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임스의 세상이야기 : 오클랜드 이민 1세대인 우리 한인들의 생애를 정말 격려하고 싶었습니다.
우리 1세대 한인들의 생애는 아무리 고달프고 힘들었다고 고백하기 시작했더라도, 우리 1세대 한인들이 걸어온 생애의 각 삶마다 왜 그렇게 꼭 극복해야 했으며 눈물로 담았던 한많은 단막극 처럼 왜 그렇게 많았는지 하고 셍각해 보았습니다.
참으로 어려운 조국에 태어나 어린 나이의 시절에, 그렇게 어지러운 세상에도 자유와 평화를 제대로 알기 시작한 시절인데도 불구하고, 배고파서 동사무소에서 배급받은 옥수수죽과 간장과 보리밥으로 허기진 숙명의 길들을 넘어온, 꽃다운 젊은 날들을 통과했었던 1960년-1970년 시대의 추억을 기억할 수 있었습니다.
이제는 남태평양을 넘어 오클랜드에서 20년을 돌아 보면, 울컥하고 복받친 눈물마저 없었던 우리의 각 삶들이 길고도 힏들었던 역경의 생애를, 우리 1세대 한인들은 어떻게 극복해 왔는지 정말 격려하고 싶었습니다.
지금은 냉정한 생애의 파도의 물결로 인한 풍화로, 육신은 성한 곳이 하나도 없었고, 주변의 아까운 친구와 이웃은 하나씩 하늘의 객으로 사라지고 때론 정신은 혼미해 질 수 있는 황혼길이지만, 그래도 지금까지 힘든 생애를 잘 견디며 자녀들을 잘 길러서 부모의 의무를 다하고 무거운 발걸음을 이끌고 여기까지 왔으니, 지금은 그렇게 우리의 모습이 닳아지고 둥글게 연마되었어도, 얽메인 삶을 풀어 놓고 잃어 버렸던 우리의 삶을 다시 찾아 조금 남은 우리 생애의 단 한번이라도 후회없이 살다 가도록 격려하고 싶었습니다.
우리 한인들의 만감이 복받치는 삶에, 60세를 넘으면 이성의 벽이 허물어지고, 가는 시간과 가는 순서가 다 없어지니, 성별 구분엾이 부담 없는 좋은 친구를 만나 산이 부르고 바다가 부르면 정말 하고 싶은 취미생활이 좋아 동행하거나, 마음을 다해 남은 생애에 후회없이 즐겁게 살아 가도록 격려하고 싶었습니다.
한많은 이 오클랜드의 세상에, 어느 날 갑자기 소리 없이 훌쩍 떠날 적에, 돈도 명예도 사랑도 미움도 가져 갈 것 하나 없는 빈손이고, 동행해 줄 사람이 없으니 자녀들을 뒷바라지 하느라 다 쓰고 조금 남은 돈 있으면 자신을 위해 아낌없이 쓰고, 오클랜드의 사랑 때문에 마음에 묻어둔 아픔이 남아 있다면 미련 없이 떨쳐 버리고, 정말 “당신이 있어 우리는 참 행복했습니다"하고 진심으로 전할 수 있는 친구와 이웃을 만나 남은 삶을 건강하게 후회없이 살아 가도록 격려하고 싶었습니다.
그동안 오클랜드의 과거의 시간들이 가족들을 위한 희생의 시기였다면, 지금부터는 우리 1세대 한인들 자신을 위한 삶을 만끽하는 시기가 되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습니다. 삶 속의 행복의 한 쪽 문이 닫힐 때, 다른 한 쪽 문은 열린다는 세상의 법칙을 알고 있어도, 그러나 종종 우리 한인들은 그 닫힌 문만 오래동안 바라보느라고 우리 한인들에게 열려 있는 다른 문은 정말 못 보곤 했었습니다.
우리 한인들의 오클랜드의 동산과 정원에 진달래꽃의 진한 향기로 깊어가는 늦봄을 숙명처럼 알게 하고, 오클랜드의 사랑을 품은 꽃봉우리들이 터질 것 같은 아우성으로 장미들의 애뜻한 손짓이 있는 늦봄이야말로, 그리움을 안고 오클랜드의 하늘로 언덕으로 해변가로 아침노을이나 저녁노을이라도 좋아, 점점 녹음이 짙어져 간다는 사실을 알고 있는 우리 1세대 한인들에 정말 격려하고 싶었습니다.
오클랜드의 그리움을 담고 있는 많은 섬들처럼 수천 마리의 돌고래를 가진 바다의 소리와, 붉게 타오르는 남태평양의 노을을 따라 우리 한인들에게 날아 오르던 청춘의 희망이 생각나고, 하얀 갈매기가 먹이를 낚아 채듯이 두려움이 없던 신바람이 나는 날이면 해변가의 파도를 따라 마음만은 먼저 뛰어 가는 것 같았습니다. 우리 한인들은 깊이 숨 한번 고르고 나면, 스치는 늦봄바람처럼 지나가는 생애의 삶들이 아름다운 아내들처럼 우리의 친구들처럼, 또 늦봄이 헛헛한(As feeling hungry) 마음을 적시는 우리 1세대 한인들을 정말 격려하고 싶었습니다.
수채화아티스트/기도에세이스트/칼럼니스트 제임스로부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