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상구육(祭床狗肉)
--혼(魂)이 살아있는 한국인을 위한 고언(苦言)--
물을 마시면서 그 물이 어디서 왔는가를 생각한다는 말이 있다. ‘음수사원(飮水思源)’이라는 한자어가 곧 그것인데, 이 말은 후손으로서 앞서간 조상을 추념하면서 기릴 때 자주 인용되는 말이다. 나는 어디서 왔는가? 나의 존재는 어떻게 하여 오늘 여기에 있게 되었는가? 그것에 대한 해답은 가까이는 부모님이요, 멀게는 조상이다.
먼 조상은 족보(族譜) 책에서나 만나볼 수 있지만, 가까운 조상은 나를 낳으시고 어릴 적에 나를 안아주고 쓰다듬어 주시던 부모와 조부모나 증조부모로서 나의 기억에 아직 남아 있는 분들이다. 나를 기준으로 한번 따져보자. 나를 포함하여 위로 아버지 어머니와 할아버지 할머니, 아래로 나의 아들딸과 손자손녀 세대를 합치면 5대(代)가 된다. 4대가 한 집에 사는 사대동당(4代同堂)은 아직 산업화하기 이전 나의 소년시절인 1960년대만 해도 한국인의 가족전통에서 흔한 일이었고 다복한 가정의 상징이었다. 그때는 물론 지금보다 가난하였으나 행복을 그 안에서 찾을 수 있었다.
전통적으로 한국인들이 조상이 돌아가신 날 지내는 기제사(忌祭祀)의 경우 왜 4대 봉사(奉祀) 하는지 그 이유를 알 것이다. 돌아가신 분들이 아직 내 눈에 선하기 때문이다. 어린 아들에게는 4대조인 증(曾)조부모가 다소 서먹하게 느껴질지 모르나 나를 낳으신 아버지의 할아버지란 생각을 하면 결코 멀지가 않다.
나는 나의 할아버지 할머니, 아버지 어머니가 생전에 즐겨 잡수시던 음식들을 지금도 생생하게 기억한다. ‘반중(盤中) 조홍감이 고와도 보이지만, 품어가 반길 이 없으니 그를 슬퍼하노라’는 옛 선인의 말처럼, 이제는 아무리 좋아하시던 그 음식이 있어도 돌아가신 분의 입을 즐겁게 해드릴 수가 없다.
옛날 어느 고을에 상놈이 제사를 지내는데, 김이 무럭무럭 나는 음식을 제상(祭床) 위에 올리지 않고 제상 아래에 두고 절을 하는 것이었다. 제사가 파하기를 기다리던 지나가던 양반이 궁금하여 물었다. 도대체 무슨 음식이기에 제상 위가 아닌 제상 아래에 두고 절을 하느냐고........ 이에 상놈이 부끄러운 듯이 머뭇거리다가 하는 말이 개고기(狗肉) 라고 했다.
“제가 아무리 상놈이라 보고 배운바가 없다고 해도 제상에 개고기를 쓴다는 말은 듣지 못했습니다. 저의 아버지는 생전에 개고기를 무척 즐겼사온데 돌아가셨다고 해서 입맛이 바뀌지는 않았을 것이고, 혼령께서야 상위에 있건 상아래 있건 찾아 잡수셨을 것 아닙니까?”라고 대답했다.
과연 누가 양반이고 누가 상놈인지 헷갈리게 하는 대목이 아니 수 없다. 평소 형식적 절차와 격식따지기를 좋아하는 양반이라도, 돌아가신 아버지를 생각하는 그 상놈의 정의(情誼)에 어찌 감복하지 않을 수 있으리. 그래서 ‘남의 제사상에 밤 놓아라, 대추 놓아라.’ 는 말이 생겨난 듯하지만, 아버지가 생전에 즐겨 드시던 그 모습이 눈에 선한데 어찌 개고기라 한들 제사상에 올리지 않을 수가 있을까. 추모하는 마음에 어찌 양반상놈이 차이가 있을까.
예(禮)를 모아서 집대성 해놓은 중국 유가 경전인 예기(禮記)에 보면, ‘무릇 예란 정에서 나오고, 정은 가까운데서 나온다(凡禮出於情, 情出於近)’ 라는 말이 있다. 예(禮)라는 글자를 풀어보면, 보일시(示) 변과 풍요로울 풍(豊)자의 합성자다. 보일시(示)가 들어가는 글자는 모두 귀신(鬼神)을 뜻한다. 영혼과 관계된 것으로 'spiritual'한 것을 의미한다. 풍(豊)자는 제상위에 제수음식이 가득한 것을 그린 상형자이다.
그러므로 예라는 한자는 제상을 차려놓고 제사지내는 의식(ritual)을 뜻하는 글자이다. 제상위에 제수를 가득 올려놓고 지내는 제사는 정에서 나오고, 또 산 사람이 죽은 사람을 그리워하며 기리는 정이다.
그런데 그러한 정은 또 어디에서 오는 것일까? 옛 사람들은 ‘가까운(近)’데서 온다고 하였다. 세상의 많고 많은 사람들 가운데 가장 가깝고 친근한 이가 누구인가. 바로 부모와 자식이다. 부모를 양친(兩親)이라고 부르는 까닭이다. 그래서 옛 성현은 부자유친(父子有親)을 오륜(五倫, five ethical code)의 첫 번째로 자리매김하였다. 남자로서 가장 가까운 분이 돌아가시고 안계시므로 아버지를 여읜 자식을 외로운 자식 즉 고자(孤子)라고 하였고, 가장 가까운 여성인 어머니가 돌아가시면 슬픈 자식이라 하여 애자(哀子)라고 불렀다.
부모와 자식의 관계를 선후(先後) 시간적으로 연장하면 핏줄로서 오늘의 나를 있게 해준 조상과 후손이다. 핏줄은 끊어지지 않고 무한히 유전(遺傳)한다. 그런데 우리가 먼 조상은 그만두고라도 가까운 조상이 돌아가신 날을 어찌 아무런 추모의식도 없이 그냥 넘어갈 수가 있는가! 그 어떤 형식에도 구애받을 필요가 없을 것이다. 생전에 좋아하시던 음식을 형편에 알맞게 소박하게라도 장만하면 그만이다. 추모(追慕)하는 그 마음 그 정성만으로도 찾아온 혼령이 기꺼이 흠향(歆饗)하실 것이다.
나는 부모님과 조상에 대한 추모지정(追慕之情)은 절대로 ‘우상숭배’가 아니라고 본다. 조상은 그냥 조상일 따름이지 결코 우상이 아니다. 이처럼 풍요로운 세상을 사는 오늘의 한국인들이 복잡다단한 생활 때문이라는 이유로 혹은 종교적인 이유를 들어 조상을 추모하는 예식을 차리지 않음은 반드시 반성하여야 할 일이라고 생각한다.
왜냐하면 조상에 대한 제례의식에는 한국인들의 혼이 스며들어 있다. 한민족의 혼은 외부의 어떤 거창한 주의주장에 있는 것이 아니고 면면히 내려오는 전통에 내재하는 맥락이 있다. 그것이 바로 세계에 내놓아도 부끄러울 것이 없는 한민족 관념문화의 핵심이고, 관념문화의 내용에는 조상에 대한 제례가 중요한 부분을 차지한다.
조상에 대한 제례는 추모일 뿐 종교적인 의미의 숭배(崇拜)가 결코 아니다. 서양을 흉내 내기에 바쁘고 우리고유의 것을 버리고 서양을 따라하는 것이 곧 ‘근대화’인 줄로 착각하던 한때는 부끄러운 것으로 생각하였다. 제례의식에는 한국인뿐만 아니라 20세기 최고의 문명사학자였던 아놀드 토인비(Arnold Toynbee)가 극찬해마지 않았던 한국인의 효(孝) 사상의 정수가 들어있다. 바로 ‘제례는 부모님 생전에 다하지 못했던 효를 다하는 것이다(祭則盡未盡之孝)’이다. 그러므로 이제 점점 사라져 가는 효 사상을 오늘에 되살리는 것은 우리의 관념문화를 되살리는 작업의 일환이다.
문화인류학적 관점에서 보면, 관념문화(觀念文化)는 타민족 타문화와 쉽게 동화하거나 또는 흡수되는 용기(用器文化)나 규범문화(規範文化)와 차원이 다르다. 우리가 말이나 가마가 아닌 자동차나 비행기를 타고 세계를 돌아다니는 것(用器) 이나, 서구 민주주의와 법치와 의회제도를 받아들이는 것(規範) 들과는 다르다. 관념문화는 보다 좋고 앞선 것을 흡수하고 동화하는 용기문화나 규범문화의 수용과는 차원이 다르다. 그것은 우리를 남들과 차별지어 우리답게 자리매김해 주는 우리만의 소중한 것이다. 자기고유의 관념문화를 잃은 민족은 결국은 혼이 없는 민족이 되어 소멸하거나 타민족에 동화되어 역사에서 사라지는 것을 우리는 많이 보아왔다.
여기서 우리는 현재 우리가 한국을 떠나 외국에서 뿌리를 내리면서, 후손들에게 정제시켜 물려주어야할 전통으로 하나의 고귀한 정신적 가치를 발견한다. 즉 효(孝)는 시간적으로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를 통해 영속적으로 이어져나가 나에 의해 완성되지 않았던 자아의 이상을 후손으로 이어 실현하게 하는 것이고, 공간적으로는 한국이 아닌 전 세계를 무대로 웅비할 후손들에게 한국인(특수성)이자 동시에 세계인(보편성)으로서 실현할 이상의 무대를 무한히 확대해가는 과정이기 때문이다. 개인이 없이는 국가가 없듯이 특수성을 결여한 보편성은 아무런 소용이 없다. 한국이 없이는 세계가 소용없는 이치이다. 그것이 곧 민족전통 문화의 창조적 계승을 통한 창달(暢達)이다.
그러므로 조상제례의식을 통하여 살펴본 한국인의 효(孝) 사상의 현대적 의의는, 장차 외국에서 태어나 외국에서 살아가야할 한국인 후세들이, 처해진 시간과 장소에 제한을 받지 않으며, 생명의 무한한 '연속성(continuity)' 속에서 혼이 없는 민족이 되지 않도록 보장하는 정신교육이지 결코 일부 지각없는 이들이 말하는 무의미한 것이 아니다. 그것은 우리의 후세들이 혼이 없이 자기정체성(self identity)을 잃고 떠도는 부평초와 같은 처지가 되지 않도록 하는 실로 중차대한 일이다. 우리가 하지 않으면 어느 남이 우리 후세를 위하여 해 줄 것인가?
박 인 수
(2011. 9. 9, 중양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