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들바람
현대인은 아이나 어른이나 할 것 없이 많이들 지쳐있는 것 같습니다.
우리 교우님들 중에 “나는 이룬 것도 없고 가진 것도 없다. 그래서 허무하다.”고 생각하시는 분이 혹 계신지요?
그렇다면 한 가지만 더 생각해 보시라고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인생을 책임감 없이 막 살아서 그런 것인지, 아니면 하나님 앞에 부끄럽지 않게 살기 위해 노력해왔으나 우리 사회가 교우님의 정직하고 성실한 삶을 받아내지 못해서 그런 것인지...
게으르고 나태하게 살아왔기에 아무 것도 이룬 것이 없다면 더 이상 드릴 말씀이 없습니다.
그건 개인의 책임이고 당사자가 부끄러워해야 할 문제이니까요.
하지만 우리 사회에서는, 정직하게 열심히 살았는데도 불구하고, 때로는 오히려 그렇게 살았기에 어려움을 겪는 경우도 있습니다.
그런 경우는 개인의 책임이 아니라 사회의 책임이며, 국가의 도덕성과 경영능력에 문제가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룬 것도 없고, 가진 것도 없고, 자식들에게 남겨줄 것도 없지만, 나는 하늘 아래 부끄러움 없이 살아왔다.”고 회상하실 수 있다면, 인생을 훌륭하게 잘 사신 것입니다.
우리 예수님도 그렇게 사셨고, 세속적인 기준에서 볼 때는 실패한 인생일 수 있겠지만, 우리 하나님께서 분명히 그 삶을 귀하게 여기실 것이므로 기뻐하고 즐거워하십시오.
혹 학력이나 재력 등 외부적인 조건으로 교우님을 평가하고 무시하는 사람이 있으면 호쾌하게 비웃어주십시오.
사람 자체의 소중함을 모르고 외적인 조건으로 평가하는 사람은 스스로 속물임을 드러내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그 사람의 인격 자체를 비난하거나 미워할 필요는 없지만 그 사람의 속물성, 즉 그 천박한 말과 행동거지에 대해서는 마음껏 비웃어주셔도 괜찮습니다.
늘 소외된 사람들의 친구로 사셨던 우리 예수님도, 사회적 약자로 살아가는 이웃들을 품어 안아야 할 율법학자들과 바리새인들이 오히려 외부적 조건으로 그들을 평가하고 무시하며 정죄하는 것을 보시고는 “독사의 자식”이라고, 또한 “겉은 번지르르 하지만 그 속은 회칠한 무덤과 같다.”고 수많은 제자들 앞에서 그들을 호쾌하게 비웃어주셨습니다.
‘타타타’라는 제목의 노래에 이런 가사가 나옵니다.
“산다는 건 좋은 거지. 수지맞는 장사잖소. 알몸으로 태어나서 옷 한 벌은 건졌잖소.”
타타타라는 말은 산스크리트어로 ‘본래 그러한 것’이라는 뜻인데, 한자로는 여여(如如, 같을 여)라고 표기합니다.
인생이란 본래 그런 것이니 순리를 거스르지 말고 살라는 뜻입니다.
우리 인생은 무언가를 이루기 위한 수단이 아닙니다.
삶 자체가 소중하기에, 그 귀한 삶을 향유하라고 우리 하나님께서 주신 것입니다.
지금까지 사시면서 무엇을 이루셨건, 또한 얼마나 가지셨건 상관없이, 하나님께서 주신 삶 자체로 우리는 모두 귀합니다.
소중한 삶을 건강하고 행복하게 사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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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로써 산들바람님의 '왜 사느냐고 물으신다면' 을 모두 마칩니다.
그동안 애독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그동안의 글의 순서는 다음과 같습니다. ( ) 은 글을 올린 날짜입니다.
1. 왜 사느냐고 물으신다면 (9/10)
2. 하나님께서 주신 삶의 향유 (9/14)
3. 삶 자체가 소중하기에 (9/1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