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군가 교우님에게 왜 사느냐고 묻는다면 뭐라고 대답하시겠습니까?
어떻게 살 거냐고 물으면 쉽게 대답할 수 있겠지만 왜 사느냐고 물으면 얼른 대답하기가 쉽지 않습니다.
한참 생각하다 먹기 위해 산다거나 그냥 태어났으니까 산다고 대답하는 분들이 많습니다.
요즘에는 죽지 못해 산다는 분들이 많더군요.
살기 싫은데, 살맛도 없고 사는 재미도 별로 없는데, 매인 게 많아서 살 수밖에 없다는 것입니다.
아내나 남편이 있고, 자식이 딸려 있으니 죽을 수도 없다는 것이지요.
제가 교직에 있을 때 <왜 사느냐고 물으면?>이라는 주제로 학생들에게 발표를 시킨 적이 있었습니다. 많은 학생들이 이 물음에 대해 ‘(무언가를) 하기 위해서…’ 라고 대답했습니다.
“(좋은) 대학가기 위해서, 성공하기 위해서, 돈 벌기 위해서, (이런 저런 것을) 이루기 위해서…”
라는 대답이 대부분이었습니다.
학생들의 발표를 듣고 나서 이렇게 말해주었습니다.
“대학가기 위해 산다는 학생은 대학가면 죽어야 되겠네요. 대학가기 위해 사는 거라면, 대학에 갔으니 더 이상 살 이유가 없지 않습니까?
성공하기 위해 산다는 학생은 좀 더 오래 살 수 있겠군요. 인생의 성공이라는 건 대학가는 것 보다는 좀 더 시간이 걸릴 테니까. 그러나 이 학생 역시 자기가 바라는 성공을 이루면 죽어야 하는 건 마찬가지겠네요.”
왜 사느냐는 물음에 대해서 ‘(무언가를) 하기 위해서…’라는 대답을 하게 되면 우리 인생은 그 무언가를 이루기 위한 수단으로 전락하고 맙니다.
많은 교우님들, 특히 신앙생활을 열심히 하시는 독실한 교우님일수록 곡해하는 문제가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생명을 주신 이유는 가치 있는 무언가를 이루게 하기 위해서다.”라는 생각입니다.
그러나 그런 생각은 예수님의 가르침과는 상당히 거리가 있습니다.
예수님은 자신을 따르는 사람들에게
“사람이 온 세상을 얻는다 해도 제 목숨을 잃으면 무슨 소용이 있겠느냐? 사람의 목숨을 무엇과 바꾸겠느냐?”
하고 물으셨습니다.
우리의 삶 자체가 그 무엇과도 비교할 수 없이 소중하다는 뜻인데, 이 사실을 깨닫지 못해서 일어나는 비극이 우리 주위에는 너무나 많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