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榮) 과 욕(辱)
남으로부터 업신여김(侮)을 당하고도 욕됨(辱)을 느끼지 않는 사람이 있다면 그 사람은 바보이거나 속세의 평가를 잊은 성인의 경지에 이른 사람일 것이다. 우리 인생은 실상 살다보면 영광과 치욕이라는 두 개의 씨줄과 날줄로 짜여 지는 한 필의 베에 비유될 수 있다. 영광의 맞은편에 치욕이 있고 치욕의 반대편에는 영광이 있다. 영광과 치욕의 거리가 멀기도 하지만 또한 서로 가깝기도 하다. 살다보면 때때로 둘은 동시에 중첩되기도 한다.
대부분의 인생은 영광과 치욕이 교차하지만 사람은 누구나 영광을 원하고 치욕을 면하고자 희망한다. 그런데 살다보면 영광을 원한다고 해서 인생에서 영광스러운 일만 찾아오는 것도 아니고, 반대로 치욕을 피하고자 해도 피하지 못할 상황에 처하기도 한다. 영욕은 인생의 장에서 늘 함께 올수 있다는 이치를 알고 평소 그에 대비하는 인생철학을 깨닫고 생을 영위해 나가면 좋을 것이다.
중국고대 사상가 중에서 공자 맹자의 그늘에 가려 자신의 진가를 인정받지 못한 전국시대 말기 유가학자요 대사상가인 순자(荀子)가 있다. 순자는 인간이 저마다 누리는 영광과 치욕에는 각각 두 가지 질적으로 다른 종류가 있음을 설파하였다. 순자의 분류에 따르면, 영광에는 의영(義榮)과 세영(勢榮)이 있다. 의영은 의로움에서 나오고 세영은 힘으로부터 온다고 말했다. 마찬가지로 치욕에도 의로운 치욕인 의욕(義辱)과 힘으로부터 오는 치욕인 세욕(勢辱)이 있음을 말한다.
의영이란 어떤 것을 말하는가? 의지가 바르고 덕행이 후하여 아름다우며, 생각과 판단이 분명하고 밝음으로 인해 매사를 통하여 영광스러움이 자기 자신으로부터 나오는 것이다. 세영은 어떤 것을 말하는가? 존귀한 작위에 올라 녹봉이 후하고, 부릴 수 있고 남들에게 내보이는 권세가 높아 위로는 천자에서 제후 아래로는 공경 사대부에 이르는 것으로 그 영광스러움은 밖으로부터 주어지는 것이다.
의욕이란 어떤 것을 말하는가? 의지가 음탐하고 무절제하며 행동이 오만불손하여 절도가 없고 사리에 어긋난 판단을 일삼으며 뽐내기 좋아하고 사리사욕을 추구함으로 인해 치욕스러움이 자기 자신에서 오는 것이다. 세욕은 어떤 것인가? 일을 도모하다가 잘못되어 곤장을 얻어맞고 손발이 잘리고 무릎이 잘리거나 심한 경우 가혹한 형벌로 목숨을 잃는 것으로 치욕스러움이 밖으로부터 가해지는 것이다.
순자는 이어서 말한다. 그러므로 군자에게는 자신 밖으로부터 오는 치욕을 당하는 일이 있을지언정 자기 양심에 비추어서 가책할만한 치욕은 있을 수는 없으며(故君子可以有世辱, 不可以有義辱), 소인에게는 밖의 권세에 의해 내게 주어지는 영광은 있을 수 있으나 내심에 비추어서 본인 스스로 느낄만한 의로운 영광은 누릴 수 없다(小人可以有世榮, 不可以有義榮). 따라서 세욕은 비록 요임금이라도 당할 수 있고, 세영은 걸 임금이라도 얻을 수 있다(有勢辱無害爲堯, 有勢榮無害爲桀). <순자, 정론(正論)편>
순자의 말에 따르자면, 치욕이라고 무조건 피할 것만은 아니다. 사육신의 죽음에서처럼 밖에서 가해지는 세욕은 당할 만도 하다. 세욕은 오히려 당하는 쪽이 청사에 방명(芳名)을 남기는 일이기도하다. 그러자면 평소 얼마나 마음의 수양공부(修養工夫)에 충실하여 영과 욕으로 점철되는 일생을 씨줄과 날줄을 골라가며 베를 짤 수 있을까? 지난 수개월 간 한국 매스컴의 집중적 각광을 받은 세 사람의 경우가 떠오른다.
새 정부의 청와대 수석 대변인 자리는 대단히 영광스러운 자리다. 만일 대변인에 임명된 이가 일생을 통해 언론인으로써 스스로 양심에 비추어 의로운 생각과 의지로 일관했다면 새롭게 주어진 그 자리는 의영과 세영을 동시에 얻은 것이다. 그러나 대통령의 방미 수행 중 그가 범한 추문으로 사퇴한 것을 두고 보자면 그는 의영을 운운할 사람이 못되고, 그의 사퇴는 치욕 중에도 밖에서 주어지는 세욕을 당했다고 볼 수 있다. 군자와 소인의 이분법에서 보면 그는 군자의 범주에 들 수는 없는 인간형이다.
새 정부 들어서 임명된 검찰총장 자리도 대단히 영광스런 자리다. 사법시험에 합격한 이후 법조인으로서 초임 검사시절부터 본인 자신의 각고의 의지와 실천을 통해 그 자리에 올랐으니 만치 자기 스스로부터 오는 의영과 밖으로부터 주어지는 세영을 동시에 얻은 것이다. 그러나 그의 물러남은 평소 자신의 처신으로 말미암은 밖의 힘에 의해 강요된 것이다. 세영도 얻었지만 동시에 세욕도 얻은 것이다. 역시 군자형의 범주에 들 수는 없을 것이다. 그의 물러남이 의욕인지 세욕인지 현재로서는 아무도 모르고 오직 본인만 알 따름이다.
역시 새 정부 들어서 임명된 보건복지부장관도 대단히 영광스런 자리이다. 장관은 새 정부의 출범을 앞두고 인수위원회에서 새 정부의 밑그림을 그리고 장차 정책방향을 결정하는 일을 할 때부터 참여한 각료였다. 잘은 모르겠으나 그 분도 일생을 통하여 본인의 성실과 노력으로 의영을 얻었고 그 결과 세영도 주어졌다. 그러나 그의 사퇴는 의욕인지 세욕인지 언뜻 분간이 안 간다. 그의 사퇴가 주무부서의 각료로서 자신의 양심에 비추어 보아 물러난 것 이라면 자신 내부에서 온 것이므로 의욕이라 하겠지만, 외부와의 마찰에서 온 것이라면 세욕일 것이다. 그러나 그의 물러남에는 가벼이 볼 수 없는 점이 있다.
앞선 두 가지 물러남과 달리, 보건복지부 장관의 물러남은 대통령제 국가에서 있을 수 없는 일이다. 대통령제 국가의 장관은 내각책임제 국가의 각료와 다르다. 내각제 국가의 각료는 반드시 지역구 출신으로 내각을 구성한다. 내각각료는 국민에게 책임지며 내각수반인 수상을 위하여 책임지는 일은 없다. 그러므로 내각에 들어가서도 반드시 지역구 의석을 유지해야 한다. 내각이 실책하면 내각이 총사퇴한다. 수상도 내각의 동료중 제일인자일 뿐이다.
그러나 대통령제 국가에서 장관은 지역구출신 일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다. 만일 지역구출신일 경우 대통령제의 원칙에 충실하자면 각료로 입각하기 전에 반드시 의원직을 사퇴해야 한다. 왜냐하면 입각하는 순간부터 지역구와의 인연을 끊고 오직 대통령을 보좌하는 대통령의 개인비서로 신분이 바뀌기 때문이다. 그럴 각오가 없으면 입각하지 말아야 한다. 제도의 원리를 분명히 알고 진퇴를 결정해야 한다. 어제까지 내각각료로 있다가 물러나 오늘은 의회 의석에 앉아있는 모습은 보기에 사납다.
그래서 미국의 경우 장관의 명칭을 비서(secretary)라고 부른다. 대통령이 도맡아야할 정부 주무부서의 업무를 책임진 비서이기 때문이다. 미국의 장관은 오직 대통령 한 사람의 정책수행 결과에 따른 책임을 지며 아무의 눈치도 보지 않는다. 대통령이 신임하는 한 국민의 빗발치는 아우성도 장관은 나몰라 할 수도 있다. 이것이 곧 대통령제의 특징이고 대통령제하 각료의 역할이다. 그런데 보건복지부 장관은 복지업무 수행결과 나타난 실책에 대한 책임도 아니고, 정책을 입안하여 시행해보기도 전에 본인의 판단에 의해 물러나 버린 것이다. 장관으로서 있을 수 없는 일이다.
대통령제 국가에서 대통령은 사람을 임명하거나 면직시킬 수 있는 전권을 가진다. 그래서 원인을 따지자면 그 자리에 합당한 능력과 책임감을 구비한 각료를 잘못 본 임면권자의 지인지감(知人之感)이요, 잘못 사람을 골라서 밖으로 부터 영광스러움(세영)을 잠시 누리게 해준 임면권자의 택인지과(擇人之果) 일뿐이다.
영광과 치욕은 맞이하기도 힘들지만 물리치기도 참으로 힘든 일이다. 이래저래 한평생 살아가자면 영광과 치욕이 점철되지 않을 수 없는 일생이다. 큰 영광은 얻지 못할지라도 작은 영광만으로, 큰 치욕은 모면하고 작은 치욕으로만 점철된 인생을 살 수 있다면 그것 이상 더 바랄 것이 없을 범부의 평범한 삶이다.
노자가 말한 것처럼. 총애와 치욕은 모두 사람을 놀래게 만든다(寵辱若驚). 화가 있는 곳에는 복이 깃들고(禍兮福之所倚), 복이 있는 곳에는 화가 움트고 있다는[(福兮禍之所伏) 철리를 깨닫고 산다면 좋을 일이다. 어느덧 또 한 해가 저물어 간다. 새해에는 오클랜드 한인회와 오클랜드 거주 한인가정 모두에 자랑스럽고 영광스러운 일이 많이 생기기를 희망한다.
2013. 12. 12
박 인 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