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憂)와 환(患)
아침 조회(朝會)에 참석하여 주군으로부터 명을 부여받고 퇴청하여 집에 돌아오자마자 얼음을 깨문다. 속에서 열이 끓어오르기 때문이다.(今吾朝受命而夕飮氷, 我其內熱與........)
- <장자> 인간세편-
우화를 지어 내는데 천재적 소질을 가진 장자의 이야기 중 한 대목이다. 초(楚)나라 대부 섭공자고(葉公子高)가 조회에서 군왕을 명을 받았다. 앙숙인 제(齊) 나라에 외교사절로 가서 제나라 조정에 첩자를 심으라는 명이었다. 그 명을 받고 집에 돌아오니 속에서 열이 차올라 얼음을 깨물었다. 왜 열이 났을까? 주군으로부터 부여받은 막중한 임무를 성사시키고자하면 ‘뇌 즙을 짜내듯이(搾腦汁)’ 두뇌를 혹사시켜야 하고 결국 심신이 음양조화를 잃어 몸에 병이 날 것이 뻔하다.
만일 일을 성사시키지 못하게 되면 주군으로부터 목숨을 부지하지 못할 것이다. 이래저래 병을 얻어 죽을 운명이다. 그러니 속에서 열이 끓어오르지 않을 수가 없다. 자고가 집에 돌아오자마자 얼음물로 우선 열부터 식혀야하는 까닭이다. 나라를 근심하고 큰일을 도모하려는 우국지사라면 예나 지금이나 늘 마음이 편하지 않는 까닭이 있다. 세상의 우국지사라면 현실에 처하여 어찌 한시라도 근심과 우환이 없을 수 있겠는가?
량치차오(梁啓超=양계초, 1873-1929)는 청나라 말기 나라의 국운이 기울어 가던 때의 대학자요 사상가이자 정치가로 궁정(宮廷) 구데타인 무술정변을 성사시켰으나 백일천하로 실패하고는 일본으로 망명하였다. 중국의 장래를 영국과 일본처럼 입헌군주주의 국가로 바꾸려고 했던 량치차오는 자신의 서재를 얼음을 깨문다는 뜻으로 음빙실(飮氷室)이라고 지었다. 그가 남긴 저술은 <음빙실전집>(飮氷室全集)으로 남아있다. 망해가는 청나라 말기의 대표적인 우국지사이니 만치 일생 그의 뇌리를 떠나지 않은 우환의식을 지녔다. ‘음빙실’이란 그의 호도 장자의 우화에 비추어 보아 아주 잘 맞는다.
‘천하의 우환을 먼저 근심하고 난 연후에 즐거움은 천하와 더불어 나중에 찾는다.’(先天下之憂而憂, 而後天下之樂以樂)라는 천고에 길이 남을 유명한 한 말을 한 이는 북송 때의 유명한 학자요 정치가였던 판중옌(范仲淹=범중엄, 989-1052) 이다. 판중옌의 이 말은 그 후 관직을 맡은 중국의 모든 사대부들에게는 당위론적인 정신적 지표가 되었다. 판중옌의 말은 <맹자>에 근원한다. 맹자는 말했다. 군자에게는 일생을 떠나지 않는 근심은 있을 따름이지만 하루아침에 생겨나는 걱정거리는 있을 수 없다. (君子有終身之憂, 無一朝之患也-맹자, 이루하편)
맹자에 의하면 우(憂)는 종신토록 가져야할 근심이고 환(患)이란 수시로 일어났다 사라지는 걱정거리이다. 강도에 비하면 근심이 걱정보다 훨씬 강하고 시간적으로도 근심이 걱정보다 훨씬 장기간 지속되는 것이다. 우와 환은 비록 강도와 깊이에서 다르다할지라도 장래에 우환이 닥칠 것을 미리 대비하는 평소의 태도가 중요하다. 나라를 걱정하는 정치인 관료 지식인 이라면 평소에 우환의식(憂患意識)을 항상 가져야 한다는 말이다.
맹자를 존숭한 조선의 사대부들은 모두 우환의식을 지녔다. 머지않아 왜란(倭亂)이 일어날 것을 예견하고 그것에 대비하여 ‘10만양병설’을 주장한 율곡은 늘 우환의식을 가지고 살았던 사대부였다. 그의 우환의식을 당시의 조정 관료들이 공유했더라면 임진왜란(1592-1599) 당시에 조선이 왜구들에게 그토록 장기간 처참하게 유린당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또한 구한말 개화기에 서구문물을 받아들여 부국강병을 주장한 개화파 선각들의 우환의식을 당시 위정자들이 받아들여 개혁을 단행했더라면 갑오년(1894)에 농민들이 조선을 침략한 일본군들에게 그토록 처참한 떼죽음을 당하지 않았을 것이고, 을사년(1905) 이후 경술년(1910) 국치에 이르기까지 내나라 땅에서 항일의병을 일으킨 조선의 민초들이 일본군에게 그렇게 많이 살육당하지 않았을 것이다.
현재의 나라가 놓인 처지와 민족이 처한 현실을 조금이라도 생각하는 한국인이라면 어찌 우환의식이 없을 수가 있겠는가. 우리는 아직까지도 진정한 의미의 독립을 이루지 못하고 있다. 반쪽인 상태로는 남과 북 양자 공히 독립이 아니다. 우리는 가증스런 일본 군국주의에 의해 민족이 처참하게 유린당하였고, 해방 후에는 미국과 소련 양대 강국에 의해 분할 점령된 이후 갈라진 산하가 남과 북으로 두 동강난 상태로 아직까지 하나로 통일된 나라를 이룩하지 못하고 있다. 그러므로 남북이 통일되어 일제에 강탈당하기 전 상태로 나라를 온전하게 세우기 전에는 한국민족은 우환을 떨칠 수가 없는 것이다.
그래서 세계 10위권의 경제력, 조선강국, 정보기술 최강국, 올림픽에서 금메달 강국....... 등등을 자랑할 것만이 아니다. 한국인들이 가져야할 우환의식이란 어떤 것일까? 여태껏 남북이 통일을 이루지 못함을 첫째의 우환의식으로 늘 마음속에 생각해야 한다. 다양한 모임에서 여러 외국인들을 만나 대화를 하다보면 내가 아직까지 조국이 분단된 나라의 후손임이 은연중에 부끄럽게 느껴질 때가 많다. ‘남한에서 왔는지 북한에서 왔는지’를 나에게 묻는 외국인들은 한국과 오늘의 한국인을 어떻게 생각할까를 생각해 보아야 한다.
남북통일에 대한 염원과 그것을 이루지 못함에 대한 우환의식이 없는 사람들은 장차 정치를 하려고 해서는 아니 될 것이다. 그들이 정치를 하게 되면 그들에게 우는 없고 환만 있을 뿐이다. 정치인들에게 우란 나라가 처한 일을 걱정함이고 환은 개인의 일신상의 행복에 관련한 걱정거리일 뿐이다. 일국의 대통령이 퇴임 후의 기거할 주택을 걱정함은 환(患)일 따름이지 결코 우(憂)는 아니다. 부정부패에 가담하고 불의를 보고도 못 본 채하고 재산을 증식하고 퇴임 후 안락에만 관심을 갖는 공직자 관료들에게도 환은 있을지언정 진정한 우는 없다.
식민지시대 친일반민족 행위자들이 해방 후 정부와 공직의 상하 요직을 재차지하면서 민족정기가 말살된 이래, 그 영향으로 지금 현재 많은 한국인들은 국가와 민족의 대의를 먼저 생각하는 우(憂)는 없어지고 개개인 일신상의 재물과 번창만을 걱정하는 환(患)만 가지고 살아간다. 그러다보니 국가통합과 민족통일은 나의 일이 아닌 남의 일이고 개개인의 일신상 행복과 평안에 안주하려는 생각만 앞선다.
섭공자고처럼 얼음을 깨물어야 할 정도로 속에서 열이 차오르지는 않는다하더라도, 량치차오처럼 ‘음빙실’이라는 이름이라도 새겨 그것을 늘 마음속에 새기며 살아가는 우국지사들이 많아야 할 것이다. 지금은 남북한의 정치지도자들이 ‘뇌 즙을 짜내는 듯한’ 고뇌로 민족의 염원인 통일을 어떻게 이룰 것인가에 대하여 몰두해야 할 때이다.
박 인 수
2012. 11. 18