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지만 도시설계는 점점 사람들로 부터 단절되어 가고, 더이상 사람들이 중요시하는 많은 문제는 불행히도 더이상 다루지 않게 되고 있습니다. 정치적이나 언론의 논쟁에서, 미래의 도시설계는 규제를 더 풀도록 하는데 촛점을 맞추고 있는 듯 합니다.
도시설계의 태동은 19세기 공중보건위생운동과 영국 빅토리안시대의 빈민가로 부터 시작되었습니다. 정화시설이 미흡하여 식수가 오염되어 콜레라가 창궐하면서 필요성을 느끼게 된 것이지요. 그렇지만, 화장실을 갖춘 주택의 제공이라는 기본적인 요구사항을 넘어서 공동체의 설계나 사회적인 배제까지도 다루기 시작하였습니다.
즉, 기술적, 예술적 그리고 사회적인 목표를 가지고 있었지요. 도시계획은 효율적인 공간의 활용을 통해서 사람들의 일상생활의 향상에 기여하여 결과적으로, 사람들에게 좀더 나은 삶을 제공하였고, 세계대전을 치룬 국가들의 경우에는 공공주택 마련 및 기간시설 확충 등으로 국가재건에 아주 중요한 역할을 하게 되었습니다.
영국의 경우, 그러나 2차 세계대전이 끝난 후부터 도시계획의 사회적인 역할보다는 기술적인 목표에 좀더 큰 비중을 두게 되었습니다. 이는 도시계획이 더이상 가난타파에 있어서 주요정책수단으로 인식되지 못하고, 사회정의 실현에 대한 정책의 중요도를 낮추었기 때문이겠지요.
영국의 도시계획기법을 답습하는 호주와 뉴질랜드의 경우는 그러한 영국의 변화를 따라가게 되었습니다. 점차 도시계획과 점진적인 사회요구의 괴리감이 증폭되어 가고 있습니다. 사회 불평등이 심화되고 지역적 빈부격차가 심해졌습니다. 물론 마누카우시장에서 오클랜드시장으로 당선되었던 렌브라운 시장이 마누카우의 빈부격차를 완화하기 위해 오클랜드 플랜에 남부지역 활성화를 큰 목표중에 하나로 삼은 것은 표밭의식을 넘어서 빈부격차 완화의 중요한 의미를 갖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본래 도시계획(planning)에는 사회적인 요소에 대한 고려가 크게 작용하였으므로, 미래에는 이의 복원이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세계각국의 케이스 스터디에서도 밝혀지듯이 도시계획이 공동체 재건, 건강 그리고 지역민에게 중요한 이슈의 해결에 매우 긍정적인 영향을 끼치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물론 도시계획은 중앙정부에서 정책을 마련하여 사회 정의 실현과 가난타파라는 명확한 지침을 내려주지 않는 한, 실천에는 한계가 있기 마련입니다. 따라서 가난타파에 대한 정부의 의지가 있다면 새로운 법적 의무마련 및 이의 실천방안에 대해, 일선에서 일하는 플래너들에게 교육이 필요하다 하겠습니다.
도시계획의 시행에 있어서 새로운 시도가 절실합니다. 도시계획의 사회적인 순기능을 다시 한번 생각해볼 시점입니다. 저와 같은 플래너들은 자신이 맡고있는 장소에 대한 명확한 이해 및 자신들의 일이 어떻게 그곳에 사는 사람들의 삶에 영향을 끼칠까하는 대한 고려가 절실히 필요한 시기 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