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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삶’이라는 이데아, ‘성경’이라는 우상

                                                                                                                 차정식   한일장신대 교수


'바른 삶'이 뭔지 따지기에 앞서 ‘삶’ 자체를 표나게 내세우면서 그것을 다른 진리의 항목들과 대립시키다보면 그런 항목들이 삶과 대척적인 관계를 이루면서 삶의 범주에서 밀려나거나 사소한 삼류 가치처럼 소외당하는 억압적인 분위기가 조장된다.

진리를 선포하고 드러내는 현장으로서의 예배, 그것을 표현하는 말, 그것을 체계화한 신학은 우리의 신앙적 삶을 구성하는 소중한 부분들 아닌가.

멋진 말과 훌륭한 글은 저절로 만들어지는가.

밥을 먹고 책을 읽고 공부를 하고 깊은 사색과 연구를 거쳐 웅숭깊게 그 모든 것이 우러날 때 그것이 좋은 생각도 되고 멋진 말도 되며 훌륭한 글도 되는 것 아닌가.

나아가 밥과 책과 공부, 사색과 연구, 생각과 말과 글 따위는 우리 삶의 부분집합들이 아니면 도대체 무엇인가.

그것들은 삶의 바깥에 있지 않고 (아무리 부실한 것일지라도) 그 안에 있다.

이런 것이 얼마나 진정성 있게 결실되느냐가 진리 추구적 삶과 삶의 진리적 가치를 평가하는 기준이 되는 것이 아닐까.

연구 현장에서 열심히 이론으로 실천하는 사람에게는 그게 삶의 주된 부분이고 보다 감각적인 방식으로 절박한 현장의 구제사역과 선교사역에 연루되어 일하는 사람에게는 그것이 또 삶의 주된 항목일 뿐, 이 모든 구석구석에서 삶이 아닌 것이 없고 바른 삶의 가능태가 아닌 것도 없다.

따라서 ‘삶’을 배타적 클리셰로 만들어 자신만이 독점한 객관적 실체인 양 내걸 때 그것은 우리를 각성시키는 선동적 구호가 될 수 있을지언정 삶이라는 이름으로 우리 삶을 오히려 빈곤하게 만들고 헐벗은 몰골로 내칠 우려가 있다.

혹자는 오늘날의 혼란한 현실을 떨치고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유일하고 궁극적인 해답이 ‘성경’으로 돌아가는 것이라고 역설한다.

‘말씀’만이 이 시대의 난국을 타개할 절대적인 열쇠라고 부르짖기도 한다. 인간적 생각과 지식, 무슨 개혁 운동 따위로 발버둥 친들 별무소용이고 오로지 말씀의 순정함을 회복하여 거기에 복종하는 것만이 해법이라는 것이다.

이 ‘성경’이나 ‘말씀’의 자리에 어떤 이는 ‘기도’라는 어휘를 대입시켜 기도야말로 모든 불행의 버릇을 타개하고 행복을 가져오는 비법인 양 선전하기도 한다.

여기에 수사적 과장법의 의도가 있다는 걸 그들도 모르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구호로써 더 많은 오해와 수상한 의혹이 생긴다는 것도 알면서 그런 과장을 했으면 좋겠다.

단순화의 오류는 늘 오류처럼 보이지 않는 터라 이런 틀을 쳐놓으면 주인공 된 화자가 마치 하나님이라도 되는 것처럼 기세등등한 목소리의 강도가 느껴진다.

그러나 성경이란 무엇인가.

수천 년의 기간을 통틀어 인간이 다양한 시대와 역사적 배경, 복잡한 상황과 맥락 속에서 하나님을 경험하면서 던진 수많은 질문들과 나름의 가능한 해답을 찾기 위해 고투한 과정의 축적물 아니던가.

그것이 계시가 되고 신성한 말씀으로 권위를 얻기까지 그 속에 얼마나 다양한 사상과 문학과 교리와 신학들이 섞여 들어왔던가.

또 더러 상반되는 교훈과 모순된 노선은 어떠하고 정치적 이데올로기, 원시적 인습과 특정한 종교전통은 얼마나 되며, 게다가 인간의 다채로운 욕망과 희망은 그 속에서 또 어떤 풍경으로 펼쳐지던가.

성경을 가지고 극단적으로 보수적인 처세술을 정당화할 수 있고 그 말씀의 권위로 극단적으로 자유스럽고 진보적인 이념을 합리화할 수 있음을 왜 외면하는가.

왜 성경이 공산주의와 자본주의, 허무주의와 쾌락주의, 현세적 기복주의와 급진적 종말신앙의 동시적인 출전이 될 수 있음을 무시하는가.

결국 나름의 해석학적 전제와 신학적 지향을 가지고, 어떤 핵심 개념(가령, 언약, 구원, 사죄, 영생, 천국, 믿음, 사랑 등)을 주축으로 삼아, 그것의 엑기스를 응집시키고 신학화한 전통을 다시 선포하고 ‘말씀’의 권위로 전승해온 것이 아니던가.

신앙적인 언설이 그저 우리의 특정한 변덕이나 욕망을 순간적인 감흥이나 주관에 치우쳐 과장하는 수단일 뿐이라면 그것은 좀더 신중해져야 할 필요가 있다.

성경이 마치 도깨비방망이 류의 우상으로 전락하여 그 안에 출현하는 모든 것들을 아름답고 선한 것으로 도배하는 것이라면 우리는 성경의 권위를 입에 담으면서 좀더 현명해질 수 있어야 한다.

그것이 우리의 신앙에 표준을 제시하고 규범을 제공하는 권위 있는 고전적 전통이라는 사실을 누가 부인하랴.

그러나 성경의 권위는 그것을 해석해온 2천 년 이상의 역사와 함께 거론되면서 세세한 맥락을 제시하고 오늘날 적용되는 구체적인 삶의 자리를 전제해야 그나마 씨라도 먹힐 수 있는 것이다.

성경의 인용이 주술이나 주문처럼 복창되고, 부적이나 자기 봉사적 구호 또는 자기 억압적 방망이 수준에서 운위된다면 성경과 우상의 거리는 그리 멀지 않다.

우리는 '진리'를 따지기에 앞서 오늘날 내 삶의 '일리'를 살피면서 좀더 차분하고 현명해지는 게 좋겠다.

일상의 욕망을 긍정하고 그 복잡한 지형 속에서 헤매는 자신과 이웃의 실존적 처지를 좀더 신중하게 준별하면서 한두 가지 구호로 삶의 다양한 입자들을 잡아먹는 하마나 공룡의 처신은 삼가는 게 바람직해 보인다.

우리는 신도 아니고 블랙홀이 아니듯, 삶을 저 천공의 이데아로 붙들어 맬 수 없는 생활인이면서 그 삶의 현실적 지평을 벗어나고파 초월의 꿈을 품은 고상한 생명들이기 때문이다.

우리 삶의 30%가 잠과 꿈으로 구성되어 있음을 잊지 말자.

먹고사는 일들로 분요하게 움직이고 있고 우리의 생산 에너지를 재생산 에너지로 성급하게 투입하면서 우리의 하루하루가 굴러가고 있음을 명심하자.

멋진 말과 글에 속지 마라. 그러나 동시에 멋진 말과 글에 속지 말라는 사람의 선동적 구호에도 속지 마라.

툭하면 ‘진리’와 ‘삶’을 주워섬기고 ‘구원’과 ‘행복’을 선전하는 이들을 조심하라!

수백 년 뒤진 근대적 계몽의 한 구멍이 여기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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