 관용과 까닭을 제공해주고 있는 것입니다. 더욱이 크고 작은 위안을 활용해서 황혼에 머무는 초로의 육신을 게을리 하지 않도록 하겠습니다. 오클랜드의 자연을 섭리하는 창조주의 손길에, 경외심과 감사함의 침묵과 숙연함을 잊지 않는 시간을 살아 가고 있는 것입니다.
생애에서 평범한 젊음이 꿈과 야망을 곁에 두고, 숙고와 활보의 시기를 거듭한다면 평범한 늙음의 일상은
시기를 잃은 꿈마저 버리지 못하고, 마음에 지닌 채 지난 세월조차 그리움으로 끌어 올려 추억하고 회상하는 날들이 될 것입니다. 더 없는 미련과 아쉬움이 있어도, 아무리 철없는 인격도 무수한 세월에 부대끼어 단련된 삶의 흔적은 겸허와 지혜를 안기듯이, 황혼을 맞이하고 자신의 생명력에 비애와 연민은 평소 생활인이 자연인으로서 느끼는 소박하고 단순한 슬픔만은 아닐 것입니다. 오늘도 영원함을 움켜쥐고, 푸른 녹음으로 생명력의 절정인 오클랜드의 언덕의 무수한 생명체도 영원할 수 없음에, 그러나 다양한 형태의 생존전략을 아끼지 않는 것입니다.
오늘의 여명(Daybreak)은 숲 속의 생명체에게 하루를 기약하고, 황혼(Twilight)은 그들에게 고단함을 쉬게 하는 어둠을 내리지만, 밤과 낮이란 명암을 제외한 시공의 적막감은 동일한 색감이고 질감인 것임을 알았습니다. 비록 창문에 비치고 찬 바람의 그림자일지라도, 계절의 싱그러움으로 만남을 기원하고, 움트는 그리움에 잠시도 머물지 않는 하늘의 구름에 우리의 마음을 누이고 싶은 이곳도 우리가 영원히 잠들기를 원했습니다. 어느새 정처 없이 흐르는 저 구름과 계절이 또 자취를 감추고 있습니다. 오클랜드의 자연의 현상은 이곳 잔디가 있는 우리의 작은 정원에도, 지금 꽃대를 드높인 장미들의 한 해를 어루만지는 것 같았습니다. 정결함의 하얀색과 기품이 서린 보랏빛 라벤다꽃들이 다듬어지지 않은 정원에 그윽한 운치를 절정으로 그려낼 때쯤 우리의 계절도 깊어갈 것입니다. 이곳에서 사위어가듯이 지펴지는 한 해의 그리움과 서울고향의 그리움도 그들과 함께 떠날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수채화아티스트/기도에세이스트/칼럼니스트 제임스로부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